아들과 함께 공부하다

나는 인간에게는 '노는 욕구'가 있고 그 욕구를 어려서 충족시켜주지 않으면 커서 놀려고 한다는 것을 굳세게 믿었기에, 공부는 학교에서 하고 방과 후에는 실컷 놀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 생각 때문에 큰 아이를 중학교까지 보습학원이란 곳에 보내본 적이 없고 방과 후에는 거의 대부분 자유를 주었다. 

큰 아이 초등학교 때 일기를 6학년까지 모아두고 있는데 ‘놀았다.’는 내용이 많다. 가족하고 놀고, 친구들하고 놀고, 친척집 가서 놀고... 특히 방학 때 일기를 보면 ‘실컷 놀았다.’가 많다. 지금까지 공부하라고 한 번도 말한 적이 없지만, 딸은 공부를 알아서 잘했다. 이런 ‘스스로 학습’이 완전히 정착한 상태에서 중 3을 마쳤다. 고교 때도 친구들이 ‘무슨 학원이 잘 가르친다.’고 하니까 호기심이 나서 ‘나도 한번 다녀볼까?’ 하는 시험적 차원에서 학원을 다녔지만 두 달을 넘기지 못했다. 결국 학원공부는 자기하고 맞지 않는다는 결론을 내리고는, 인터넷 강의를 들으면서 ‘모르면 묻는다.’가 아니라 ‘알 때까지 판다.’는 식으로 혼자 독서실에서 대학준비를 했다.

딸을 그렇게 키웠기 때문에 딸보다 4년 늦은 아들도 보습학원이란 곳에 넣을 생각도 하지 않았다. 물론 딸과 아들은 많이 달랐다. 딸은 궁금한 게 많았다. 궁금해서 미치고, 빨리 알려주지 않아 답답해서 미치고, 엄마가 자세히 설명해주지 않는다고 엄마를 구박하며 미치고.. 여하튼 스스로 궁금한 것을 해결하는 데 도가 튼 딸과는 달리 아들은 도무지 궁금한 것이 없었다.

사람에게는 남에게 지기 싫어하는 욕구가 기본적으로 있다고 생각한다. 어떤 아이들은 자신이 남들보다 아래로 가는 것을 견디기 힘들어 한다. 그래서 경쟁 상태에 들어서면 바로 열공모드로 돌입한다. 남에게 뒤지면 팔딱팔딱 뛰는 딸은 그랬다. 아들은? 그런 욕구자체가 없었다. 아들은 ‘나보다 못하는 아이도 있는데 뭐~~’에 만족했다. 공부를 잘 하는 아이들을 부러워하지 않았고, 성적표를 받으면 앞에 몇 명이 있는지가 아니라 뒤에 몇 명이 있는지부터 말했다. 공부는 할 수 없이 해야 하는, 최소의 에너지만 쓰고 버티는 것으로 생각했다.

이런 아이에게 학원을 보낸다는 것은 시간낭비, 에너지낭비, 돈 낭비라고 생각했다. 더 심하게는 아이를 지치게 만들어 아이 나름대로의 자발적인 학습 욕구를 고갈하게 만드는 일이라 생각해서 더더욱 보낼 수 없었다.

아들이 학교를 마치고 집에 오면 우선 간식을 주고 내버려뒀다. 아들은 혼자 맘껏 놀고 나서야 다른 것을 시작했다. 학교 갔다 오면 손에 뭔가를 들고 혼자 중얼거리며 뒹굴뒹굴 놀거나, 성을 쌓고 진지를 구축하면서 사격놀이를 한참 한 후에야  움직였다. 이 버릇은 중학교 1학년까지 갔다. 한참 조용해서 “욱이, 다 놀았어?” 하고 물어보면, “아니. 아직 이야기가 안 끝났어.” 라고 답하곤 했다. 혼자 이야기를 만들고 그 이야기가 끝나야 움직였다. 아들은 사격에 재주가 있었다. 태권도에서 사격대회를 하면 늘 1등을 했다. 아마 누구 간섭 안 받고 혼자 하는 놀이라서 편하게 했던 것 같다. 그래서 사격을 살려주는 체육중학교에 보낼까도 생각했었다.

▲ 혼자 놀기의 진수를 보여주는 다람쥐통 굴리기 놀이. 한쪽 다리로 방향을 잡아 힘을 주면 큰 플라스틱 통이 둥글둥글 굴러간다. 8세부터 놀기 시작해서 14세가 된 중학교 1학년까지 줄기차게 이어온 놀이다. 옆에서 보는 사람은 저절로 웃음이 나지만, 아들은 땀을 뻘뻘 흘리며 정말 열심히 놀았다. 중학교 2학년부터는 몸이 커 통 안에 잘 들어가지도 않고 잘 굴러가지도 않았지만, 옛날 생각이 나는지 가끔 억지로 몸을 구겨넣어 통속에 들어가 보기도 했다. 사진은 6학년 때.

방과 후 아들은 항상 나와 함께 공부했다. 하루 1시간 30분에서 2시간 정도? 의무적으로 했다. 식탁에 함께 앉아서 학교 수업에서 이해가 덜 된 것은 다시 설명해주었다. 예습보다는 복습차원에서 매일 배운 내용의 문제집을 풀어보고 숙제를 하는 식으로 공부를 했는데 이것이 잘한 것인지는 솔직히 모르겠다. 아들은 지금도 ‘초등학교 때 엄마가 실컷 놀지 못하게 하고 억지로 공부시켰다’고 생각하고 있다. 서울로 이사하기 전까지는 이정도의 공부만으로도 수업을 따라가는데 크게 문제가 없었다.

여담이지만, 아들에게 공부를 가르치면서 웃기기도 하면서도 걱정스런 일이 참 많았는데.. 현실과 가상의 상황을 구분하지 못한다거나 현실감각이 한참 떨어지는 생각을 하는 것이었다.

생각나는 몇 가지를 짚어보면, ‘은혜 아버지는 벽돌을 00개 날랐어요. 은혜는 00개 날랐어요. 동생은 00개 날랐어요. 다 합해서 모두 몇 개 날랐을까요?’ 라는 질문에 아들은 불만에 찬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엄마, 왜 은혜는 자기네가 벽돌을 날라놓고 나보고 계산을 하래?” 이런 식으로 수도 없이 시시비비를 따졌다. 똘똘이 여자친구 현이도 이런 식으로 시비를 걸었다고 하니 아마 부모와 공부하는 아이들의 행동특성일 수도 있겠다 싶다.

‘맥주와 포도주의 공통점에 대해 생각해 보자’ 란 질문에는 ‘둘 다 술이다’가 답이지만 아들은 ‘많이 먹으면 죽는다.’ 고 답했다. ‘나보다 어린 아이가 와서 싸움을 걸면?’ 이란 질문에도 ‘그러지 말라고 잘 타이른다.’가 답이지만 아들은 ‘먼저 도망간 다음, 구석에 숨어서 그 아이가 어떻게 하나 지켜본다.’ 라고 답했다.

학교에서도 이런 식으로 대답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 전학 오기 전 학교 선생님께서는 간혹 웃으면서 이런 아들의 웃기는 이야기를 해주셨다. 그렇다고 아이가 이상하다거나 문제가 있다거나 그런 말씀은 하지 않으셨다.

아들은 외우는 것을 아주 싫어했는데 외우는 방식이 다른 아이들과 달랐다. 영어 단어를 외워야 한다면 스펠 하나하나를 써보면서 발음과 짝을 지어 암기하는 식이 아니라, 그 단어의 모습을 통째로 외우는 것이었다. 한문도 그렇게 외웠다. 내가 써보면서 외워야 한다고 주장하면, 아들은 자기는 그냥 가만히 보고 외워야 잘 된다고 했다. 사진을 찍어 머릿속에 저장해두었다가 필요할 때 그 파일을 꺼내는 것 같았다. 짧은 시간 안이나 자주 사용하는 것은 저장창고에서 파일을 쉽게 꺼낼 수 있겠지만 시간이 지나면 그 파일을 찾지 못하는 것처럼, 아주 중요한 것과 자신의 관심을 많이 끌었던 것 외에는 잘 기억하지 못했다. 그런데 어떤 경우는 아주 오래 전 것도 신기할 정도로 단어 하나도 틀리지 않고 문장을 통째로 기억할 때도 있었다. 저장파일에 있던 파일이 그대로 전송된 것과 같이...

순간순간 자기 세상에 빠지는 것도 여전했다. 아들 4학년 땐가 여름휴가를 갔을 때였다. 휴가를 갔다 오다가 차가 많이 막혔다. 딸은 답답하다고 왜 이렇게 막히냐며 자다 깨다 해가며 나를 거의 10분 간격으로 달달 볶았다. 하지만 아들은 단 한마디의 불평도 없었다. 다 쓴 배터리 2개를 가지고 슝슝~~ 해가면서 3시간 놀았다. 머릿속에서 이야기가 계속 생성되지 않고는 그렇게 놀 수 없다고 생각했기에, 굉장히 재미있을 것 같은 아들의 머릿속을 들여다보고 싶을 때도 있었다. 이런 특성은 학교에서도 나타났다. 수업 중 선생님 말씀을 듣다가도 순간순간 딴 세상으로 들어가 중얼거리면서 노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다행히 전학 오기 전 선생님들은 이런 점을 너그럽게 봐주셨다. 지금 생각하면 참 좋은 선생님들이셨다.

서울로 전학하면서 아들의 그런 행동은 집중력 부족으로 선생님의 지적을 받기 시작했다. 혼도 나고, 아이들도 ‘미친 색희’ ‘정신병자’ 라고 놀렸다.

이런 특성을 가진 아들의 서울에서의 초등학교 생활. 어땠을까? 그 때의 시절을 물어보면 아들은 이렇게 한마디로 잘라 말한다.

“매 맞고, 기합 받은 기억 밖에 없어”

편집 : 박효삼 부에디터

김미경 주주통신원  mkyoung6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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