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새 손주를 돌보느라 한글 서예 수업에 노다지 결석하는 나에게 선생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다.
"나도 손주 돌볼 때, 할아버지가 손주랑 '나 찾아봐라.' 하면서 숨바꼭질도 하고 그랬어. 내가 숨으라고 하면 숨겠어? 두 노인네만 있으면 무슨 재미가 있겠어. 늘 그게 그거지. 손주 돌보면서 그 덕에 노상 웃고 살았지. 결석해도 괜찮아. 돌볼 수 있다는 것이 행복이여"
손주는 일요일 저녁 친가에서 우리 집에 왔다가 지금은 목요일 다시 친가로 간다. 우리 집에 있는 동안 아침 7시~8시 사이에 우리는 하루를 시작한다. 실컷 자고 맘마 먹고 온 손주와 서로 눈 마주치며 같이 옹알이하고, 책 읽어주면서 손주의 반응에 깔깔 웃고 산다. 날씨가 좋으면 산책도 간다. 두 노인네만 사는 썰렁한 집에 활기를 가져다주는 한 생명체.... 11월 말이나 12월 초에는 다시 미국으로 돌아간다. 짧은 시간이지만.... 한 땀 한 땀 시간을 소중히 여기고 즐겁게 지내려고 한다.
<소리 내 웃기>
손주는 웃음이 많은 아기다. 다른 아기들도 그런가? 애교 미소를 날려줄 때면 엄마도 녹고, 아빠도 녹고 할무이· 하부지는 무조건 녹는다. 요새는 옹알이 중간중간 미소를 지어 손주 보는 재미가 더 쏠쏠하다.
아기는 생후 4개월이 되면서 본격적으로 소리 내 웃기 시작한다. 손주도 4개월이 지났으니, 웃음소리를 낼 만하다. 특히 엄마·아빠의 상냥한 목소리나 다양한 자극에 소리 내 웃는다고 한다. 그동안 짧게 소리 내어 웃은 적이 있었는데 영상에 담진 못했다. 얼마 전 아빠와 까꿍 놀이하면서 소리 내 까르륵 웃었다. 세 사람이 행복해하는 소리가 들린다. 이제 나도 손주의 까르륵 웃는 소리를 자주 들을 수 있지 않을까?.
<발을 인식하다>
손주가 자신의 손을 유심히 쳐다보고 놀기 시작한 것은 백일 전이다. 생후 3~4개월 되면 눈과 손의 협응으로 손을 뻗어 물건을 잡기도 한다. 손주도 좋아하는 장난감을 손으로 꼭 잡고 놓지 않으려 했고, 엄마 얼굴과 머리카락도 잡았다.
점차 발도 인식했다. 백일 경엔 발로 플레이매트 프레임을 밀면 모빌이 움직인다는 것을 알고는 프레임 미는 것을 재미 들여서 했다. 백일 지나 한국에 왔을 때 피아노 건반이 달린 플레이매트에 놓아주었더니 발로 힘차게 건반을 쳤다. 건반이 부서질까 걱정할 정도로... 새로운 발차기를 터득한 것이다.
4개월이 지난 요즘은 발을 유심히 쳐다보고 이리저리 움직인다. 눈으로 발이라는 존재의 움직임을 쫓기 시작하면서 눈과 발의 협응이 시작된 것이다. 6개월 지나 앉기 시작하면 발을 잡고 만지작거릴 것이다. 엄마는 어려서 내가 다른 형제들과 달리 유난히 발을 만지며 노는 것을 좋아했다고 했는데... 유전자로 연결된 손주가 날 닮을까?
<우량아 손주>
손주는 참으로 건강하다. 출생 후 한 번도 아픈 적이 없다. 모두가 잘 자라줘서 고맙다고 손주에게 말한다. 딸과 사위에게도 잘 키워줘서 고맙다고 말한다. 4개월 때 손주 몸무게는 8kg이었다. 보통 3~4개월 남아 몸무게는 평균 6.81kg이고 5~6개월이 되어야 7.93kg이 된다. 4개월 손주는 5개월 이상 평균 몸무게를 가진 우량아다.
이렇게 튼실하니 6개월짜리 옷이 작다. 팔이 7부 정도로 겅둥 올라가고 다리는 꽉 낀다. 미국에 두고 온 6개월짜리 새 옷을 입어 보지고 못하고 다 남 주게 생겼다. 얼마 전에는 1세짜리 옷을 입혔더니 넉넉하게 잘 맞았다.
<자기주장 하기>
우량한 몸에 팔과 다리 힘도 좋아 뒤로 넘어가는 뻗치기 떼를 쓸 때면 다들 절절맨다. 우리끼리 아기장수라고 부른다. 쑥쑥 크는 몸처럼 자기주장도 많아지고 있어 점점 '싫고 좋고'의 표현도 분명하게 한다. 아빠가 세게 뽀뽀할 때면 싫다고 얼굴을 피하면서 인상도 쓴다.
터미타임을 하는데 플레이매트 모빌 프레임을 엄마가 거칠게 흔들자, 싫다고 '히잉~~'하며 얼굴을 찌푸리기도 한다. 그러다 아빠의 창작품 매직카펫 라이드를 해주니 활짝 웃는다. 울다가 웃는 시절이 온 것이다.
화가 난다고 딸랑이를 내 던지는 것이 웃겨서 보고 또 보는 영상이다. 손주는 요새 딸랑이와 치발기를 아주 좋아한다. 아직은 둘 간의 차이를 확실히 알지 못한다. 뭐든지 입으로 가져갈 때라 딸랑이를 입으로 가져가 씹으려고 하다가 입에 안 들어가니까 화가 났다. 팔을 위에서 아래로 확 내리며 성을 냈다가, 다시 해보고 안 되니까 딸랑이를 집어던졌다. 딸랑이 떨어지는 소리에 저도 깜짝 놀라는 표정이 할무이는 재미있기만 하다. 이렇게 행동할 때 웃으면 이런 행동을 조장하는 거라 안 되는 건가? 잘 모르겠다. 할머니들이 육아에 이성적이지 못하다는 말은 사실인 것 같다. 뭐를 해도 예쁘기만 하니 말이다.
응가하는 데도 모르고 무조건 잘 했다고 칭찬만...
이렇게 손주가 힘 좋은 우량아로 성장했기에 나는 손주를 잘 안지 못한다. 아직 목, 어깨 등이 완전히 회복되지 않아서다. 손주 안기 전담맨은 주로 하부지다. 퇴직 안 했으면 어쩔 뻔했을까 싶을 정도로 손주 돌보는 데 열과 성을 다하며 핵심 역할을 하고 있다.
마른 체구인 딸도 허리가 좋지 않다. 산바라지하러 갔다가 올 때쯤 딸의 허리에 문제가 있어 보였다. 멀리서 보면 가끔 어정쩡한 자세를 취할 때가 있었다. 왜 그러냐고 했더니 허리가 뻐근하다고만 했다. 아이 낳아 그렇겠거니 했는데... 한국 와서 병원에 갔더니 골반이 2cm 틀어졌다고 한다. 누구에게 말도 못 하고 그동안 밤에 자다 허리 아파 자주 깼다고 한다. 매주 2회씩 치료받으며 좋아지고 있다고 하지만, 이 또한 쉽게 나을 일이 아니다. 무거운 걸 들거나 허리를 쓰지 말아야 하는데 육아의 기본이 아이 안고 옮기는 것인데... 손주가 우량아로 건강하게 잘 자라줘서 너무너무 고맙지만... 그 무게만큼 딸이 힘든 걸 생각하면 마냥 좋아할 수도 없는 일이다.
편집 : 김미경 객원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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