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본사에 절차적 정의를 기대한다

지난 24일 <한겨레:온>에 다음과 같은 기사가 미릿기사로 걸렸다.

[공문] <한겨레:온> 기사 관련 언론중재위원회 조정 후속조치의 건

”11월6일(목) <한겨레:온> 기사 관련 언론중재위원회 조정에서 한겨레신문사가 신청인에게 위약벌 3백만원을 지급하라는 조정결과가 나왔습니다. 한겨레신문사 경영진은 이번 언론중재위원회 조정의 후속조치에 대해 논의한 결과, <한겨레:온> 편집진 및 필진에게 다음과 같이 권고하기로 했습니다.“~

이 대문 기사에서 언급한 <한겨레:온> 기사는 필자가 쓴 기사다. 지금은 게재 취소되어 <한겨레:온>에서는 볼 수 없다. 이유 여하를 불문하고 필자가 쓴 기사가 언론중재위원회의 조정을 거쳐 한겨레에 유무형의 손해를 끼친데 대하여 미안한 마음이 든다.

필자는 이번 윤석열내란의 진압이 가시화되던 올해 2월 초에 다음과 같은 글을 한겨레온에 게재한 적이 있다.

새해 아침의 단상 - 다시 동학과 3.1을 계승하며

”이번에 우리는 또다시 동학과 3.1을 계승하는 쾌거를 올렸다. 4.19이후 이룩한 여러 민중승리의 족적에 또하나 올렸다. 그리고 지구촌에 또하나의 희망을 주었다.~“

이렇게 시작하는 이 글은 다음과 같은 내용으로 마무리되었다.

”정철승 변호사 사건은 이 시점의 발등의 불이다. 시대의 과제이기도 하다.~ 그는 생각지도 못한 위기에 처해 있다. 우리는 이를 정면 돌파하지 않으면 안 된다. 개헌도 잘해야 하고 민주주의를 제대로 가다듬는 것도 중요하지만 발밑에서 벌어지는 중요한 현장 전투에서는 밀리면 안 된다. 이겨내야 한다.“

필자는 그만큼 정변호사 사건을 지금 이 시대의 과제로 본 것이다. 그러기에 정철승변호사의 무죄판결을 위한 시민변호인단을 모집했고 한겨레온에 그 모집 공고문을 게재한 것이다. 그 기사에 대해 정변호사 형사사건의 고소인이 언론중재위에 조정을 신청했다. 두 차례에 걸쳐 배상금 총 6백만원을 한겨레가 피신청인에게 지급하라는 조정결과가 나왔다.

과정이야 어쨌건 의도한 바는 아니지만 결과적으로 한겨레온의 객원편집위원이 올린 글 때문에 법적인 대표책임이 있는 한겨레 본사가 피해를 입게 되었다. 

그런데 그 내용을 가만히 살펴 보면 한겨레 본사는 언론중재위의 결정을 그대로 받아들인 것으로 보인다. 중재위가 요구하는 피해금액을 고스란히 받아들여서 배상한 것으로 발표했기 때문이다. 

- 언론에 따라 언론중재위를 대하는 과정과 결과의 차이

한겨레온뿐만 아니라 필자의 게재 기사를 동시에 게재했던 언론들 모두를 대상으로 그러한 조정신청의 대상이 되었지만 과정과 결과는 달랐다. 불교닷컴과 가톨릭프레스 등이 그렇다. 

기실 필자가 올린 글은 1심 판결문의 내용을 적시하면서 무죄를 주장한 것이다. 현재 항소심이 진행중이어서 1심 판결문은 공적으로 공개된 문서다. 그중에서도 고소인의 신원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한 바 없다.

이런 사실을 근거로 불교닷컴은 중재위 결정을 부정하여 소송으로 가겠다고 주장하여, 언론중재위원회는 중재처분을 취소하였고 불교닷컴은 벌금이 부과되지 않았다. 불교닷컴의 의견이 언론중재위에 반영된 것이다. 가톨릭프레스도 현재 언중위 중재안을 전면 거부하였고,  아직 결론은 나지 않은 상태다.

그러니까 다른 언론들은 각자 언론중재위의 사안이 실질적인 내용의 시시비비를 가려야 한다는 의지를 갖고 임하였다. 이에 비해 한겨레신문은 언중위의 화해권고 결정에 이의를 달지 않고 그대로 받아들여 손해배상 권고금액도 그대로 받아들여 집행을 한 것으로 보인다. 차이점이 있는 것이다.

-  필자 의견 청취 절차 누락

대개 어느 기사건 그 내용의 진위에는 보는 이마다 이견이 가능하다. 기사의 관계자가 언론중재위에 진정을 요청하는 것도 누구나 가능하다. 언중위는 그 시비를 가리는 공적인 장소이다. 그러므로 그 자리에서 진정자의 요구의 정당성에 대한 시시비비를 가리는 과정은 반드시 필요한 법이다.

그러려면 기사내용의 문제점이나 정당성에 대한 내용적 검토를 거쳐 대응하는 자세가 필수적이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한겨레 본사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언중위 중재요청에 대한 당사자 의견개진의 기회를 주지 않았던 것이다. 이 부분은 유감이 아닐 수 없다. 글쓴이의 의견을 듣는 것은 상식적인 절차다. 그랬더라면 언론중재위원회에 가서 이유를 설명하고 적절한 대응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불교닷컴처럼 말이다.

첫 번째 사건이 있고 난 다음, 필자가 두 번째 기사를 쓸 때는 처음보다 더욱 조심해서 공적인 영역에서의 사법부의 문제점만을 거론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소인에 의해 또다시 중재위에 올려졌다. 이후의 절차는 마찬가지로 흘렀다.

한겨레본사는 기사를 쓴 객원편집위원 당사자의 설명을 듣지 않고 언론중재위의 결정에 이의를 달지 않았고 한겨레온 편집진은 사과의 공문을 게재하였다. 기초적 절차가 생략된 채 일사천리로 전개된 것이다. 한겨레온의 법적인 책임사가 한겨레 본사이긴 하지만 이와 같이 절차적 정의가 무시되고 있는 것은 유감이 아닐 수 없다. 

앞으로도 기사내용을 둘러싸고 언론중재위를 통한 이와 유사한 갈등은 향후 확률적으로 얼마든지 존재할 수 있다. 하지만 이를 다루는 절차의 미숙함이 오히려 눈에 띄는 문제로 보인다. 한겨레본사와 한겨레온의 관계가 법적으로 주종의 관계에 있다하더라도 당사자와 편집진으로부터 소명의 기회가 주어지고 그에 따른 의사결정의 과정을 거쳐야 진실을 제대로 알리는 언론의 기능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된다.

더욱이 사안의 내용이, 많은 시민들이 분노하고 관심을 갖고 있는 정철승변호사 사건이 아닌가? 한겨레 본사가 절차적 정의를 이행하기를 기대한다.

 

편집 : 이원영 객원편집위원

이원영 객원편집위원  leewysu@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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