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 역(逆) 보살(?)
어제(2025년 12월 6일) 정오. 서초동성당에서 결혼한 동아리 후배 딸의 축의금으로 얼마를 할지 고민이 많았습니다. 요즘에 워낙 밥값이 비싸고, 아내와 아이, 세 식구가 모두 참석하기 때문입니다.
어려운 처지를 아는 후배가 밥값만 내라고 했지만 힘든 시절을 함께 보낸 동료입니다. 그리고 올 1년 동안 아이를 데리고 일하면서 많은 걸 알려줘서 고마운 마음이 컸지요.
마음이야 일백만 원쯤 내고 싶었지만 빠듯한 예산으로 곧 이사해야 하고, 짐 정리를 하는 대로 1층 카페 공간의 대대적인 보수를 해야 합니다. 그리고 에어컨, 냉장고, 제빙기와 테이블과 의자 등을 모두 구매해야 합니다.
한 푼이 아쉬운 형편이라 후배 말대로 1인당 10만 원씩 해서 30만 원만 내야 할까? 형편이 째지만 50만 원쯤 해야 할까? 꽤 오랫동안 고민을 했습니다. 그러다가 은행에서 50만 원을 찾았습니다. 돈도 중요하지만 최소한의 인간적인 도리를 하고 싶었으니까요.
어제 아침에 아내에게 “축의금을 어떻게 할까요?” 했더니 “1인당 10만 원은 해야지.” 하면서 봉투를 챙겼습니다. 속으로 다행이다, 고맙다고 생각했습니다. 셋이 서초동성당에 도착했습니다. 그리고 축의금을 내는데 봉투에 자신의 이름을 적으면서 축의금을 달라고 합니다.
무슨 소리냐고 했더니 자신과 아이의 것은 넣었으니 내 몫의 축의금을 달라고 합니다. 그 말을 듣고 ‘난 뭐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랜 지인으로 가족인 걸 모두가 아는데 각자의 이름으로 축의금을 내자는 것도 해괴했습니다.
아내랑 말을 섞기가 두렵습니다. 소통을 하려고 할 때마다 늘 상처를 주니까요. 난 또 얼마나 이 일을 가지고 곱씹으며 아파할지 모릅니다. 물론 아내는 벌써 잊었을 겁니다. 아니 잊었는지 내색을 하지 않는 건진 알 수 없습니다.
가끔 아내의 전화를 받을 때마다 두려운 마음이 앞섭니다. “밥 먹었어?”, “날이 추워졌는데 어떻게 지내?”, “해남(부여)에서 지내면서 어려운 것 없어?” 이런 얘기를 듣고 싶은데 사무적인 일 외에는 전화하는 법이 없습니다.
통영의 집도 11월에 이사할 생각이었습니다. 그랬으면 추위 걱정 없이 이사했을 텐데 자신의 일정으로 12월 말로 미루라고 했지요. 자신이 불편한 건 조금도 못 참으면서 나와 아이의 입장은 왜 고려하지 않는지 모르겠습니다.
이게 부부인지, 가족이 맞는지 모르겠습니다. 이혼해주지도 않고, 끊임없이 괴롭히는 까닭이 무엇인지 모르겠습니다. 절집에 다니는 지인의 말처럼 역(逆) 보살인 걸까요?
둘. 호의가 권리로.
목요일(12월 4일)에 올라갔다가 어제(6일) 밤에 돌아왔습니다. 여느 날과 다름없이 오늘도 새벽에 깨었지만 모처럼 늑장을 부리고 싶었습니다. 여독이 풀리지 않았고, 내일 새벽엔 또 통영에 다녀와야 하니까요. 침대에서 뒹굴뒹굴하는데 누군가가 현관문을 거칠게 두드렸습니다.
‘이 시간에 누구지, 올 사람이 없는데.’ 현관문을 여니 마을 할머니가 서 있습니다. 웬일이냐고 했더니 남창 장에 가는 버스를 놓쳤다면서 데려다 달라고 합니다. 작년 이맘때 새벽에 월성 천변을 거닐다가 장에 가는 버스를 놓쳤다고 중얼거리던 분입니다.
그때 ‘추운데 할머니가 고생하는구나!’ 싶어서 모셔다드렸지요. 그런데 문을 두드리면서 데려다 달라니까 황당했습니다. 거절의 의미로 ‘아직 씻지도 않았다’고 했더니 준비하고 나오랍니다. 어쩔 수 없이 의안을 씻어 끼우고 남창 장에 다녀왔으나 기분이 좋지 않았습니다.
호의를 당연시하고, 내려드릴 때도 고맙다는 말 한마디 없이 그냥 가버렸으니까요.
편집 : 오성근 객원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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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들을 비판하는 것은 아니지만 휠체어를 밀어달라고 큰소리치고 고맙다고 하지도 않습니다.
혜화역 출근 지하철을 붙잡고 시위를 하는 것도 지나칩니다.
그래서는 일반시민의 공감을 얻기 어렵습니다. 보통 사람들도 삶의 무게가 한 짐입니다.
그냥 지하철 입구에서 피켓시위를 하는 것이 시민들의 공감을 훨씬 더 이끌어 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