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오른 생각들로 순서도 정오(正誤)도 없다. 오호(惡好)와 시비(是非)를 논할 수는 있지만 대상은 아니다. 중복도 있으므로 고려하면 좋겠다. 여러 차례에 걸쳐 싣는다.
1.
삶에는 수많은 기술과 태도가 있다. 말과 행동, 웃음과 관계 등에서 다양한 기술과 태도가 나타난다. 그러나 그 모든 중심에는 항상 ‘권익(權益)’이 따른다. 그건 단단한 심지처럼 몸과 맘 중앙에 박혔다가, 이때다 싶으면 튀어나와 만사를 조종한다. 그것은 불을 때지 않아도 열을 품고, 아무 말 없이도 사람의 언행을 기묘하게 바꾼다. 조금 전까지 누군가를 헐뜯던 입술이, 그 사람이 나타나는 순간 미소로 바뀌는 장면을 숱하게 보아왔다. 말의 색깔과 표정이 순식간에 변하는 장면에서 언제나 같은 의문이 들었다.
2.
‘어찌 저럴 수가 있을까. 저렇게 살 수밖에 없을까.’ 물론 애매모호한 반어법으로 자신의 손실을 최소화하려는 사람도 있다. 이러함을 참작하더라도 때로는, 그 의문이 지나치게 예민한 내 가치 기준에서 비롯된 것은 아닐까? 라고, 자문해 보기도 한다. 저런 상황은 세상을 용의주도하게 살아가기 위한 최소한의 기술과 태도(유연성)가 아닌가? 어떻게 보면 어른이라면 누구나 갖추어야 할 사회적인 삶의 양상(예의?) 정도일 텐데 말이다. 내가 고지식한 것인지, 유별났는지를 스스로 묻는다.
3.
그러나 곧 깨닫는다. 그것은 삶의 기술과 태도, 예의와 유연성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생명을 위협받는 상황도 아니고, 현재의 삶에 사회경제적으로 큰 지장이 있는 것도 아닌데, 그저 조금 더 인정받고, 조금 더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기 위해, 조금 더 권익을 챙기고자 하는 얕은 욕심에서 나왔을 뿐이란 것을. 달리 보면 아주 얄팍한 욕망이 한 사람의 말을 순식간에 변하게 하고, 태도를 손바닥처럼 뒤집는 것이다. 바른 마음을 조그만 권익으로 인해 야릇한 웃음 뒤로 숨겨버리고 비루하게 얼버무리는 것이다.
4.
때로는 그 모습에 속이 매스껍고, 때로는 눈을 돌리고 싶을 만큼 역겨움을 느낀다. 동시에 한숨이 나오고 가여움도 있다. 사실 그렇게까지 하면서 살아야 할 삶이라면, 그 삶은 도대체 무엇을 위한 누구의 삶인가 싶어서이다. 가정과 가족을 부양하고, 거친 세상을 버텨야 하는 등 선택의 폭이 좁은 젊은이라면, 그럴 수 있다고 너그럽게 이해할 수 있다. 또한 아직 삶의 무게를 미처 가늠하지 못하는 청장년 시기라면 실수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 자신을 뒤돌아보기도 한다. 그러나 이미 살 만큼 살았고, 어느 정도 삶의 자율과 여유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야릇한 행태가 반복되는 모습을 볼 때면, 더 이상의 변명의 여지도 없다는 생각이 든다. 그것은 생존을 위한 기술과 태도가 아니라, 더 큰 윤택을 취하려는 미천한 자의적 선택이고, 어찌 보면 습관이 되어버린 비겁함이라 할 수 있다.
5.
더 견디기 힘든 것은, 그 이중성이 어느 한 사람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서로를 이용하고, 서로에 대해 악성 뒷얘기를 하는 등, 마음속으로는 상대를 깎아내리면서도 겉으로는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버젓이 관계를 지속하는 모습에 아연실색한다. 그런 행태 속에서 사람과 사람 사이의 언행은 공기처럼 가벼워지고, 마음은 물건 거래하듯이 경중을 계산한다. 언뜻 자신이 그런 자리에 계속 머물고 있음을 인지하고 깜짝 놀란다. 그리고 문득 깨닫는다. 나는 그들보다 더 한심한 사람이 되어가고 있는 건 아닐까? 그들을 비판적인 시각으로 바라보면서도, 그들 곁에 계속 머무는 나 자신이야말로 아이러니한 것이다. 그 순간부터 그곳의 공기는 나를 압박하고 해치기 시작한다. 물리적인 해가 아니라, 마음과 정신이 서서히 말라가는 느낌을. 내 삶의 기준이 무뎌지고, 감각이 둔해지며, 어느 순간 나 역시 그들처럼 '적당히' 살아도 된다고 합리화하게 될 것만 같아서이다.
6.
그래서 말하지 않기로 했다. 지적도 설득도 안 하기로 했다. 아무리 좋은 의도를 가진 말이라도 때로는, 진실을 밝히기보다 상처를 먼저 건드리게 되고, 지적은 변화보다 방어를 먼저 불러오고, 설득은 오히려 반발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할 수 있는 가장 바람직한 선택은, 싸움도 아니고 지적과 설득도 아닌 일정한 거리 두기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조용하게 말없이 떠난다. 아무도 모르게, 아무 흔적도 남김없이 떠난다.
7.
그것은 도망이 아니라, 내가 나를 지키기 위한 마지막 예의이고 불가피한 조치다. 누군가를 벌하기 위해서도, 내가 더 고귀하게 되기 위해서도 아니다. 또한 권익을 챙기기 위해서는 더욱 아니다. 평소 삶으로 지켜야 한다면, 적어도 자신이 믿는 가치와 일치하는 삶이기를 바랄 뿐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속으로 되새긴다. 그 침묵의 떠나기야말로, 이 야박한 세상에서 나를 지키기 위해, 선택할 수 있는 가장 유용한 대책일 것이라고.
편집: 김태평 객원편집위원. 조형식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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