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소원은 본안에 대한 4심이 아니라 사법 공직자에 대한 규제 감시
대법원, 헌법재판소의 과부하는 사건의 수에 맞는 법관의 증원으로 풀어야
영국에서는 각종 비정규 법관(비상임 시간제 및 수당제) 제도 존재
영미법계의 시민 치안판사 및 시민 배심제, 대륙법계의 시민 참심제
인간 잘못(human error)의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는 것은 분권적 민주 체제(system)
더불어민주당이 14명의 대법관을 26명으로 증원하는 법원조직법 개정과 재판소원 도입을 추진하고 있는 데 대해, 문형배(전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이 대법관 8명 증원과 상고심사제 도입을 제안하고, 헌법재판소의 전면적인 재판소원 도입에 반대한다고 한다.(한겨레 2025.12.1.)
대법관 증원 수를 8명으로 줄이자는 의견을 우선 제쳐놓는다면, 문형배가 제안한 주요 사안은 상고심사제 도입과 전면적 재판소원 도입 반대 등, 두 기지로 요약될 수 있겠다. 한편으로, 상고심사제 도입 관련하여, 그는 상고심(대법원 3심급)에서 본안으로 다루는 사건 수를 대폭 줄여야 한다는 의견을 냈다. “항소심 법원이 동의하거나 대법원 상고심사부가 본안에 회부한 사건만 대법원에서 심리하고, 나머지는 상고심사부가 상고 불수리 결정으로 종국처리하는 방식으로 이원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른 한편, 전면적 재판소원 도입 반대 이유 관련해서는, 헌법재판소의 업무 과부하를 초래하기 때문이라는 점을 들었다. “재판소원을 원칙적으로 허용하면 4심제가 될 수밖에 없고, 상고심 처리 건수 연 4만 건에 불복률 30%를 적용하면 연 1만2000건이 헌재로 간다. 이는 국민에게 사건 처리 지연과 소송비용 증가를, 헌재에는 업무 과부하를 초래한다”는 것이다.
이 같은 문형배의 제안은 몇 가지 문제점을 노정한다. 첫째, 우선 문형배의 위 두 가지 제안은 서로 아귀가 들어맞지 않는다. 대법원(3심급)에서 다루는 사건을 대폭 줄이자는 것인데, 대폭으로 줄어든 사건은 대법원 측의 ‘상고 불수리’ 결정으로 3심을 받을 수 있는 자격을 원천적으로 박탈당한다. 그러면 결과적으로 2심으로 끝이 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헌법재판소의 재판소원 도입을 반대하는 이유로서, 문형배는 4심제가 되는 것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헌법에 보장하는 3심을 다 받지도 못하게끔 ‘상고불수리(상고 거부)’하는 상고제를 도입하자고 하면서, 무슨 4심이 되나!
둘째, 전면적인 재판소원 도입에 반대하는 이유로서, 문형배는 “헌법재판소는 대한민국 헌법상 최고법원으로 규정돼 있지 않다”, “사법권을 법관으로 구성된 법원에 속한다고 규정한 헌법 제101조 제1항 등을 해석하는 과정에서 이를 발견할 수 있다” 등 발언을 했다. 다시 간추리면, 헌법 제 101조 제1항에 사법권은 법관으로 구성된 법원에 속한다고 되어 있으니, 헌법재판소가 4번째 법원으로 최고법원 행세를 할 수가 없다는 뜻이다.
문형배의 이 같은 해석은 헌법재판소의 재판소원의 성격을 단단히 곡해한 것이다. 헌법재판소의 재판소원은 본안에 대한 재판이 아니라, 본안 재판 과정에서 법관이 고의 혹은 실수로라도 법을 잘못 적용하여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한 사실이 있는지 여부를 살피는 것이다. 이것은 본안에 대한 심판이 아니라, 공직자로서의 법관에 대한 감시이다. 법관에 대한 규제와 감시가 어떻게 본안에 대한 4심이 될 수가 있나!
셋째, 문형배의 이 같은 제안이 더욱 가관인 것은, 헌재가 “법률 해석에 관한 법원의 권한을 존중해야 한다”고 본 점이다. ‘전면적’ 재판소원에 반대할 뿐 아니라, ‘당장의’ 재판소원 도입에 반대하는 문형배는, “재판소원의 원칙적 허용은 장기과제로 논의하는 대신, 우선적으로 법률 조항에 대한 법원의 해석이 있고 이런 해석이 헌법에 위배된다는 헌재의 결정이 있을 경우 이를 재심사유로 삼는다는 취지로 헌재법을 개정” 운운했다.
문형배는 헌법재판소 기능 관련하여, 법원이 ‘법률해석’을 잘못하는 경우 헌재가 그 해석이 위헌이라는 결정을 내리는 것으로 하자고 한다. 그것도 당장이 아니라 언제가 될지 모르는 장기과제로 그렇게 헌재법을 개정하자는 것이다.
문제는 국민의 기본권 침해가 법원의 법률해석 오류를 통해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법원의 기본권 침해는 여러 가지 형태로 발생하는 것으로, 법률해석의 오류를 통해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당장에 유력한 대선후보였던 이재명 사건을 조희대가 유죄파기환송한 것은 단순히 법률해석에 관련한 것이 아니다.
이것은 악의에 의한 사법권력 오남용으로 비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대선후보가 이런 정도로 당하는 상황이니, 피래미 민초의 경우 악의적 사법 권력의 희생물이 되어도 입도 뻥긋하기 어려운 지경에 처할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밀림의 정글보다 더한 갖가지 약육강식과 탐욕이 관성적으로 난무하는 한국 사법계의 현실을 두고, 군자연(군자같이 행세)하는 문형배가 ‘법률해석 오류’ 운운하고, 급기야 ‘헌재가 법원의 법률해석을 존중해야 한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문형배는 사법권력 공직자의 국민 기본권 침해행위를 감독해야 할 헌법재판소의 기능 자체를 무산시키고, 공직자에 대한 규제를 본안 사건에 대한 사법 재판으로 오인하는 잘못을 범하고 있다.
넷째, 문형배가, 한편에 상고심제도 도입을 통해 헌법에도 보장하는 3심급 자체를 대폭으로 받지 못하도록 하려하고, 다른 한편에 ‘전면적 재판소원 제도에 반대’하는 주요 이유는 관료 편의주의에 입각한 것이다. 대법원은 물론 헌법재판소 업무에 과부하가 걸릴 것이나, 대폭으로 걸러내서 대법원 3심급이나 헌재 재판소원을 하지 못하도록 하자고 하기 때문이다.
문형배는 ‘친절’하게도 국민에게 사건 처리 지연과 소송비용 증가를 초래할 것까지 염려했다. 이 같은 문형배의 염려도 관료 편의주의이다. 국민으로서는, 재판의 지연보다 졸속의 신속 재판에 대한 염려가 더 크기 때문이다. 대법원, 헌법재판소를 거치면서 국민이 소비할 소송비용의 증가가 걱정이 된다면, 국가에서 지원하면 된다.
민주당이 14명에서 26명으로 대법원 법관 수를 증가시킨다고 했더니, 문형배가 반대하고 8명만 증원하되, 그것도 단계적으로 1년 뒤 4명, 3년 뒤 4명을 증가시키자고 한다. 대법원 업무에 과부하가 걸리면, 대법관 수를 그에 맞게끔 늘려야 하는 것이다. 문형배의 셈법에는 사건 수에 맞게 법관 수를 늘리는 수식은 아예 존재하지 않아서, 그의 셈은 반대로 사건 수를 줄이는 것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이것은 권위주의, 관료주의적 발상이다. 이른바 ‘종복’이라는 관료가 주인이 되고, 주인이라고 일컫는 국민이 ‘을’, ‘객’의 신세로 전락한 것이 분명하다.
법관의 증원은 여러 가지 방법으로 가능하다. 예를 들어, 영국은 사건 수에 맞게 판사를 늘리되, 비정규직 법관 제도를 운영한다. 대리고등판사, 대리지역판사, 치안판사법원 대리지역판사, 기록판사 등이 그러하다. 이들 비정규직 법관은 변호사 등 일정한 법조 경력을 가진 이들 가운데서 임명되며, 치안판사법원 대리지역판사, 기록판사는 수당제 법관으로, 매년 15일 이상 근무한다.
기업 등 사업체는 물론 대학교, 고등학교 등 교육기관에도 비정규직 근로자가 있다. 비정규직은 여러 가지 사유로 발생하며, 일거리에 맞추어 인원을 증원하는 것이다. 직원이 적으니 생산량을 줄이라고 하지 않고, 또 교사 수가 적으니 자격심사 하여 학생수를 줄이라고 할 것이 아니라, 직원 수를 늘리는 것이다.
그런데 문형배의 제안은 부패한 사법권력의 희생물로서 피해에 절린 국민을 ‘을’(개돼지)로 보는 관료편의주의적 사고의 극치이다. 법관의 업무에 과부하가 걸리니, 상고심사제 도입하여 대법원 3급심을 받지 못하도록 상고불수리 결정으로 종국처리해서 끝내버리자라든가, 헌법재판소 업무가 폭증할 것이니, 당장에 재판소원 도입에 반대한다고 하고, 나중에라도 ‘법관의 법률해석의 잘못’에만 한정해서 재판소원제도를 운영하자고 하는 것이 그러하다.
법관 수가 적으므로 사건을 외면할 것이 아니라, 어떤 식으로든 사건의 수에 맞게 법관 수를 늘려야 한다. 그것이 재정부담을 가중시킨다면, 우선 비정규직 법관을 차용하고, 또 참심제(시민 법관) 및 배심제를 원용해야 하는 것이겠다.
관료편의주의에 경도된 문형배의 현실적 둔감은 그가 적극 피력하는 ‘관용과 자제’, ‘상식과 절제’론(論)에서도 드러난다. 국회와 법원 양쪽에 관용과 자제를 부탁하는 것이다. 한편에, 법원의 폭주(조희대의 이재명 사건 유죄파기 환송, 지귀연의 구속기간을 날 수 아닌 시간 수로 계산한 지귀연, 서부지법 폭동사태 등), 다른 한편에 국회 여당의 사법개혁 기조를 비판하는 것이 그러하다.
이와 관련하여 문형배는 국회 여당의 개혁 관련하여, ‘사람의 잘못(human error)’을 ‘시스템의 잘못(system error)’로 잘못 전가하는 것이라는 의견을 개진했다. “잘못은 전 대통령 윤석열이 했는데, 왜 시스템 탓을 하느냐” 하는 뜻이겠다.
법관 출신의 문형배는 민주정치의 기조에 대해 문외한임을 스스로 드러냈다. 민주정치는 사람의 잘못을 탓하는 것이 아니다. 사람의 잘못은 누구나 다소간에 범하는 것이므로, 그 잘못을 예상하고 ‘체제(시스탬)’로 보완책을 마련한 것이다. 윤석열이 군대, 검찰, 법원, 방첩사 등을 동원할 수 있었던 것은 정부는 물론 각 기관의 중앙집권적 관료주의 ‘시스템(체제)’에 크게 기인한 것이다.
민주정치는 과도한 중앙집권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권력의 집중은 독재를 낳는다. 윤석열의 행정부는 물론 조희대의 대법원도 그 인물들만 탓하고 있을 계제가 아니라 ‘시스템’을 고쳐야 한다.
윤석열의 처 김건희가 어떻게 국가 ‘시스템’을 하루 아침에 망가뜨리냐고 한탄하고 손가락질 하는 것도 부질없다. 그 손가학 끝이 향해야 할 곳은 바로 우리들 자신이기 때문이다. 김건희가 ‘시스템’을 망가뜨린 것이 아니다. 그 ‘시스템’이란 것이 한 사람이 독재, 월권할 수 있도록 원래 그렇게 부실했고, 영악한 김건희가 그 점을 노리고 이용했던 것 뿐이다.
윤석열은 지금도 자신의 계엄 선포가 야당 탓이라고 버티고 있고, 조희대와 지귀연 등은 내란 세력을 비호한다는 의심을 사고 있다. 윤석열, 조희대. 지귀연 같은 이가 다시 나오지 말하는 법도 없다. 이런 마당에 ‘관용과 자제’, ‘상식과 절제’ 운운하는 것이 당장에 무슨 의미가 있나!
관용과 자제는 미덕이다. 그러나 민주정치는, 문형배식의 미덕의 종용이 아니라, 그 미덕이 실천되지 않았을 때의 대책을 ‘시스탬(체제)’를 통해 구현하는 것이다. 차제에 문형배는 사람 탓을 왜 시스템 탓으로 돌리느냐고 할 것이 아니다. 기왕에 내친 김에 윤석열의 계엄이 다시 발생하지 않도록 하려면 ‘시스템’을 어떻게 마련할 것인가를 고민하고 대책을 제안해야 하는 것이겠다.
문형배의 제안은, 그 자체로서가 아니라, 공론과 소통의 장을 통해 다수의 의견을 수렴하여 결정에 이르러야 한다. 다수의 결정은 그 타당성 여부와 무관하게 유효한 것이고, 거기서 발견되는 문제는 다시 다수의 반성과 결정을 통해 다시 수정되어야 하는 것이다. 문형배식의 관료편의주의에 절은 제안은, 다수 결정의 절차를 거치지 않은 한, 독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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