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하고 딸하고 나하고, 가끔 아들에 대한 서로의 생각을 나누곤 한다. 우리 세사람이 내린 결론은 이렇다.

‘세상을 처음 방문한 영혼’

윤회가 있다면 딸은 여러 번 세상에 나온 고참 영혼 같다.

딸은 이런 저런 이치를 알려주지 않아도 두리두리 알아서 잘 산다. 좋게 말하면 융통성이 뛰어나고 나쁘게 말하면 꾀가 많다. 가끔 말 안 듣고 지멋대로 하다가 지 꾀에 지가 넘어질 때도 있다. 그럴 때면 “엄마 말 들을 걸. 내 꾀에 넘어졌네.” 라고 후회하지만 그 때뿐이다. 또 생글생글 웃으며 제 나름대로의 처세술로 척척 잘 헤쳐 나가기도 하고 넘어지기도 한다.

반면 아들은 처음 세상에 나온 신참 영혼 같다.

세상일을 잘 해내고 싶은 생각도 없다. 사람들과 잘 지내고 싶은 생각도 없다. 세상 불변의 이치를 설명해주어도 자신이 납득할 수 없으면 ‘왜?’를 연발하며 받아들이지 않는다. ‘거지’에 대한 고정관념이 없었던 것처럼 어떤 것에도 개념이 들어가질 않는다. 요샛말로 '무개념'인 백지 상태 아이같다.

요령 같은 것도 모르고 지나치게 솔직해서 상대방을 불쾌하게 만들기도 한다. 뭔가 궁금하면 가릴 것 안 가릴 것 분간 못하고 미꾸라지 같이 헤집고 다녀 엄마를 난처하게 한다. 관심 있는 것을 제외하고는 최대한 에너지를 아끼며 움직이지 않는다. 마치 창문에 턱을 괴고 앉아, 창을 통해 보는 세상이 재미있을까? 없을까? 궁리하면서, 발을 담글까? 말까? 망설이며 지켜보는 앳되고 자유로운 영혼 같다.

아들이 이러다 보니 기르면서 웃기는 것을 넘어 황당한 일도 참 많았다.

소꿉친구 현이가 우리 집에서 늦게까지 놀다가 돌아가게 되었다. "현이를 집까지 데려다 주고 와야지." 했더니 "왜 내가 데려다 줘야하는데?" 물었다. "어두워져서 무섭잖아. 넌 남자잖아" 했더니 "나도 무서워. 왜 남자가 데려다 줘야 하는데?" 물었다. 현이가 어색한 지 "아줌마 저 안 무서워요."하고 얼른 도망치듯 가버렸는데도, 미안해 하지 않고 "남자도 무서워"를 연발했다. 어르신들께 자리를 양보하라고 하면 "나도 많이 돌아다녀서 다리가 아픈데, 양보해야 해?"하고 물었다.

자기는 남자로 태어나서 너무 싫다고 했다. 왜 여자는 편하게 앉아서 쉬를 하는데 자신을 힘들게 서서 쉬를 해야 하는지 억울하다고 했다. 태권도는 땀이 줄줄 나도록 신나게 해도 등산을 가자고 하면 올라갔다 내려오는데 왜 땀 줄줄 흘리면서 가야하는지 모르겠다고 투덜거렸다.

초등학교 2학년 때였나? 하루는 슬픈 표정으로 아빠에게 이렇게 물었다. "아빠, 엄마하고 이혼하고 10살 젊은 엄마와 결혼하면 안 돼?" 자초지종을 물어보니 친구 엄마가 나보다 열 살이나 젊다는 거다. 아들을 33세에 낳았으니 23세에 아이를 낳은 엄마가 있겠지.. 엄마가 젊으면 자기와 오래오래 살 수 있는데, 엄마는 나이가 많아서 자기와 오래오래 살 수 없다고 거의 우는 표정으로 말했다. 굉장한 사실을 깨달은 거다. 나는 어이가 없어서 웃었는데 제 누나가 "너는 엄마면 다 같은 엄만 줄 아냐?. 바보 같은 소리 하네."라고 엄청 혼냈다. 아들은 세상에서 가장 좋은 엄마라는 존재와 그저 오래 살고 싶었을 뿐이다.

한번은 시내에 갔다가 전철을 타고 돌아올 때였다. 내가 "아이고 다리야"라고 무심코 한마디 했다. 아들은 이러 저리 둘러보더니 일곱 사람이 앉아 있는 좌석 중 조금 빈틈이 있는 곳에 가서 “울 엄마 다리가 아파요. 조금씩 비켜주세요” 했다. 나는 깜짝 놀라고 창피해서 저만큼 떨어져서 모른 척 창문을 보고 있었는데 어떤 아저씨가 웃으시며 큰 소리로 “아주머니, 여기 오세요. 아드님이 자리 만들어놨잖아요.” 했다. 전철 안은 웃음바다가 되었지만 나는 어찌나 민망하던지.. 여튼 눈치코치 빵점이다.

중국집에 가서는 주인아저씨에게 “옆 중국집보다 짜장면 값이 500원 비싼데 맛은 왜 별로 차이가 없어요?”라고도 물었다. 가까운 곳에 택시를 타고 가다가 기본거리도 채우지 않고 내리게 되면 “아저씨, 우리가 빨리 내려서 아저씨는 이익을 보셨는데 조금 안 깎아주나요?”라고 묻기도 했다. 또 "아저씨, 이 택시 사고 나서 오른쪽 문 갈았지요? 왜 사고 났어요?“라고 묻기도 했다. 개념없는 아이라는 소리도 들었지만, 아들은 상대방을 불편하게 하기보다는 그저 궁금했을 뿐이다.

군대문제도 그렇다. 군대 가서 죽으면 어쩔 거냐고, 군대 가서 맞으면 어떻게 하냐고, 나라가 나에게 해준 것이 뭣이 있는지 모르겠다고 궁시렁댄다. 캐나다에서 취직해서 영주권 받아 군대는 피하고 싶다고 했다. 충성, 의무, 나라사랑 이런 추상적 개념은 아들에게 통하지가 않는다. "군대 안가면 한국에서 살 수 없어서 엄마와 헤어져야 해"라는 현실적인 이야기가 먹혀 요새는 "군대 가기 싫은데... 가긴 가야하나 봐"라고 한다.

이런 4차원 아들이 부모와 떨어져 세상을 혼자 헤쳐 나가야 했으니 얼마나 힘들었을까?

아들이 12학년으로 가기 전, 이런 말을 했다.

아들 : 엄마, 유학생활이 공부만 힘든 것이 아니야. 남하고 산다는 것이 정말 힘들어. 교육청 바꿔서 새 호스트집에서 모르는 사람들과 살아야하는 것 생각하면 정말 가기 싫어. ‘좀 더 먹어도 되요?’ 이 말 또 해야 하고... 하기 정말 싫은데.

나 : 그래도 해야지. 배고파서 밤새 잠이 안와 뒤척이는 것 보단 낫잖아. 아예 첨부터 ‘쟤는 많이 먹는 아이다’ 그렇게 생각하시게끔 처음에는 매일 저녁마다 ‘좀 더 먹어도 되요?’ 여쭤보는 것이 좋지 않을까?

아들 : (한참을 생각하더니) 알았어, 그렇게 해볼게

나 : 너무 걱정하지 말고. 이번에 지원서 쓸 때 네가 원하는 호스트를 ‘충분한 음식을 주는 집’이라고 써서.. 음식은 충분히 주는 집으로 보내주실 거야.

아들 : 정말 그랬으면 좋겠어.

성장과정이 늦어 아직도 키가 크고 있는 아들에게 음식은 굉장히 중요한 문제다. 솥단지 끌어안고 먹을 때인데, 먹고 나서 뒤돌아서면 배고플 때인데, 캐나다의 처음 호스트 집에서는 음식을 충분히 주지 않았다. 관리자에게 옮겨달라고 이야기하라고 했지만, 또 낯선 집으로 옮겨가서 새로 적응해야하는 것이 힘겨운 아들은 쉽게 움직이지 않았다. 아들은 견디다 견디다 1년 4개월 만에 관리자 선생님을 들들 볶아 충분한 음식을 주는 가정으로 옮겼다. 지역을 옮겨 또 새로운 집으로 가게 되니 걱정인가보다. 그래도 나는 걱정하지 않는다. 만약 뭔 문제가 생기면, 비록 남들보다는 늦게 가더라도 예전보다는 빨리 스스로 문제해결을 할 것이다.

11학년을 다니면서 이런 일도 해냈다.

아들은 방과 후 헬스클럽에 가서 운동을 하고 싶어 했다. 알아보니 저렴한 YMCA에서도 매월 60불을 내야했다. 한국에서 보내주는 용돈이 넉넉하면 60불도 문제가 되지 않으련만 간신히 살아갈 용돈만 받는 아들은 ‘간식을 포기하느냐, 운동을 하느냐’로 무척 고민을 한 후, 둘 다 포기할 수 없어 YMCA에 가서 회비를 깎아달라고 했다. 담당자께서 종이 한 장을 주면서 왜 회비를 다 낼 수 없는지, 자신이 낼 수 있는 돈은 얼마인지 써오라고 했다. 아들은 구구절절 부모님이 보내주시는 용돈은 얼마고, 그 돈으로 자신은 뭣뭣을 해야 하고, 자신은 유학생이라 알바로 돈을 벌 수가 없어서 낼 수 있는 돈은 5불이라고 썼다. 그 이야길 듣고 남편과 나는 얼마나 웃었는지 모른다. 10불도 아니고 5불이라니? 너무 하다 싶었다. 아마 계산상 남는 돈이 5불이라 솔직하게 쓰지 않았나 생각한다. YMCA에서는 일주일 안에 연락을 준다고 했지만 소식이 없었다. 아마 5불에 기가 막혀 고민하지 않았나 싶다. 하지만 끈질긴 아들의 요청에 결국 월 5불에 등록해주었다. 예전의 소심하고 자존심 강한 까칠한 아들에서 넙죽반죽 아들이 되었다. 물론 캐나다니까 통했겠지만..

12학년 전학을 위해 새 교육청 지원서를 썼는데 자신의 성격특성을 고르는 문항이 있었다. 아들은 여러 특성 중 shy, outgoing, neat, independent, polite 라고 골랐다. 어려선 엄마 치맛자락만 붙잡고 다닌다고 마마보이로 소문난 아들인데 스스로 'independent'를 선택한 걸 보고 크긴 컸구나 생각했다.

여전히 아쉬운 점도 있다. 마늘을 깔 때였다. 마늘 냄새가 손에 배면 독하니까 혼자 까려고 했다. TV 보던 아들이 옆에 와서 같이 까주겠다고 했다. 한참을 까는데 아들 친구에게서 문자가 왔다.

나 : 친구가 보자고 해?

아들 : 응. 지금. 근데 내가 효도 중이라고 좀 있다 보자고 했어.

나 : 괜찮아. 그냥 만나. 엄마가 할게

아들 : 엄마 혼자 이걸 언제 다 까~

나 : 고맙네. 엄마 생각 많이 해주네.

아들 ; 그니까. 엄마는 복 받은 줄 알아. 나 같이 착한 아들이 어디 있어?

나 : 그래 울 아들 착하지. 그런데 공부도 잘했으면.. 쫌만 더 신경 쓰면 잘 할 것 같은데...

아들 : 엄마~~ 나에게 너무 많은 걸 바라지마.

나 : 짜식. 말이라도 그냥 ‘더 열심히 할게요.’ 하면 얼마나 좋아.

마음을 비우려고 해도 아직도 안 되는 것이 아들이 공부 잘했으면 하는 거라, 가끔 아들에게 공부타령을 하다가 구박도 받는다. 애구.. 청소년기에 부모 자식 간에 공부 때문에 원수가 되기도 한다는데, 너무 많은 걸 바라지 말아야지. 건강하게 씩씩하게 자라준 것만도 어딘가? 삶이 살 만하다고 느끼는 것만도 어딘가? 딸이 말했듯이 빵점보다 더한 마이너스 자신감에서 플러스 자신감으로 올라온 것만도 어딘가? 내가 마음을 비워야지.

아들은 12학년을 위해 또 엄마 품을 떠난다. 10개월 후에는 어떤 모습으로 다시 나타날까? 어디로 튈지 모르는 아들이 부디 착하게, 지 표현으로 '나름 열심히' 지내다 오면 좋겠다.

▲  2010년 9월 출국하기 전, 지리산계곡에서.

여행가기 며칠 전 아들과 딸이 설거지하는 것 땜에 티격태격 다퉜다. 그런데 두 아이들은 이틀만 지나면 원래대로 돌아간다. 주로 딸이 먼저 말을 건다. 아들은 "누나가 더 잘못해서 먼저 말을 거는 거야”라고 하지만 딸은 이런다. “엄마, 나는 왜 자고나면 싸운 것을 잊어 먹지?” 성격 하나는 좋은 딸이다.

▲ 아들이 물에 빠져 죽은 척을 한다. 딸이 놀래 구하러 간다. 물론 장난이다. 아직도 저러고 논다
▲ 지인 집에서

지인이 딸을 낳아 보러 갔다. 딸은 아기를 안아보고 있다. 아들은? 저 뒤에 아들의 팔과 다리가 보인다. 지인의 4살짜리 아들이 가지고 노는 미니열차 레일을 보더니 바로 직행해서 자리를 잡는다. 이리 맞추고 저리 맞추어 결국 청룡열차 흉내 낸 레일을 만들고는 거의 누운 자세로 미니열차를 작동시키며 깔깔 댄다. 아기는 한 번도 안아 보지도 않고, 4세 유아수준이 되어 놀다가 왔다. ㅎㅎㅎ 주의를 줬어야 했나?

 

편집 : 박효삼 편집위원

김미경 편집위원  mkyoung6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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