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의 계단

1970년대 ‘별들의 고향’으로 엄청난 인기를 누렸던 작가 최인호, 많은 소설과 영화 등으로 친숙한 그는 1997년 ‘상도’를 발표하면서 다시 한 번 그의 저력을 유감없이 발휘하였습니다. 대만 친구 중에서는 한국 연속극 중에서 가장 좋은 작품으로 ‘상도’를 꼽기도 하더군요.

고인이 된 작가의 작품 중에 1988년에 쓴 소설 ‘천국의 계단’이 있습니다. 애인이 월남에 파병군인으로 갔다가 전사를 했다는 통보를 받고 파란만장한 삶을 사는 여배우 유미의 이야기를 쓴 소설입니다.

죽은 줄 알았던 애인이 두 다리가 불구가 되어 살아있음을 알게 되고 해피엔딩으로 마무리되지요.

좀 어설프기는 해도 유사한 엔딩으로 끝나는 소설이 있습니다. 내용보다는 제목으로 영원히 회자될 ‘순애보!’ 중학교 까까머리 시절 남산 시립도서관에서 한국문학은 모조리 다 읽겠다는 당찬 포부로 마구잡이로 읽던 시절에 본 소설입니다. 마지막 장면만 생각이 납니다. 명희가 억울하게 장님이 된 남자 주인공을 찾아가는 걸로 끝이 나지요. 당시엔 꽤 오랫동안 여운이 남는 감동을 받았었지요. 왜 감동적인 글에는 남자를 비극의 주인공으로 만들어야 하는지? 왜 평생 여자의 헌신을 강요해야 하는지?

그동안 ‘순애보‘가 純愛譜인줄 알았는데, '따라죽는다'는 의미의 ’殉’자를 썼음을 이제야 알았습니다.

위에 언급한 ‘상도’ 내용 중에서 한 가지 아쉬웠던 부분을 언급하려고 합니다. 주인공인 거상 임상옥이 실존인물인지는 제가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내용들은 말 그대로 소설이지요. 사업을 하려는 사람뿐만 아니라 일반인에게도 참으로 큰 가르침을 주는 좋은 책입니다.

내용 중에 임상옥이 처음 상단을 끌고 연경에 가서 큰돈을 벌지요. 그리고 유곽에 팔려온 한 여인을 거금을 주고 자유의 몸이 되게 해줍니다. 이 일이 문제가 되어 상단을 떠나지만 나중에 그가 도와준 여인이 고관의 첩이되어 임상옥이 중국과의 무역으로 거상이 되게 도와준다는 내용이 있습니다.

이 이야기는 조선 선조 때 실존 인물인 역관(통역) 홍순언의 이야기입니다. 홍순언은 서자 출신이라 과거를 응시할 수 없는 신분이었지요. 역관은 당시 중인이 할 수 있는 괜찮은 직업이었고요. 그래봐야 무슨 벼슬도 아닌 그냥 통역이지만.

홍순언에 관한 이야기는 여기저기 꽤 나오는데 내용이 조금씩 다르기는 해도 홍순언이 은혜를 베풀어 유곽에서 구해준 여자가 나중에 명나라 예부시랑 석성의 계비, 즉 부인이 죽고 후처가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조선왕조실록에서 본 듯한데, 홍순언이 역관신분으로 사신을 따라 연경으로 가는 중에 통주라는 곳에 머물렀습니다. 청루에 들어가 매우 아리땁고 우아한 여인에게 술시중을 들게 하였는데, 보니 소복을 입고 있습니다. 호기심에 듣자하니 아버지가 연경에서 벼슬살이를 했는데 역병이 들어 부모가 함께 돌아가시고, 무남독녀인 자기 혼자서 부모님을 고향에 모시고가 장례를 치룰 수 없어 처음으로 유곽에 나왔다고 합니다. 얼마가 필요하냐고 물었더니 금 3백 냥이 필요하다고. 의기가 동한 홍순언이 전대를 풀었고, 그녀는 거듭 은인의 성함을 묻자 마지못해 ‘홍’이라는 성만 알려주고 나옵니다. 귀국해서 홍순언은 공금을 사적으로 유용했다하여 옥에 갇힙니다.

그 이후 조선 사신이 의주를 벗어나 중국 땅에 들어가면 어디선가 말을 몰아 달려와 ‘홍통역관’이 있냐고 묻고는 없다고 하면 그냥 가곤 합니다.

조선왕실에서는 아주 골치 아프고 치욕적인 문제가 있었습니다. 태조 이성계의 아버지 이름이 대명 법전에 잘못 기록이 되어있었고, 수차례 사신을 보내 정정을 해달라고 해도 이런저런 핑계로 선조때까지도 이성계의 아버지가 고려시대 권신 이인임으로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이 족보를 정정하기 위한 변무사로 황정욱이 정해졌고, 황정욱은 앞선 사신들로부터 홍통역관을 찾는다는 이야기를 들었던지라 홍순언을 역관으로 추천하여 함께 갑니다. 결론은 조선왕실의 200년 숙원을 예부시랑 석성의 도움으로 해결하였고, 후에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때 이여송을 파견하게 한 사람도 석성이었지요.

다시 천국의 계단으로 돌아갑니다. 바로 실존하는 ‘애정천제(愛情天梯,애정의 하늘 계단)’! 영화 제목이기도 합니다.

중국 충칭(重慶,중경)의 江津中山古鎭高灘村(강진중산고진고탄촌)에 살던 촌민 류꿔쟝(劉國江,유국강)이 16살 어린 나이에 마을의 한 여인을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문제는 10살 연상에다가 과부라는 사실입니다. 21세기인 지금도 만만치 않은 일 일진데, 1950년대 작은 시골 마을에서는 참으로 가당치 않은 이야기였지요.

상대 여자인 쉬자오칭(徐朝淸,서조청)은 16살에 결혼을 하여 26살에 남편이 죽고 4명의 어린 아이를 데리고 힘겹게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류’는 그녀를 위해 물도 길어 나르고 땔나무도 져다 나르며 사랑을 키워갔습니다. 그렇게 4년이 흐르자 둘이는 사랑하는 사이가 되었지요. 작은 마을에는 온통 그들 이야기로 분분합니다.

그래서 둘이는 결정을 합니다. 세상의 시비에서 벗어나 살자고. 1956년 그들은 마을 사람들을 피해 해발 1,500미터의 깊은 산속으로 들어가 세상과 단절된 삶을 살아갑니다. 그들은 서로 ‘샤오훠즈(小夥子,젊은이, 총각)‘,’라오마즈(老媽子,엄마)‘라고 불렀지요. ’젊은이‘ 류는 ’오마니‘ 쉬를 극진히 아꼈습니다. 혹시 생활용품을 구하러 마을에 갈 때 불편할까봐 하나하나 계단을 뚫어 나갔습니다. 50여년 평생을 바쳐서. 무려 6,000여개의 계단을 만들었지요. 사실은 평생 몇 번 내려간 적 없다고 합니다.

▲ 세상을 등지고 50년 이상을 저렇게 두 손 마주잡고 살아온 부부.어쩌면 그들은 세상에서 가장 가난한 사람이겠지요. 물려줄 재산도 없는!
(출처:news.gamme.com.tw)

2001년 여행객에게 우연히 이 계단이 발견이 되었고, 매스컴을 통해 알려지게 되면서, 많은 중국인들을 감동시켰습니다.

‘류’는 혹시 계단이 미끄러워 ‘쉬’가 넘어질까 봐 계단을 쓸고 닦아서 이끼가 낄 틈이 없었답니다.

▲ 생전의 단란했던 두 사람. 서로를 ‘젊은이’, ‘오마니’라고 평생을 불렀답니다.‘류’는 비가 오고나면 계단을 닦아서 미끄럽지 않게 하였습니다. 또한 계단도 미끄럽지 않게 팠고요.
(출처:news.gamme.com.tw)

2007년 12월 72세의 젊은이 ‘류’가 세상을 먼저 떠납니다. 그리고 처음으로 오마니 ‘쉬’는 혼자서 이 계단을 내려와 아들에게 가지요. 전에는 항상 젊은이 ‘류’가 부축을 해서 함께 걸었던 그 계단! 그날은 비가 몹시도 많이 내렸답니다. 수없이 미끄러지고 넘어지며 아들에게 간 ‘쉬’는 다시 산을 오르려고 합니다. 이미 상처도 많고 기진맥진한 어머니를 만류해서 아들과 함께 살지요.

들리는 말에 의하면 남편이 세상을 떠날 때, 그녀는 ‘류’의 손을 오래오래 꼭 잡고 있더랍니다. 그리고 중얼거리는 말: “‘샤오훠즈‘ 당신은 나보다 젊은데 어떻게 나를 버리고 먼저 갈 수가 있단 말이오........?”

▲ 홀로 남은 쉬자오칭! ‘샤오훠즈’ 제발 자기를 데려가 달라고 염원하던 그 사람 곁으로 87세의 나이에 떠났습니다.
(출처:news.gamme.com.tw)

홀로 남은 그녀는 天梯(하늘 계단)을 바라보면서 남은 생을 살다가 5년 후 2012년 87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평생을 사랑했던 그의 ‘젊은이’ 곁으로.

남아있는 6,000여개의 계단은 아마도 사회와 소통하고 싶은 그들의 염원은 아니었을까요?

▲ ‘류‘는 혼자 힘으로 저렇게 6,000여개의 계단을 다듬었습니다.그는 돌 하나, 나무 한그루 소유하지 않았기에 저 자연의 주인이었고, 사랑을 주기만 하였기에 영원한 사랑을 얻었습니다.
(출처:news.gamme.com.tw)

만리장성의 위용을 보면서 느껴야했던 수많은 고통과 죽음, 절대권력 아래 강제되어야했던 노동과, 천국의 계단을 보면서 느끼는 사랑과 행복, 자의로 선택한 자만이 누릴 수 있는 축복의 노동! 오늘도 머릿속에 맴도는 화두입니다.

참고: 애정천제(愛情天梯)는 2013년 4월 12일 news.gamme.com.tw에 발표된 글을 참조하였습니다

편집 : 안지애 편집위원

김동호 주주통신원  donghokim01@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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