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관 조고와 비선 최순실!

지록위마의 사전적 의미는 ‘윗사람을 농락하여 권세를 제 마음대로 휘두르는 짓’이라 합니다.

중국 역사 최악의 환관 조고, 환관은 우리나라에서도 박근혜정부 들어서 자주 언급되었던 내시를 일컫는 말입니다. 조고가 진나라를 망하게 했듯, 명나라 때 환관 위충현은 동창이란 정보조직의 우두머리가 되어 권세를 휘두르다 명나라가 망하게 하는 빌미를 제공하지요.

원래 그릇이 안 되는 어리석은 호해는 가짜 유서를 이용 진시황의 뒤를 이어 2세 황제가 되지요. 호해는 태자 부소를 비롯한 다른 형제들도 모조리 죽입니다. 정치는 승상 이사와 조고에게 맡기고 본인은 사치와 향락에 빠집니다.

권력의 추는 누가 더 권력자와 가까이 있느냐에 따라 기울지요. 비록 이사가 승상이라 할지라도 황제의 지근거리에 있는 환관을 당할 수는 없는 법. 결국 조고는 온갖 모략으로 이사를 반역죄로 몰아 이사의 자손들까지 모조리 처형을 하고 맙니다. 그리고 스스로 승상이 됩니다.

이제 권력까지 쥔 조고는 시답잖은 호해를 제거하고 자기가 황제가 되겠다는 생각을 하지요. 우선 조정의 신료들부터 장악을 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어느 날 한 사람이 사슴을 끌고 들어옵니다. 조고는 이 사슴을 끌고 어전에 나아가 말하지요. “폐하, 폐하를 위해 좋은 말 한 필을 구해왔습니다.”

▲ 사진출처: timetw.com

“승상은 장난이 심하구려! 사슴을 가리켜 말(指鹿爲馬)이라 하는 거요?”

“아닙니다. 말이 틀림이 없습니다.”하고 조고가 계속 우깁니다.

그러자 호해가 중신들을 보고 묻지요.

“공들이 보기에 저것이 말이오? 사슴이오?”

조고의 권세에 아첨하는 대부분의 신하들이 말이라고 대답을 하였고, 그중 몇몇은 그래도 사슴이라고 바른 말을 합니다. 그렇게 바른 말을 했던 신하들은 모조리 조고의 칼날아래 죽임을 당하지요. 그 후로 진나라의 권력서열은 확실하게 자리매김을 합니다. 어느 누구도 조고의 권위와 말에 함부로 도전하는 자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버러지처럼 꿈틀거리다 시들 줄 알았던 민심이 문제였지요. 기원전 209년 진시황이 죽은 1년 후에 진승과 오광이 반란을 일으켜 왕이라 칭하고, 그동안 폭정에 눌렸던 백성들이 전국에서 가담을 하는 형국이 되었지요.

이미 권력에 눈이 먼 조고는 기원전 207년 군사들을 끌고 나타나 2세 황제 호해에게 자결을 하라고 합니다. 살려달라고 애걸복걸하는 호해를 조카를 시켜 죽입니다. 당시 호해 나이 24살. 기원전 210년 황상에 오른 후 만으로 3년이 넘고 햇수로 4년인가요?

조고의 칼이 무서워 벌벌 떨던 중신들도, 내시가 황제가 된다는 거는 받아들일 수 없었나봅니다. 그래서 후임 황제를 물색하는데, 발탁된 인물이 억울하게 죽은 전 태자 부소의 아들 자영입니다. 자영은 그렇게 만만한 인물이 아니었지요. 자영은 사전에 여러 장수들과 모의를 하여 즉위식 전날 밤에 자객들을 보내 조고와 그 가문을 모조리 살해합니다.

하지만 진나라는 이미 통일국가는 아니었습니다. 진승과 오광의 뒤를 이어 항우의 숙부 항량이 권력을 차지합니다. 항량은 이미 진에 멸망한 초나라 왕손을 왕위에 앉히고 진과 대결을 합니다. 크게 승리를 한 후 방심하다 결국 죽고, 천하의 장사 항우가 권력을 잡습니다. 바로 초패왕 항우이지요. 당시 항우가 주력이었고, 유방은 그 아래 별동부대 정도 되었습니다.

따라서 자영을 3세 황제라 칭하지 않고 그냥 진왕이라 부르기도 하지요. 자영은 중신들의 건의를 받아들여 함양에 들어온 유방에게 항복을 합니다. 뒤늦게 주력을 끌고 나타난 항우는 자신이 아닌 유방에게 항복한 자영이 못마땅해 추궁을 하다 단칼에 죽이고 맙니다. 왕위에 오른 지 36일 만에 진과 함께 유명을 달리했습니다. 어떤 나라도 어떤 권세도 영원할 수는 없습니다. 많은 사람의 피와 원한 위에 쌓은 권세는 그 후손들까지도 더 비극적이고, 더 비참하게 만들지요.

조고가 아니었어도 과도한 폭정과 만리장성, 아방궁, 황릉 등의 무리한 건축으로 백성들의 고혈을 쥐어짰고, 진나라 이외의 백성들에게 가해진 불평등한 대우로 진나라는 멸망할 수밖에 없었지만 환관 조고가 결정적인 역할을 한건 맞습니다.

대한민국이 앞으로 몇 백 년을 이어갈 지 알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대한민국 역사에 최악의 대통령으로 기록될 박근혜에 관해서 언급할 생각은 없습니다. 대통령에 당선되자마자 국가적인 불행을 언급했었습니다.

최순실이 비록 내시는 아니지만 박근혜 지근거리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하였더군요. 박근혜 앞에선 마치 고양이 앞의 쥐처럼, 눈도 똑바로 뜨고 쳐다보지 못하는 듯 처신을 했지만, 교묘한 방식으로 현혹하여 가족들과 멀어지게 하고, 관심사를 얼굴과 몸치장에 쏟게 하였고요. 스스로 판단력과 이해력이 부족한 대통령을 이용하여 마치 자신의 이익이 국가의 이익인양 호도하여 나라 같지 않은 나라를 만들어놨습니다. 왕조시대에 억울한 백성이 신문고를 두드리면 왕이 직접 그 백성의 억울함을 풀어주었듯이, 어리석은 본인은 국가를 위해 헌신했다고 하지만 결국 최순실의 이익을 위한 민원 해결사였습니다.

지금 대한민국의 갈등은 세대, 동서, 부자간에 끝 모르게 이어지고 있습니다. 조고의 지록위마 앞에서 사슴이라고 주장하는 사람과 말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존재하듯, 지금 우리 사회에는 촛불을 든 국민과 태극기와 성조기를 든 국민이 함께 존재합니다.

▲ 2016년 12월 10일. 몹시 추원던 토요일 촛불집회에서.

각자의 위치에서 한걸음 물러나 바라보시죠. 누가 옳고 누가 그른가요? 관점의 차이이지 옳고 그름의 차이는 아닙니다. 바로 실리를 중시하느냐, 대의명분을 중시하느냐의 선택입니다. 물론 도덕과 양심에 따른 비난은 할 수 있어도 상대방의 선택 자체는 인정을 해야 나의 주장도 가능하지요. 입신양명과 부귀영화를 바라고 조정에 들어온 관료들에게 성녀처럼 살라고 요구하는 것도 무리이고, 대의를 위해 가족까지 희생을 시키는 것 또한 올바른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겠습니다.

명나라 군대가 조선파병을 한 이후 급속히 약화되어 만주족의 침입으로 무너지고 말지요. 지록위마 앞에서 말이라고 주장했을 사람들은 청과의 결사 항전을 선택하였겠지요. 청나라와 화해를 하자는 사람들에게는 은혜를 모르는 배은망덕한 소인배라 몰아붙였겠고.

덕분에 모시던 군주는 머리를 풀고 피가 나게 돌에 이마를 찧어 가며 적장에게 항복을 하고, 아무런 선택권도 없었던 불쌍한 백성들만 전쟁의 참화를 입고 억울한 죽음을 맞이합니다.

정말 보수인지는 의문이 있으나, 우리의 태극기 집회에 성조기가 꼭 등장을 합니다. 일제하에서는 천황폐하를 부르며 일장기를 휘둘렀을 사람들과, 공산당이 내려오면 인공기를 들었을 사람들과 크게 다르다는 생각이 들지 않습니다.

위에서 언급하였듯이 개인의 성향입니다. 미국의 간섭을 싫어하는 사람들은 중국의 간섭도 싫고, 북한의 간섭도 용납을 못하지요. 지금 친미냐, 친중이냐를 놓고도 서로 다른 주장을 하는데 어리석기 한이 없습니다. 스스로의 힘과 역량을 키우지 않고 어떤 선택을 해도 결과는 불행입니다. 힘과 역량이 부족하면 자주적인 노력으로 국가의 존엄을 지켜야하거늘 이쪽저쪽 눈치만 보다 그들의 제물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 2016년 12월 10일. 몹시 추원던 토요일 촛불집회에서.

이제는 여유를 갖고 나와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의 생각과 의견에 귀를 기울이는 아량이 요구됩니다. 그들도 함께 역사의 바퀴를 굴리는 다른 쪽 바퀴이기 때문입니다.

기억에 남는 박효삼 선생님의 글로 마무리를 합니다. ‘우리가 옳다고 여겼던 일들이 항상 옳았던가?’

편집 : 안지애 편집위원

김동호 주주통신원  donghokim01@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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