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병의 고장 보성군 의병사] 27. 의병용장 염재보(簾在輔)의 혈전기 2

김선태 주주통신원l승인2017.11.19l수정2017.11.19 1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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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병용장 염재보(簾在輔)의 혈전기 2

 

- 1908년 9월 13일 보성, 순천 주둔 병력과 문덕 외가령에서 대전하여 왜적 수십명을 포살하였다.

- 11월 1일 아군 100여 명을 인솔하고 가서 흥양 주둔 헌병청을 습격하여 소탕하였다.

- 11월 12일 화순 주둔 헌병을 몰아내기 위해 향군하던 중 정보가 누설되었다는 소식을 접하고 되돌아왔다.

- 1909년 2월 초 장흥 세무감독청을 보성으로 옮기려는 것을 막았다. 장흥세무감독이 헌병 호위를 받아 복내 평주에 주둔하였다가 민가 수십 호를 불지르고 주민을 학살하는 등 민심을 교란시키므로 기습작전을 벌여 소탕했다.

▲ 염재보활동 재현 그림

- 2월 12일 어머니 상을 당하였다. 상 치르는 중에 적은 병력을 증강시키고 정탐과 수색을 일삼았다. 친척과 부락민들을 압박하는 와중에도 염재보는 변장하고 적들의 동태를 살피었다.

- 4월 4일 유우삼 분대를 무장시키지 않고 복내시장에 몰래 들어가게 하였다. 적 3명을 방망이로 죽이고 많은 병기를 빼앗았다.

- 4월 20일 적 7중대와 득량 박실에셔 교전하여 대장 평정탄시(平井灘市) 이하 수십 명을 잡거나 사살하고 많은 무기를 빼앗았다.

- 6월 초순 흥양 헌병대와 마륜에서 맞붙어 싸웠으나 싸움이 이롭지 못하여 물러섰다.

이외에도 여러 번의 싸움이 있었다.

염재보는 의병으로 싸우다 죽은 많은 시체를 거두어 장례 치러 주었고 부상자는 손수 약을 조제하여 치료해주었다. 특히 총과 칼, 탄환까지 직접 만들어 보급해가면서 싸웠다.

▲ 염재보 사적비

불과 50여 명 인원으로 뜻을 모아 수백 명 의병을 모았다. 의병들은 수많은 전쟁에서 피 흘리며 온 힘을 다해서 싸웠으나 나라의 세는 갈수록 기울어 갔다. 1909년 8월 왜적은 2개 연대 병력을 동원하여 각 지역을 포위하니 우리 의병들은 탄환도 떨어지고 군수물자도 공급이 되지 않아서 적과 싸울 상황이 아니었으므로 8월에 의병을 해산하였다. 안대장에 이어 1909년 9월 12일에 염재보도 붙잡혔다. 광주감옥에 수감되어 있다가 1910년 3월 대구로 이송되었다. 나라를 구하겠다는 큰 꿈을 이루지 못한 채 6월 12일 42세의 젊은 나이로 한을 품은 채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당시 유족 미망인 김씨 부인과 수옥, 승옥, 준옥 삼형제를 다 잃었다.

적 8중대장의 지휘검을 3세손인 철호씨가 보존하고 있다.

 

<참고 : 본 혈전기는 종군 서기장 염재업 의사의 “실전기”에서 발취하여 수록한

1974년판 寶城郡鄕土史를 참조함>

 

***전자책 본문보기***

http://edit.upaper.net/Editor/Preview.aspx?cid=156296

 

편집: 양성숙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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