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주도 한라생태숲에서 만난 합다리나무, 높이 15m가량 자란다.

산나물 하러 변산에 가다

합나리나무 하면 나에겐 잊을 수 없는 추억이 있다. 초등학교 5, 6학년 때였을까, 봄에 사촌형을 따라 변산에 산나물을 하러 갔다. 우리 마을 뒤쪽에는 나지막한 배메산과 누역메산이 있다. 가깝지만 그곳에서는 산나물을 다양하게 할 수가 없다. 도시락까지 싸가지고 굳이 우리 동네에서 7~8km쯤이나 떨어진 변산 개암사 근처로 산나물을 하러 갔다. 그곳 개암사는 초등학교 때부터 봄가을로 으레 소풍가는 곳, 입구에는 커다란 저수지가 있다. 형과 나는 바로 저수지 왼쪽 산자락으로 올라갔다. 그땐 큰키나무는 찾아볼 수 없는 민둥산이나 다름없어 산나물이 지천이다. 정신없이 풀숲을 헤치고 다니면서 고사리도 꺾고, 취나물도 뜯고, 합다리순도 땄다. 더 이상 들어갈 수 없을 정도로 자루에 잔뜩 채워 힘들게 짊어지고 집에 돌아왔다. 은근히 산나물 많이 해 왔다고 부모님의 칭찬을 기대하며.

합다리순을 잘못 알고 굴피나무 새순을 따오다

▲ 합다리나무와 참죽나무의 잎은 작은 잎 여러 개로 된 깃꼴겹잎으로 비슷하면서도 서로 다르다.
▲ 합다리나무와 비슷한 굴피나무 새순, 둘 다 작은 잎이 여러 개가 달린 깃꼴겹잎이다.

어머니께서는 고생했다며 자루를 받아 마루에 올려놓고 나물을 펼쳐 놓으시더니 웃으시면서 이건 합다리순이 아니란다. 아니, 이럴 수가? 전에 누나들이 해온 산나물에서 합다리순을 본 적이 있어 아는데? 그땐 합다리순은 참죽나무순과 비슷하게 생겼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형한테 묻지도 않고 자신 있게 욕심껏 땄던 것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내가 합다리순으로 잘못 알고 따온 것은 아마도 굴피나무의 새순이 아니었을까 싶다. 둘 다 작은 잎이 여러 장 달리는 깃꼴겹잎이니까. 굴피나무의 새순은 먹을 수 없으니 아깝지만 죄다 버릴 수밖에! 자고로 반식자우환(半識者憂患)이라 하지 않았던가. 확실하게 알지 못하고 안다고 생각한 것이 어린애 몸을 생고생시켰다.

합다리나무라는 국명의 유래

▲ 봄에 피어나는 합다리나무 새순은 다리가 긴 학의 모습을 방불케 한다.

현재 우리가 ‘합다리나무’라고 부르는 국명은 정태현, 도봉섭, 이덕봉, 이휘재가 저술하고 조선박물연구회에서 1937년 간행한 <조선식물향명집(朝鮮植物鄕名集)>에서 유래한다. ‘합다리나무’라는 국명 외에 정태현 <조선삼림식물도설(1942)>에서는 ‘합대나무’라고도 하였고, 제주도에서는 ‘합순낭’이라 한다. 제주도 방언에서는 ‘학(鶴)’을 ‘합’이라 하고 ‘나무’를 ‘낭’이라고 한다. 이 외에 지역에 따라 합잘나무, 하부다리, 합다리, 갓다리, 박다리꽃 등 다양하게 부른다. 그런데 왜 ‘합다리나무’라고 부르게 되었을까? 줄기에 새로 나오는 가지가 마치 학의 다리처럼 가늘고 길어 처음엔 ‘학다리나무’라고 부르던 것이 ‘합다리나무’로 변했을 것이라고 짐작한다(박상진 교수의 홈페이지 ‘나무세상’). 실제 새봄에 가늘고 긴 줄기 끝에 보송보송한 솜털을 달고 나오는 새순을 보면 학의 모습을 방불케 한다.

합다리나무 형태적 특성

▲ 가지 끝에 원추꽃차례에 달린 합다리나무 황백색 꽃, 은은한 향기가 있다.

합다리나무는 높이 15m 정도로 자라는 낙엽 큰키나무이다. 줄기 거죽은 회갈색 내지 검은 회색인데 매끄럽지만 세로로 난 골이 희미하게 보이고 껍질눈이 듬성듬성 있다. 어린 줄기는 위로 곧게 자라는데 나중에 다 크면 가지가 옆으로 넓게 퍼진다. 가지 끝에 달린 둥근 모양의 겨울눈은 눈껍질이 없는 맨눈인데 갈색의 누운 털로 덮여 있다. 여기서 잎과 꽃이 함께 나온다. 잎은 어긋나며 4~8쌍의 작은 잎으로 된 길이 15~30cm의 홀수 깃꼴겹잎이고 가지 끝에 모여 달린다. 작은 잎은 다소 가죽질 또는 막질이며, 길이 4~12cm, 너비 2~3.5cm의 타원형-도란형이다. 잎끝은 길게 뾰족하고, 잎밑은 둥글거나 좁은 쐐기꼴이다. 잎가장자리는 윗부분에 거의 까락 같은 뾰족한 톱니가 성기게 있다. 표면은 광택이 나며, 주맥에는 연한 갈색의 누운 털이 있다. 잎 앞면에는 짧은 털이 있고, 뒷면 중앙 맥 위 또는 맥겨드랑이에 부드러운 황갈색 털이 밀생한다. 잎자루는 길이 3~10cm이며 윗부분에 홈이 진다. 작은 잎 자루는 매우 짧다. 꽃은 6~7월에 가지 끝에서 나온 원추꽃차례에 연한 황백색의 양성화가 모여 달린다. 꽃대는 길이와 너비가 각각 15~30cm, 가지의 거의 3배에 달할 만큼 크고 갈색 털이 있다. 꽃 지름은 3~4mm이며 꽃받침열편은 5개이고 길이 1mm 정도의 타원상 난형이다. 꽃잎은 5개, 바깥쪽의 3개는 길이 2mm 정도의 아원형이며 안쪽의 2개는 선형이고 수술보다 약간 짧다. 수술은 1~2개이고 나머지는 헛수술이며 자방에는 털이 밀생한다. 작은 꽃자루는 길이 1~1.5mm로 짧다. 열매는 핵과, 지름 4~5mm의 구형이며 9~10월에 붉은색으로 익는다. 핵은 지름 4~7mm, 둥근 모양이고 암갈색이며 표면이 울퉁불퉁하고, 중륵이 뚜렷하게 돌출한다.

▲ 합다리나무 접사한 황백색 작은 꽃, 꽃잎은 바깥쪽 3개, 안쪽 2개이다.

합다리나무의 학명
합다리나무를 학명으로 “Meliosma oldhamii Miq.”라 한다. 속명 ‘Meliosma’은 꿀을 뜻하는 그리스어 'meli'와 향기를 뜻하는 'osma'의 합성어로 꽃에서 꿀처럼 향기로운 냄새가 난다는 뜻이다. 실제 합다리나무 종류는 꽃에서 꿀 냄새가 나는 것은 물론 따뜻하고 습한 날씨에는 잎에서도 신 우유에서 나는 냄새가 희미하게 난다고 한다. 종소명 'oldhamii'는 영국 왕립식물원 Kew Gardens의 식물채집가로 타이완 북부에서 일했던 Richard Oldham(1837~1864)의 공적을 기념한 것이다. 명명자 Friedrich Anton Wilhelm Miquel(1811~1871)은 네덜란드 식물분류학자로 특히 동인도와 수리남의 식물상에 관심이 많았으며 약 7,000 종의 식물명을 발표했다. 중국에서는 紅柴枝(홍시지)[hong chai zhi]라 하고, 일본에서는 ヌルデアワブキ(누루데아와브키)라고 부른다. 영명은 Oldham’s meliosma이다.

합다리나무의 분류학상 위치

▲ 합다리나무 잎은 깃꼴겹잎이고 나도밤나무잎은 밤나무 잎 비슷한 홑잎이다.

합다리나무는 식물분류학상 나도밤나무과(Sabiaceae)의 나도밤나무속(Meliosma)에 해당한다. 우리나라에는 같은 속에 나도밤나무와 합다리나무 2종이 분포한다. 같은 속일지라도 나도밤나무는 잎이 밤나무와 비슷하게 생긴 홑잎이지만 합다리나무는 작은잎 4~8쌍으로 된 겹잎이라서 잎만 놓고 보면 전혀 다른 나무로 보인다. 그러나 이 두 종은 식물 분류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꽃의 구조로 보면 거의 비슷하여 같은 속(属, Genus)에 해당한다. 나도밤나무와 합다리나무를 사람으로 치면 같은 부모에게서 태어났지만 얼굴이 전혀 다른 형제라고나 할까.

합다리나무 분포와 자생지
세계적으로 중국의 동부와 남부, 한국, 일본의 중부와 남부, 타이완 등 난대림 지역 해발 300~1,300m의 습윤한 산기슭 또는 산골짜기 숲 속에 분포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주로 전라북도, 경상남도 이남의 산지에 생육하지만 해안을 따라 충청남도 안면도, 경기도 대부도, 황해도 강령까지 올라가 섬 지역과 바닷가 산기슭에 간혹 자란다.

잊고 있던 합다리나무를 다시 만나다

▲ 합다리나무 어린 줄기, 학처럼 가늘고 긴 새움이 돋아난다.

합다리나무 그 이름만 알고 실체를 제대로 모르고 지내다가 2007년 ‘초중고 교사를 위한 자생식물 워크숍’ 때였다. 맨 처음으로 간 전남 장성 백암산에서 나무에 매달아 놓은 패찰을 보고 그 합다리나무라는 이름을 상기하게 되었다. 그러나 아직 새순이 전혀 올라오지 않은 3월이라서 줄기와 수형만 봤을 뿐 여전히 합다리나무의 실체는 알 수 없었다. 그러다가 2012년 7월 파라텍소노미스트회에서 실시하는 대부도 식물상 조사를 갔을 때 바닷가에서 제법 키가 큰 합다리나무를 만났다. 역시 참죽나무처럼 작은 잎이 깃꼴로 여러 장 달린 겹잎인 것을 알 수 있었다. 수피는 참죽나무와는 전혀 다르게 매끄럽고 회갈색이다. 그러나 꽃이나 열매를 제대로 보지 못했으니 아직도 합다리나무 실체를 완전히 안다고는 할 수는 없었다.

▲ 합다리나무 줄기 거죽은 매끄럽고 회갈색이며, 새로 길어나는 어린 가지는 가늘고 길다.

합다리나무 열매와 꽃을 만나다
2014년 3월에는 생물다양성 교육센터에서 하는 '꽃 따라 숲길 따라 힐링 여행' 코스 답사차 전라북도 부안 내소사 입구에서 출발하여 변산반도국립공원 내변산탐방지원센터로 내려가는 코스를 가다가 합다리나무를 많이 만났다. 가지 끝에 높이 달려 있는 열매를 보고 조금은 더 가까이 갈 수 있었다. 겨울눈 한 가지를 잘라 집에 가져와 접사를 해 보니 참 특이하다. 껍질눈 없이 드러나 있는 눈이 갈색 털로 덮여 있으며 여러 개의 눈이 가지 정단부에 뭉쳐 있다. 워낙 키가 큰 나무라서 가지 끝에 달려 피는 꽃 사진을 담기는 예삿일이 아닐 듯싶다. 2016년 5월 꽃동무들과 제주도 식물탐사를 갔다가 제주도 비자림 초입에서 운 좋게 꽃이 활짝 핀 합다리나무를 만났다. 그리 높지 않은 가지 끝에 풍성하게 꽃이 달려 있어서 사진기에 담기도 안성맞춤이었다. 그제야 나는 합다리나무의 실체를 제대로 알 수 있게 되었다. 붉은빛이 도는 어린잎은 얼핏 보면 참죽나무와 비슷하지만 유심히 보니 잎가장자리 윗부분에 거의 까락 같이 뾰족한 톱니가 성기게 있어 사뭇 달라 보인다.

▲ 합다리나무 겨울눈, 갈색 털로 덮여 있고 껍질눈이 없는 맨눈이다.

달라진 변산 개암사 입구
지금도 개암사 입구에 가면 그 때의 그 합다리나무가 생각난다. 그 당시에는 큰키나무가 거의 없는 민둥산이나 다름없었다. 내가 초등학교 때 소풍을 가고, 산나물 하러 갔던 변산, 당시만 해도 농촌에는 땔나무가 모자라서 인근 각지의 사람들이 여기 변산까지 몰려 와서 땔감으로 다 베어 갔다. 봄철 해거름 무렵이 되면 변산에서 한 땔나무를 지게에 잔뜩 지고 줄지어 가는 나무꾼들의 행렬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지금은 변산반도국립공원으로 지정되어 그 옛날 그때의 변산이 아니다. 10여 미터 이상 높이 자란 소나무가 우점하여 울창한 숲을 이루고 있어 한 발 들여놓기조차 어렵다. 지금도 그 자리에 합다리나무가 자라고 있는지, 굴피나무가 있는지 가보고 싶지만 그러지 못해 아쉽기만 하다.

합다리나무의 쓰임새
합다리나무는 봄에 새순이 나올 때 따다가 데쳐서 초고추장에 찍어 먹거나 양념하여 무쳐 먹어도 좋고, 된장국을 끓여 먹으면 부드럽고 감미로운 향이 있어서 맛이 좋다고 한다. 또한 튀김이나 전을 부쳐 먹어도 좋고 고추장, 된장에 박아 장아찌로 먹어도 맛있단다. 목재는 단단하지 않아서 상자, 나막신 등 작은 물건을 만드는 세공재로 쓰기도 하고 땔감이나 숯을 만드는 재료로 썼다고 한다. 또한 합다리나무의 줄기와 껍질은 간질환의 치료에 전통적으로 사용되어 왔다. 최근 연구에 의하면 합다리나무 추출물을 이용하여 암 치료와 주름 방지용 화장품을 만드는 데 잠재성이 확인되었다고 한다.

합다리순 나물을 먹어 보고 싶다
4월이 되면 변산반도국립공원 내변산 재백이고개에 올라가고 싶다. 고갯마루 등산로 주변에도 봄이 무르익어 가겠지. 전에 보아 둔 호자덩굴도 잘 있나 살펴보고, 합다리나무도 만나봐야지. 보송보송한 솜털 덮어쓰고 학처럼 새순이 피어나겠지. 합다리나무 새순을 몇 개만 따다가 먹어 보고 싶다. 그 맛이 어떨까?

▲ 제주도 돈내코에서 봄에 만난 합다리나무, 새순이 돋아나고 있다.

편집 : 박효삼 편집위원

이호균 주주통신원  lee1228h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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