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테마여행 : 강응천과 그리스에 가다 2

마케도니아와 알렉산드로스 한겨레테마여행l승인2016.06.21l수정2016.06.21 1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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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이 글은 지난 2015년 10월 31일부터 11월11일까지 12일간 진행되었던 <그리스 터키 문화기행-유럽 문명의 뿌리를 찾아서>의 동행 강사 강응천선생의 답사기를 편집한 것이다.

2015년 11월 4일 (수)

해변의 어부들

아침에 호텔 앞 해변을 산책하다 보니 어선 한 척이 고기잡이를 마치고 들어와 한창 하역 작업을 하고 있었다. 그들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으려 하자 어부들이 인상을 쓰며 팔을 가로젓는다. 신분이 불확실한 난민이나 집시들인가 보다. <한국생활사박물관>을 만들 때 외국인 노동자 문제를 다루면서 두 외국인이 있는 시위 현장 사진을 게재한 적이 있다. 한참 뒤 창원 지역의 노동운동가가 전화해서 불법체류자 얼굴을 공개하면 어떻게 하느냐고 항의했다. 황망해서 그들의 안부를 묻자 사진과는 관계없이 이미 출국했다고 했다. 그래도 책 내용은 좋다고 하기에 한 질 보내준 기억이 난다. 그때의 미안했던 마음이 떠올라 급히 카메라를 내리고 하트를 날려 주었다.

마케도니아

서쪽으로 그리스 제2 도시 테살로니키(Θεσσαλονίκη)를 향해 약 160킬로미터를 달렸다. 이 도시는 기원전 315년 마케도니아 왕 카산드로스가 건설할 때 왕비이자 알렉산드로스의 누이인 테살로니카의 이름을 따 왔다. 알렉산드로스의 스승이었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고향으로도 알려져 있다. 그래서인지 도시 곳곳에 그리스 제2의 종합대학인 테살로니키 대학교의 건물들이 자리 잡고 있다.

그리스는 13만 평방킬로미터로 남한보다 약간 큰 국토에 1100만 명이 사는 작은 나라이다. 모두 13개의 주와 한 개의 자치주로 이루어져 있는데, 동북 3주는 모두 ‘마케도니아’라는 이름을 갖고 있다. 동쪽부터 동 마케도니아 주, 중부 마케도니아 주, 서부 마케도니아 주. 테살로니키는 중부 마케도니아 주의 주도(州都)이다.

흥미로운 것은 북쪽 국경 너머에 마케도니아라는 독립국이 있다는 사실이다. 이 마케도니아 공화국 역시 곳곳에 알렉산드로스와 필리포스의 동상을 세워 놓고 그들을 자국의 역사적 영웅으로 떠받들고 있다. 가관인 것은, 이를 두고 그리스가 발끈하면서 자기네 지방인 '마케도니아'를 나라 이름으로 쓰지 말라고 요구한다는 사실이다.

이 같은 '국명 논쟁'은 1991년 마케도니아가 구유고 연방에서 독립하자마자 시작되어 아직도 해결되지 않고 있다. 1993년 마케도니아가 유엔에 가입할 때는 '구 유고슬라비아의 마케도니아 공화국' 이라는 우스꽝스러운 잠정 국호를 채택하기도 했다.

그 후 마케도니아가 북대서양조약기구와 유럽연합에 가입하려는 시도도 그리스의 어깃장 때문에 무산되어 왔다. 그리스는 마케도니아가 국기에 넣은 16개의 햇살을 가진 태양 무늬도 알렉산드로스와 관계있다는 이유로 문제 삼았다. 그러자 마케도니아가 햇살을 8개로 줄이고 태양 형태도 약간 수정해서 타협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이건 코미디다. 16개는 안 되고 8개는 된다고? 그 국기를 굳이 문제 삼아야 할 나라가 있다면 그건 차라리 그리스가 아니라 한국이다. 생긴 게 꼭 일제의 욱일승천기 같으니까.

▲ 테살로니키는 아테네에 이은 그리스 제2의 도시이다.

 

등자

▲ 테살로니키의 상징 화이트 타워. 18~19세기 터키시대에는 감옥으로 사용되었다. 한때는 대량학살로 인하여 '피로 물든 탑'이라 불렸다. 그 후에 탑의 표면을 하얗게 칠하고 시민의 휴식처이자 비잔틴 박물관으로 이용된다.

테살로니키의 테르마이코스 만 앞에는 12세기에 건설된 화이트 타워(Λευκός Πύργος)가 에게 해를 굽어보며 우뚝 서 있고, 그 옆에 준마를 타고 칼을 쳐든 알렉산드로스 동상이 서 있다. 동상 옆에는 기원전 331년에 벌어진 알렉산드로스와 페르시아 왕 다리우스의 이수스 결전이 부조된 건조물도 있다. 이 동상과 부조는 제법 고증이 잘 된 편이다. 그 당시에는 그리스와 페르시아를 막론하고 고정된 안장도 등자도 없었다. 영화나 드라마 따위에서는 종종 박진감 넘치는 장면을 만들기 위해 알렉산드로스가 등자에 발을 걸고 자유롭게 돌진하는 허구를 연출하곤 한다.

말에 고정된 안장과 등자가 실물로 남은 것은 기껏해야 서기 4~5세기 중국에서다. 물론 그 이전부터 스키타이, 흉노, 몽골 등 기마유목민이 사용했겠지만, 유감스럽게도 그들에게는 실물 유물이 없다. 유럽에서 볼 수 있는 이 선진 마구(馬具)의 실물은 10세기 것이 가장 오래되었다. 5세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짐작되는 고구려 고분 무용총의 유명한 수렵도에는 말 위에서 등을 돌려 화살을 쏘는 무사가 그려져 있다. 발을 완전히 고정시킬 등자가 있어야만 가능한 이 멋진 자세는 알렉산드로스에게는 ‘넘사벽’이었다. 한 가지 사족을 덧붙이자면 저 고구려 무사는 왼손잡이거나 어떤 방향으로든 자유자재로 사격할 수 있는 고수다.

알렉산드로스

그리스와 마케도니아의 국명 논쟁은 누가 알렉산드로스의 후예냐 하는 데서 출발한다. 마케도니아는 그리스인과 마케도니아인이 서로 다른 민족이고 자기네가 알렉산드로스의 피를 잇는 유일한 민족의 나라라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그리스는 어떤 근거에서 자신들이야말로 알렉산드로스의 후예라고 주장하는 걸까?

그리스인은 알렉산드로스가 자신들의 민족적 정체성을 확립한 사람이라 믿는다. 알렉산드로스는 그리스의 맹주를 자처하고 고대 그리스 문명을 계승하는 제국을 세웠다. 그 제국을 ‘헬레니즘 제국’이라 하는데, 이는 그리스인의 전설적 시조 헬렌에서 유래한 말이다. 헬렌의 자손을 뜻하는 ‘헬레네스’야말로 그리스인이 자신을 일컫는 말이니, 헬레니즘은 그리스의 사상과 문화를 가리킨다(그리스라는 이름은 로마인이 이 지역을 가리키던 그레키아에서 유래했다.).

그러나 알렉산드로스는 기원전 6세기 그리스의 폴리스들이 고전 문명을 꽃피울 때만 해도 올림픽 참가조차 거부당하며 ‘야만인(바르바로스)’ 취급을 받던 마케도니아의 왕이었다. 그는 무력으로 폴리스들을 무릎 꿇리고 자신을 신으로 숭배하라고 강요했다. 나아가 그리스인을 동원해 페르시아를 비롯한 아시아의 수많은 나라와 민족을 침략하고 살육했다.

그는 우리가 찬양하는 고대 그리스의 민주주의와는 거리가 먼 인물이다. 고대 그리스가 창조한 가장 고귀한 정신을 파괴한 뒤에 전파한 호사스러운 ‘헬레니즘’ 문명이 무슨 가치가 있을까? 정복욕에 눈이 멀어 수만, 수십만 명을 죽음으로 몰고 간 자를 민족의 상징으로 받드는 역사는 과연 누구를 위한 역사란 말인가?

진짜 그리스인의 탄생

알렉산드로스 제국은 모래 위에 지은 성처럼 급속히 허물어졌고 그리스는 곧 로마의 식민지가 되었다. 그리고 19세기에 이르기까지 2000여 년 동안 ‘헬레네스’를 내세운 나라는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았다. 4세기 들어 로마 제국은 기독교 국가가 되었고, 헬레니즘적 다신교 전통에 푹 젖어 있던 로마 대신 그리스 지역으로 중심지를 옮겼다. 그때부터 그리스인의 정체성은 ‘기독교를 믿는 로마인’으로 굳어져 왔다. 15세기에 콘스탄티노플이 함락되고 오스만 제국의 지배를 받게 되었을 때 그리스인은 정교회 신도이자 로마인으로서 그에 저항했다.

알렉산드로스 제국에 압살 당했던 민주주의 그리스는 1830년 오스만 제국에 대한 독립전쟁을 통해 왕국으로 독립한 뒤 일련의 과정을 거쳐 다시 태어났다. 이러한 독립전쟁에는 서구 문명의 젖줄인 그리스를 이교도의 제국으로부터 해방시키자는 서유럽 자유주의자들의 열렬한 응원도 한몫했다. 근대적인 의미에서 그리스 민족이 탄생한 것은 바로 이 과정에서였다고 할 수 있다.

독립전쟁은 민족의 역사가 곧 민중의 역사였던 매우 드문 한 순간이었다. 알렉산드로스 제국의 역사는 제1차 세계대전 후 대그리스주의를 내세워 터키를 침략한 그리스터키전쟁이나 민중 위에 군림한 왕정, 군사독재의 역사와 마찬가지로 그리스 민중에게는 결코 자랑스럽지 않은 역사이다. 그러한 역사를 민족사의 영광스러운 한 순간으로 가르치는 사람들은, 민족의 작은 일부가 나머지 대다수에게 자기 의지를 강요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다.

그리스 맥주

서남쪽으로 230킬로미터를 달려 그리스 반도 정중앙에 있는 칼람파카(Καλαμπάκα)로 갔다. ‘꽃보다 할배’에 나와 유명해진 메테오라(Μετέωρα)의 배후 도시이다. 달리는 내내 왼쪽 차창으로 멀리 올림포스 산이 보였다. 그리스 신화의 선경이자 그리스의 최고봉인 올림포스 산. 해발 2919미터로 백두산보다 조금 더 높다.

메테오라는 바위산 위에 수도원들이 세워져 있는 그리스 최대의 관광지 가운데 하나다. 그 바위산이 올려다 보이는 디바니 호텔에 여장을 풀고 뷔페식을 마친 뒤 호텔 앞 트리칼론 거리를 산책했다. 신용카드가 되는 카페나 바를 찾았으나 경제위기를 맞고 있는 그리스에서 그런 곳은 드물었다. 있다면 값이 꽤 비싼 곳이다.

한국에 카스, 하이트, 맥스가 있다면 그리스에는 알파, 미소스, 픽스가 있다. 재밌는 것은 한국의 맥주 맛이 다 거기서 거기인 것처럼 그리스의 세 가지 맥주도 맛이 비슷하다. 더 재밌는 것은 한국 맥주와 그리스 맥주의 맛이 비슷하다는 사실이다. 좋게 말하면 꾸밈이 없고 솔직하게 말하면 그냥 맛이 없다. 호텔 라운지에서는 한 병에 4유로씩 하는 미소스 355ml를 맥주홀에서 2.5유로씩에 마시고 호텔로 귀환했다.

편집 : 박효삼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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