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 이 글은 지난 2015년 10월 31일부터 11월 11일까지 12일간 진행되었던 <그리스 터키 문화기행-유럽 문명의 뿌리를 찾아서>의 동행 강사 강응천선생의 답사기를 편집한 것이다.

2015년 11월 6일 (금)

옴팔로스(ὀμφαλός)

델피를 감싸고 있는 파르나소스 산은 해발 2547미터에 이르는 석회암 산이다. 온통 석회암 천지다 보니 풀과 나무가 자랄 리가 없다. 그리스의 집들이 목재보다 석재를 많이 사용하는 이유를 여기서 알 수 있다. 그런 불모의 산인데도 델피라는 그리스 최고의 신성 구역을 내려다보고 있으니까 꽤 준엄해 보인다.

델피는 고대 그리스인이 세계의 중심으로 여겼던 곳이다. 그리스 신화에서 제우스는 할머니 가이아(대지)의 배꼽을 찾기 위해 세상의 동쪽 끝과 서쪽 끝에서 각각 독수리를 날려 보냈다. 같은 속도로 날던 독수리 두 마리가 델피 상공에서 교차하자 제우스는 그곳을 대지의 배꼽으로 결정했고, ‘배꼽’을 뜻하는 돌 옴팔로스는 이곳에 놓였다.

델피 유적지의 입구에 있는 델피 고고학 박물관에는 후대의 복제품으로 보이는 옴팔로스가 전시되어 있다. 속이 빈계란 모양의 돌을 끈으로 칭칭 감아 놓은 모양인데, 끈도 돌로 부조되어 있다. 고고학자들의 치열한 연구 끝에 옴팔로스는 본래 유적지의 아폴론 신전에 안치되어 있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신전을 지키는 무녀 피티아의 거처 바로 옆에 성소가 있었고, 그 안에 세워진 기둥 위에 세 무녀가 옴팔로스를 얹은 삼발이를 받치고 있었다고 한다.

아테네 보물 창고

델피 유적지를 차근차근 밟아 올라가 보자. 박물관 앞길을 조금 걸어 올라가 산길을 오르면 기원전 5세기 무렵 조성된 신전 유적지의 모습이 하나씩 둘씩 나타난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멋진 건물은 아테네 보물창고(θησαυρος).다

세계의 중심으로 알려진 델피는 그리스인에게 가장 영험한 신탁소였다. 그래서 난다 긴다 하는 폴리스들이 이곳에 와서 복비를 바치고 점을 봤다. 그때 신전 앞에 저마다 보물창고를 세우고 복비에 해당하는 각종 보물들을 그곳에 보관했다. 여러 폴리스의 보물창고가 있었지만 가장 크고 멋진 것은 오늘날 복원된 아테네의 보물창고였다. 아테네인들은 페르시아 전쟁에서 승리한 직후 이 보고를 지었다.

보물 창고 뒤로 다면체의 큼직큼직한 돌로 쌓은 아폴론 신전의 축대가 보이고, 바로 그 축대를 북벽으로 삼았던 회랑 현관의 기둥들이 서 있다. 그 현관은 아테네인이 신전에 바친 스토아였다. ‘아테네인들이 회랑과 적들로부터 빼앗은 로프, 뱃머리 장식을 바칩니다.’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어 살라미스 해전 뒤에 세워진 것임을 알 수 있다.

아폴론 신전

▲ 델포이 아폴론 신전. 지금은 그 터전만 남아있다.

델피의 중심은 신탁이 이루어지던 아폴론 신전이다. 남동쪽으로 푸르른 올리브 밭과 계곡이 내려다보이는 탁 트인 전망에다 나머지 삼면은 준엄한 산봉우리에 둘러싸여 기둥 몇 개 남아 있을 뿐인데도 범할 수 없는 아우라를 뿜어낸다. 신전 앞에는 키오스인이 세운 제단이 있고 북서쪽 위에는 5000명을 수용하는 원형극장이 마련되어 있다. 이 극장에서는 별도의 공연이 필요 없다.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신전에서 벌어지는 각종 제사가 최고의 공연이니까.

그 옛날 신전 안에서는 무녀 피티아가 옴팔로스 옆에서 환각 상태로 신탁을 내렸다. 그런데 아테네 보물창고에서 신전으로 오르다 보면 연단처럼 생긴 돌 하나가 솟아 있다. ‘시빌레의 돌’이라 불린다. 시빌레는 고대 그리스인이 신탁을 내리는 무녀로 여긴 존재였다. 피티아가 아폴론 신전의 공식 무녀가 되기 전에는 이곳에서 시빌레가 신탁을 내렸을 것으로 여겨진다.

원형극장에서 한참 더 올라가면 6500명의 관중을 수용할 수 있는 운동장이 건설되어 있다. 트랙의 길이는 177미터, 폭은 25.5미터에 이른다. 델피 유적에서 가장 높은 건축물이다. 델피가 전성기를 이루던 기원전 5세기에 처음 지어졌고, 로마의 지배를 받던 서기 2세기에 중수되었다. 그리스 귀족 출신으로 로마의 원로원 의원을 지낸 헤로데스 아티쿠스의 재정적 지원 아래 중수될 때 오늘날 보이는 돌 좌석과 아치형 입구를 갖추게 되었다.

경기장까지 올라가느라 소모될 체력을 감안하면 당시 선수들은 본 경기 돌입 전에 어느 정도 승부가 났을 것 같다.

아테나 신전

아폴론 신전 유적지를 내려와 박물관 반대편으로 걷다 보면 왼쪽으로 ‘카스틸리아 샘’이 나온다. 산에서 내려오는 샘물을 인공적으로 받는 수도 장치가 만들어져 있었다. 신탁을 받으러 가기 전에 몸을 깨끗이 하던 장소로 보인다.

카스틸리아 샘에서 조금 더 가면 오른쪽 아래에 델피 소년들이 사용하던 체육 시설과 아테나 신전이 나타난다. 체육 시설에는 격투기 연습장, 수영장, 목욕탕 등이 갖추어져 있었다. 이곳에서 수영과 목욕을 하면 신비로운 힘이 솟아났다고 한다.

톨로스라 불리는 원형 신전은 ‘앞을 내다보는 아테나(Ἀθηνᾶ Πρόνοια)’를 모시는 곳. 주변 경관을 고려하지 않으면 델피의 포토제닉상은 아폴론 신전이 아니라 이곳 톨로스에 돌아가야 한다. 역시 총각 신 아폴론과 처녀 신 아테나는 델피에서도 호각의 맞수였다.

오이디푸스의 길

델피를 떠나 아티카 반도의 한가운데를 따라 90킬로미터 정도 동진하면 테베(Θῆβαι)라는 작은 도시가 나온다. 또 여기서 급격히 남쪽으로 틀었다가 다시 서쪽으로 우회전하면 코린토스(Κορίνθου)가 나온다. 테베와 코린토스는 수많은 신화와 전설의 무대이지만 특히 오이디푸스 설화로 유명하다. 그래서 세 시간 정도 걸리는 이 길을 ‘오이디푸스의 길’이라 부르기로 한다.

오이디푸스는 테베의 왕자로 태어났으나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한다는 신탁 때문에 아버지 라이오스의 버림을 받는다. 그러나 오이디푸스는 죽지 않고 코린토스로 가서 폴리보스 왕의 아들로 자란다. 그곳에서 자신에게 내린 저주를 알게 된 오이디푸스는 이를 피하고자 친부로 알던 폴리보스를 떠난다. 그리고 보이오티아 네거리에서 다툼 끝에 마차를 탄 남자를 죽이는데, 그 남자가 바로 진짜 아버지 라이오스였다!

저주의 절반이 이루어진 사실도 모른 채 오이디푸스는 테베로 가 그곳에서 재앙을 일으키던 스핑크스를 죽이고 왕이 된다. 전왕 라이오스의 아내 이오카스테는 그의 왕비가 되었으니, 이렇게 신탁은 완성되었다.

오이디푸스가 진실을 알게 된 것은 테베에 도는 전염병의 원인을 그에게 돌리는 예언자 테이레시아스 때문이었다. 테이레시아스는 오이디푸스와 싸우다가 진실의 반쪽을 털어놓았다. 오이디푸스는 노인의 말을 무시하고 진실을 외면할 수 있었지만, 의혹에 정면으로 맞서 진실을 알게 된다. ‘위대한’ 오이디푸스는 드러난(사실은 자신이 고통을 마다지 않고 밝혀낸) 진실을 받아들이고 그것도 보지 못한 두 눈을 스스로 찌른 뒤, 딸 안티고네의 부축을 받으며 아테네 근교로 홀연히 떠난다.

오이디푸스 설화의 소재는 인간이 야만으로부터 문명으로 나아가는 과정에서 얼마든지 있을 수 있었던 친족 살해와 근친상간이다. 그리스 최대의 비극 시인 소포클레스는 <오이디푸스 왕>에서 이 설화를 위대한 인간 드라마로 재창조했다. 그가 오이디푸스의 결단을 통해 인류에게 선사한 것은 진실을 마주볼 수 있는 용기였다.

코린토스 운하

필로폰네소스가 ‘반도’로 불리는 것은 그곳이 6킬로미터에 불과한 코린토스 지협을 통해 아티카 반도와 이어져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는 1893년부터는 사실이 아니다. 그때 지협을 뚫어 운하를 팠기 때문이다. 따라서 오늘날 펠로폰네소스는 사실상 섬이다.

코린토스 운하를 파려는 노력은 기원전부터 있었다. 그러나 지대가 워낙 돌덩어리라 20세기 다 되어서야 그 바람이 이루어졌다. 문득 서해상의 조운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고려 때부터 무진 애를 써서 판 태안반도의 판목운하 생각이 난다.

코린토스 운하 덕분에 에게 해로부터 이오니아 해로 나가는 뱃길은 700킬로미터나 줄어들었다. 운하가 아니면 펠로폰네소스 반도를 빙 돌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험한 지형 조건 때문에 운하의 폭은 21미터에 불과하고 수심도 얕다. 상선이나 유조선 따위가 이렇게 좁은 뱃길을 지날 수 없다는 것은 자명하다.

결국 오늘날 코린토스 운하는 폭 17.6미터 이하, 흘수(吃水) 7.3미터 이하인 유람선만 지나다닐 수 있다. 그 수는 1년에 1만 1000척 정도라고 한다. 그나마 그리스가 관광으로 먹고사는 나라라서 다행이라 하겠다. 앞으로 이 운하가 확장된다면 그 주체는 중국일 것 같다. 그 이유는 내일 밝혀질 것이다.

탁 트인 에게 해 전망에 더해 해변을 뜰로 제공하는 칼라마키 비치 호텔에 여장을 풀었다. 러시아 초등학생들이 단체로 수학여행을 와서 좀 시끄러웠다.

▲ 성경에 고린도로 나오는 코린토스는 고대 그리스의 폴리스 중 가장 유명한 항만 도시 중 하나였다. 현재 코린토스 운하는 세계 3대 운하로 꼽힌다.

 

글/사진 강응천 역사저술가 및 출판기획자, 인문기획집단 문사철 대표

편집 : 박효삼 부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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