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운'의 고전교실 2화 : 삼국지연의 50회 3(마지막)

관우, 의리로 조조를 살려주다 김종운 주주통신원l승인2016.11.01l수정2017.02.10 2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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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조가 화용도에서 관우에게 머리를 조아려 목숨을 구걸하고 있다.(사진출처 : 중국 代代传承 사진 http://sns.91ddcc.com/t/87538)

操喝令人馬沿(조갈령인마연)棧(잔)⑯而行(이행),死者不可勝數(사자불가승수)⑰。號哭之聲(호곡지성),於路不絕(어로부절)。操怒曰(조노왈): 「生死有命(생사유명),何哭之有(何哭之有)!如再哭者立斬(如再哭者立斬)!」 三(삼)停(정)⑱人馬(인마),一停落後(일정락후),一停填了溝壑(일정전료구학),一停跟隨曹操(일정근수조조)。過了險峻(과료험준),路稍平坦(로초평탄)。操回顧止有三百餘騎隨後(조회고지유삼백여기수후),並無衣甲袍鎧整齊者(병무의갑포개정제자)。操催速行( 조최속행)。眾將曰(중장왈): 「馬盡乏矣(마진핍의),只好少歇(지호소헐)。」 操曰(조왈): 「趕到荊州將息(간도형주장식)⑲未遲(미지)。」 又行不到數里(우행부도수리),操在馬上揚鞭大笑(조재마상양편대소)。眾將問(중장문): 「丞相何又大笑(승상하우대소)?」 操曰(조왈): 「人皆言周瑜( 인개언주유)⑳,諸葛亮足智多謀(제갈량족지다모),以吾觀之(이오관지),到底是無能之輩(도저시무능지배) 。若使此處伏一旅之師(약사차처복일려지사),吾等皆束手受縛矣(오등개속수수박의) 。」

言未畢(언미필)。一聲砲響(일성포향),兩邊五百校刀手擺開(양변오백교도수파개),為首大將關雲長(위수대장관운장),提青龍刀(제청룡도)㉑,跨赤兔馬(과적토마),截住去路(절주거로)。操軍見了(조군견료),亡魂喪膽(망혼상담),面面相覷(면면상처)。操曰(조왈): 「既到此處(기도차처),只得決一死戰(지득결일사전)!」 眾將曰(중장왈): 「人縱然不怯(인종연불겁),馬力已乏(마력이핍),安能復戰(안능복전)?」 程昱(정욱)㉒曰(왈): 「某素知雲長傲上而不忍下(모소지운장오상이불인하),欺強而不凌弱(기강이불릉약);恩怨分明(은원분명),信義素著(신의소저)。丞相昔日有恩於彼(승상석일유은어피),今只親自告之(금지친자고지),可脫此難(가탈차난)。」

操從其說(조종기설),即縱馬向前(즉종마향전),欠身謂雲長曰(흠신위운장왈):「將軍別來無恙(장군별래무양)?」 雲長亦欠身答曰(운장역흠신답왈): 「關某奉軍師將令(관모봉군사장영),等候丞相多時(등후승상다시)。」 操曰(조왈):「曹操兵敗勢危(조조병패세위),到此無路(도차무로),望將軍以昔日之情為重(망장군이석일지정위중)。」 雲長曰(운장왈):「昔日關某雖蒙丞相厚恩(석일관모수몽승상후은),然已斬顏良(연이참안량),誅文醜(주문추),解白馬之圍(해백마지위),以奉報矣(이봉보의)。今日之事(금일지사),豈敢以私廢公(기감이사폐공)?」

操曰(조왈): 「五關斬將(오관참장)㉓之時(지시),還能記否(환능기부)? 大丈夫以信義為重(대장부이신의위중)。將軍深明春秋(장군심명춘추),豈不知庾公之斯追子濯孺子(기부지유공지사추자탁유자)㉔之事乎(之事乎)?」

雲長是個義重如山之人(운장시개의중여산지인),想起當日曹操許多恩義(상기당일조조허다은의) ,與後來五關斬將之事(여후래오관참장지사),如何不動心(여하부동심)? 又見曹軍惶惶皆欲垂淚(우견조군황황개욕수루),越發心中不忍(월발심중불인)。於是把馬頭勒回(어시파마두늑회),謂眾軍曰(위중군왈): 「四散擺開(사산파개)。」 這個分明是放曹操的意思(저개분명시방조조적의사) 。操見雲長回馬(조견운장회마),便和眾將一齊衝將過去(변화중장일제충장과거)。雲長回身時( 운장회신시),曹操已與眾將過去了(조조이여중장과거료)。雲長大喝一聲(운장대갈일성),眾軍皆下馬(중군개하마),哭拜於地(곡배어지)。雲長愈加不忍(운장유가불인)。正猶豫間(정유예간),張遼驟馬而至(장료취마이지),雲長見了(운장견료),又動故舊之情(우동고구지정);長歎一聲(장탄일성),並皆放去(병개방거),後人有詩曰(후인유시왈):曹瞞兵敗走華容(조만병패주화용),正與關公狹路逢(정여관공협로봉) 。只為當初恩義重( 지위당초은의중),放開金鎖走蛟龍(방개금쇄주교룡)。

 

풀이

조조는 명을 내려 인마로 구덩이를 메워 길을 내어 행군하도록 하였다. 죽은 자가 이루 헤아릴 수도 없어 호곡 소리가 길에 끊어지지 않았다. 조조가 화가 나 말하길 “죽고 사는 것이 하늘에 달렸거늘 어찌 곡소리가 난단 말인가? 또다시 우는 놈은 즉시 목을 베어라”라고 하였다. 부대를 셋으로 나눠 한 부대는 뒤처져 오고, 한 부대는 구덩이를 메우고, 다른 한 부대는 조조를 따라 행군했다. 험준한 곳을 지나 조금 평탄한 길로 이르러 조조가 뒤를 돌아보니 겨우 3백여 기만이 뒤를 따르고 있는데 아무도 옷이나 갑옷을 제대로 걸친 자가 없었다. 조조가 속히 행군하도록 재촉하니 제장이 말하길 “말이 지쳐 조금 쉬어야 합니다.” 하였다. 조조가 말하길 “조금 있다 형주에 도착하여 쉬어도 늦지 않다.”고 했다. 이윽고 몇 리를 더 가서 조조는 말위에서 채찍을 치켜들며 크게 웃었다. 제장들이 “승상께서는 어찌하여 또 크게 웃으십니까?”라고 물었다.

조조가 “사람들이 모두 말하길 주유와 제갈량이 지혜롭고 계략이 많다고 하나 내가 보기에는 무능하기 짝이 없는 것들이다. 만약 이곳에 일단의 군사를 매복시켜 놓았다면 우리들은 속수무책으로 사로잡혔을 것이다.”말을 마치기도 전에 함성이 일더니 양 쪽에 칼을 든 병사 오백이 늘어섰고 앞선 대장은 관우로 적토마에 올라타 청룡도를 움켜진 채 갈 길을 가로 막았다. 조조의 병사들이 이를 보고는 혼이 나가고 간담이 서늘해져 서로 얼굴을 바라보며 어찌할 바를 몰랐다.

조조가 말하길 “이왕 이 지경이 되었으니 결사항전을 할 뿐이다.”라고 하였다.

제장들이 “사람들은 겁을 내지 않더라도 말들은 힘이 하나도 없으니 어찌 다시 싸울 수 있겠습니까?”라고 말하였다.

정욱이 말하길 “제가 평소에 알기로 관운장은 윗사람에게는 꼿꼿하나 아랫사람에게는 차마 어쩌지 못하고 강한 자는 업신여기지만 약한자는 능멸하지 않습니다. 은혜와 원수가 분명하고 신의가 뚜렷합니다. 지난 날 승상께서 관우에게 은혜를 베풀었으니 지금 친히 나서 말씀하시면 이 난국을 벗어날 수 있을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조조가 이 말을 따라 말을 앞으로 향해 나가 몸을 숙여 관우에게 “장군, 그간 별고 없으시오?”라고 말했다.

관우도 몸을 굽혀 답하길 “관우는 군사의 명을 받아 승상을 기다린 지 오래되었소.”라고 하였다.

조조가 말하길 “조조, 전쟁에서 지고 형세가 위급하여 이제 막다른 길에 몰렸으니 바라건대 장군께서 지난날의 정을 중히 여겨 주시오.”라고 하였다.

관운장이 말하길 “지난날 저 관우는 승상의 두터운 은혜를 입었으나 안량을 베고 문추를 죽여 백마의 포위를 풀어 은혜에 보답했습니다. 오늘의 일은 어찌 감히 사사로운 정으로 공을 폐하겠습니까?”라고 하였다.

조조가 말하길 “오관참장 때의 일을 기억하지 못하십니까? 대장부는 신의를 중하게 여긴다고 했는데 장군은 춘추(역사)에 밝으시니 어찌 유공지사가 자탁유자를 뒤 쫒을 때의 일을 모르시겠습니까?”라고 하였다.

관운장은 의를 산처럼 중히 여기는 사람인지라 조조가 베풀었던 은혜와 의리가 떠올랐고 더불어 오관참장의 일도 생각이 나니 마음이 어찌 흔들리지 않을 것인가? 또 조조의 군대가 모두 황황히 눈물을 흘리는 것을 보고는 불쌍한 마음이 발동했다.

이어 말머리를 돌려 부하들에게 말하기를 “사방으로 길을 비켜라.”라고 하니 이것은 분명 조조를 놓아주려는 뜻이었다.

조조는 관우가 말을 돌리는 것을 보고는 제장들과 함께 일제히 돌파하였다. 관우가 몸을 돌렸을 때 조조는 이미 제장들과 함께 탈출해 나간 뒤였다. 관우가 큰소리로 꾸짖자 조조의 군사들은 모두 말에서 내려 땅에 엎드려 울며 절을 하였다. 이에 관운장은 불쌍한 마음이 더해져 머뭇거리는 사이 장요가 말을 몰아 달려오니 관운장이 이를 보고는 옛 정이 떠올라 긴 탄식을 하며 조조의 병사들이 모두 도망가도록 하니 후세 사람이 시에서 말하였다.

“조조가 패주하여 화용도로 달아나 마침 관우와 좁은 길에서 만났지만

오직 은혜와 의리를 중히 여겨 쇠사슬을 풀고 간웅을 놓아주었구나.”

 

오늘의 교훈

여기서 조조가 관우에게 말한 五關斬將(오관참장)의 일이란 조조에게 잠시 머물고 있던 관우가 원소에게 의탁해 있는 유비를 찾아 떠날 때 다섯 성문을 돌파하며 장수들을 죽인 일을 말하는 것이다.

옛정을 호소하는 조조를 살려 준 관우는 훗날 공명을 만났을 때 사사로운 정을 택한 죄를 군령에 따라 엄벌을 받겠다고 나섰다. 관우는 사사로운 의리와 공공의 대의 앞에서 사적인 의리를 선택한 잘못을 군법에 따라 책임지려는 자세를 보였다. 주군 유비와 도원결의한 의제임을 내세워 벌을 피하려 하지 않았던 관우의 태도가 바로 오늘날까지 관우를 의리의 화신으로 기억하는 이유이다.

 

選註(선주)

⑯ 棧(잔) : 대나무로 엮어 만든 작은 길.

⑰ 不可勝數(불가승수) : 수를 다 헤아릴 수 없음.

⑱ 停(정) : 군대의 조직 단위.

⑲ 荊州將息(형주장식) : 형주(지금의 호북성 서남부 지명)에 이르러 휴식을 취할 것.

⑳ 周瑜(주유) : 동오 손권의 대장으로 유비와 연합하여 조조를 공격하여 역사적인 적벽대전을 승리로 이끔.

㉑ 提青龍刀(제청룡도) : 소설에서는 모두 관우가 청룡도를 들고 있다고 하여 심지어 ‘단도회’라는 희극도 있으나 사실 관우는 창을 사용하였고 칼을 쓰지 않았다. 이 내용은 淸의 兪曲園(유곡원)이 지은 小浮梅閒話(소부매한화)에 고증되어 있음.

㉒ 程昱(정욱) : 조조의 모사

㉓ 五關斬將(오관참장) : 연의소설 중 관우가 오관을 지나면서 여섯 장수를 벤 전설을 말하는 것으로 1관인 東嶺關(동령관)에서는 孔秀(공수)를 베고 2관인 洛陽關(낙양관)에서는 韓福(한복)과 孟坦(맹탄)을 베고, 3관인 汜水關(사수관)에서는 卞喜(변희)를, 4관인 滎陽관(형양관)에서는 王植(왕식)을, 5관인 黃河(황하)를 건너는 관문에서는 秦琪(진기)를 베고 원소에게 의탁한 유비에게 돌아간 일을 말함.

㉔ 庾公之斯追子濯孺子(유공지사추자탁유자) : 孟子(맹자) 離婁下(이루하)에 나오는 子濯孺子(자탁유자)와 庾公之斯(유공지사)의 이야기로 정나라는 자탁유사에게 위나라를 공격하게 하였다. 이에 위나라는 유공지사에게 정나라의 공격을 막고 자탁유사를 추격하도록 하였다. 위나라의 반격에 몰려 도망가던 자탁유사는 병에 걸려 활을 쏘지 못하고 유공지사에게 죽을 위기에 몰렸으나 막상 유공지사는 화살촉을 뽑고 자탁유사를 향해 빈 화살만 몇 발을 쏘아 살려 주고 그냥 돌아갔다는 일화이다. 그 이유는 유공지사가 활을 배운 스승이 바로 자탁유사의 제자였던 尹公之他(윤공지타)로 결국 자탁유사가 유공지사의 스승의 스승이 되는 셈이라 차마 활을 쏘지 못하고 살려 주었다고 한다.

 

편집 : 김미경 객원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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