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 한국고전번역원 이규옥 수석연구위원은 한겨레 창간주주다. 정의로운 시대가 오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창간 주주가 되었다. 현재 한국고전번역원에서 한문으로 된 기록물을 한글로 옮기는 일을 한다. 중학교 시절 한학자이신 할아버지의 제자 선생님께 <명심보감>을 배웠다. 한문이 재밌고 잘 맞는 공부란 걸 알게 되었다. 역사에 관심이 커 사학을 전공한 후 한문과 역사, 둘을 아우르는 곳, '한국고전번역원'에서 근무하게 되었다. 이규옥 창간주주는 주로 조선시대 문집에 실린 글에서 소재를 뽑아 대중이 읽기 쉽게 바꾸어 <이규옥의 '고전산책'>을 연재할 예정이다.

 

 -창의적 인재를 키우려면-

제호(醍醐)는 유락(乳酪)에서 나왔지만 유락을 잊고

금옥(金玉)은 광석에서 나왔지만 광석을 잊는 법이다.

醍醐出於湩酪而忘湩酪, 金玉出於沙礫而忘沙礫.

제호출어동락이망동락 금옥출어사력이망사력

- 황현(黃玹, 1855~1010)

『매천집(梅泉集)』 권6 「노성무를 보내는 서[送性茂序]」

▲ 황현 영정, 〈한국역대명인초상대감〉에서(사진 출처 : 다음 백과)

우유를 정제할 때, 초기의 불순물이 섞인 것을 유락(乳酪)이라 하고 극도로 정제하여 맛이 가장 좋은 것을 제호(醍醐)라고 합니다. 온갖 불순물이 섞인 광석에서 정련해 낸 금옥, 유락을 정제하여 만든 제호처럼 처음에는 불순물이 많이 섞인 상태에서 출발하였더라도 계속 정제하여 순정(純精)한 상태가 되면 지난날 불순물이 섞였던 것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 법입니다. 여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면, 이렇게 복잡한 기초단계를 거쳐야 훗날 완벽한 상태에 이를 수 있다는 의미도 담겨 있습니다.

매천(梅泉) 황현(黃玹) 선생이 남원(南原)에 살 때 선생과 세교(世交)가 있는 집의 자제인 노성무(盧性茂)라는 자가 찾아와 배움을 청한 일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떤 이유에서인지 매천 선생은 자신이 별 도움이 될 것 같지 않다며 그의 요청을 거절하고, 돌아가라고 하였습니다. 그러자 노성무는 “선생님이 저를 제자로 받아주지 않으시려면 그만이지 왜 돌아가라고 하시느냐.”고 고집을 피우며 끝내 돌아가지 않아 하는 수 없이 함께 지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노성무는 부지런해서 새벽 일찍 일어나 글을 외우고, 아침을 먹고 나서는 먹을 갈아 명가(名家)의 글씨를 베껴 쓰는 한편, 시 짓는 것도 일과를 정해 꾸준히 해나갔습니다. 이로 인해 집안 분위기가 확 바뀌어, 평소 게으른 성격의 매천 선생도 아침 일찍 일어나 소죽을 끓이고, 집안 청소를 하는 등 부지런해졌습니다. 이렇게 한 달 넘게 머물다 돌아갈 때가 되자, 노성무는 이렇게 잡다하게 공부하는 자신에게 마지막으로 한 말씀 해줄 것을 청하였습니다. 그러자 매천 선생은 이렇게 말해 주었습니다.

“그대가 이런 질문을 하는 것을 보니, 학문의 본령에 거의 다가갔다고 생각되네. ‘널리 배우는 것은 장차 돌이켜 핵심을 구하기 위함[博學反約]’이라고 한 것은 공자(孔子) 문하에서 사람을 가르치는 방법인데, 이는 다른 모든 분야도 그렇다네. 옛 사람들의 학문은 한 분야에만 얽매이지 않아서 천하의 책을 보고 만물을 두루 연구하다가 나중에 가서는 자신에게 맞는 분야에 나아가 핵심을 파악하여 일가(一家)를 이루었다네... 그대는 매일 하는 일이 잡다하다고 걱정하지 말고, 더욱 옛 사람들의 책을 가져다가 두루 읽도록 하게. 그러면 전공 학문과 뛰어난 기예가 바로 거기에서 시작될 걸세. 제호(醍醐)는 유락(乳酪)에서 나왔지만 유락을 잊고, 금옥(金玉)은 광석에서 나왔지만 광석을 잊는 법이니, 그대는 잘 선택하도록 하게.”

매천 선생의 말씀을 좀 더 풀이하면, 우리가 너무 일찍 전공분야를 정해 한 우물만 팔 필요가 없고, 우선 다양한 분야의 경험을 두루 쌓은 다음에, 이를 바탕으로 적합한 전공분야를 정해야 훗날 훌륭한 인재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오늘날 이야기하는 ‘창의적 인재’를 육성하는 방법이 바로 이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과학 영재를 키운다고 과학 학원에 등록하고, 글로벌 시대를 준비한다며 모국어도 서툰 네댓 살 어린아이들을 영어 학원이니 중국어 학원이니 몰고 다니기에 정신이 없는 이땅의 부모들이 한번 생각해 볼 일입니다.

 

편집 : 김미경 편집위원

이규옥 주주통신원  galji43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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