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련을 주는 의미-

하늘이 사람을 성취시키려고 할 때는

반드시 어려운 일을 먼저 주어 시험해 본다.

夫天欲成就之 必先試艱險

부천욕성취지 필선시간험

- 이규보(李奎報, 1168~1241), 『동국이상국집(東國李相國集)』 권21

「거제에 부임하는 이 사관을 전송하는 서[送李史館赴官巨濟序]」

▲ 이규보 (출처: 나무위키)

윗글은 거제현으로 좌천되어 가는 이 사관(李史館)에게 이규보 선생이 하신 말씀입니다. 사관(史館)은 역사를 편찬하는 관서이니 이 사관이라 불린 사람은 당대에 글이 뛰어난 엘리트요 앞날의 출세가 보장된 사람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뜻밖에 죄인들을 유배 보내는 머나먼 남쪽 바닷가 거제로 쫓겨나게 되었으니 몹시도 억울했을 것입니다. 이런 수모를 당하느니 차라리 초야에 묻혀 은둔해 버릴까 생각했는지도 모릅니다. 보통의 벗이라면 상대의 처지를 동정하거나 위로하는 말을 했을 것인데 이규보 선생은 오히려 축하한다는 말을 합니다.

“이는 두 가지 면에서 축하할 일이다. 하늘이 사람을 성공시킬 때에는 반드시 먼저 어려운 일을 주어 시험하는 것이 천지자연의 이치이다. 그대는 잘못 없이 좌천되었으니 장차 큰 복을 받을 조짐이 보임으로 첫 번째 축하할 일이다.

또한 도를 깊이 터득하려는 자는 대부분 고요하고 한적한 곳에서 지낸다. 그런 곳에서야 마음을 전일하게 할 수 있고 도(道)에 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 그대가 가는 곳은 어떤가? 땅은 고요하고 사람은 적으며, 관청은 한가하고 일이 별로 없어 마음을 침범당할 일이 없다. 그러니 항상 밝고 고요한 속에서 편안하게 지내며 모든 영욕(榮辱)을 잊어버리고 만물(萬物)의 근원에서 노닌 다면 도에 더욱 깊이 들어갈 것이다. 그리하여 도가 내면에 가득 차면 윤기가 겉으로 드러나 자연히 어린아이 같은 신선이 될 것이다. 임기를 마치고 돌아오는 날 그대는 장자(莊子)나 노자(老子)처럼 될지, 아니면 안기생(安期生)이나 선문자(羨門子) 같은 신선이 될지 어찌 알겠는가. 그때 서로 옷자락을 부여잡고 도를 묻게 될 것이니, 이 또한 축하할 만한 일이다.”

※ 이 글은 『동문선(東文選)』 권83에도 수록되어 있습니다.

▲ 동문선 (출처: 나무위키)

'좌천되어 실의에 빠진 벗이여, 긴 안목으로 보면 이 일이 오히려 축복이라네. 어려운 시련을 잘 이겨내면 나중에 반드시 크게 쓰일 날이 올 것이요, 그동안 일에 치여 살아오느라 황폐해진 자신의 내면을 가꿀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아니겠는가'

 

선생의 이 말씀은 작은 성취와 실패에도 일희일비하는 현대인들에게 큰 울림으로 다가옵니다.

 

 

[편집자 주] 한국고전번역원 이규옥 수석연구위원은 한겨레 창간주주다. 정의로운 시대가 오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창간 주주가 되었다. 현재 한국고전번역원에서 한문으로 된 기록물을 한글로 옮기는 일을 한다. 중학교 시절 한학자이신 할아버지의 제자 선생님께 <명심보감>을 배웠다. 한문이 재밌고 잘 맞는 공부란 걸 알게 되었다. 역사에 관심이 커 사학을 전공한 후 한문과 역사, 둘을 아우르는 곳, '한국고전번역원'에서 근무하게 되었다. 이규옥 창간주주는 주로 조선시대 문집에 실린 글에서 소재를 뽑아 대중이 읽기 쉽게 바꾸어 <이규옥의 '고전산책'>을 연재할 예정이다.

편집 : 양성숙 편집위원

이규옥 주주통신원  galji43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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