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승의 정자 -

높은 자리에 있으면 위태로워질 것을 생각해야 하고

방 안에 있을 때는 귀신이 지켜보고 있을 것을 생각해야 한다.

居高 不可不念其危也 入室 不可不思其瞰也

거고 불가불염기위야 입실 불가불사기감야

- 김육(金堉, 1580~1658)『잠곡유고(潛谷遺稿)』권9

「구루정기(傴僂亭記)」

 

▲ <송하한유도>에 담긴 김육. 1637년 명나라에 사신으로 갔을 때 (출처 : 다음백과)

이 글은 대동법(大同法) 시행을 위해 평생 노력했던 잠곡(潛谷) 김육(金堉)이 일흔을 넘긴 나이, 집 뒤편에 구루정(傴僂亭)이라는 정자를 짓고 쓴 글이다. 구루정은 가까이에 도성을 둘러싸고 있는 목멱산, 백악산, 낙산, 인왕산이, 멀리로는 북한산 인수봉까지 바라다 보이는 풍광 좋은 곳에 자리 잡고 있었다. 게다가 돌 틈 사이로는 맑은 물이 졸졸 흐르고 연못에는 연꽃도 심어져 있으니 노년의 잠곡이 몸과 마음을 쉬기에 딱 알맞은 곳이었다.

정자의 이름을 왜 ‘구루(傴僂)’라고 지었을까? ‘구루’는 ‘구부린다’는 뜻이다. 지붕이 낮아 머리가 부딪치므로 허리를 구부리고 다녀야 한다는 말이다. 이름이 '구루'라 하더라도 지붕이 실제로 낮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진정 ‘구루’라‘ 지은 이유는 무엇일까? 잠곡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큰길을 바라보면 여염집들이 나지막하게 늘어서 있고, 대궐 쪽으론 하늘에 접해 있는 궁궐 용마루가 바라다 보이고 게다가 도성 사람들이 구름 같이 오가며 보는 자가 많으니 마음이 떨려 나도 모르게 높이 짓는 게 혐의스럽다. 하여 처마와 서까래를 낮게 하고 담장도 낮게 해서 소나무와 대나무로 울타리를 쳐서 겸손함을 드러내 보인 것이다.”

옛말에 귀신은 가득 찬 것을 싫어하여 부귀한 자가 방에 혼자 있을 때 교만한 마음을 품는지 살펴본다고 하였다. 당시 잠곡은 신하로서 최고의 자리인 정승의 위치에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의 처신을 더 엄격하게 단속하여 정자 하나 짓는 데까지도 이토록 자신을 낮춘 것이다.

요즘 세상은 자본 만능 주의가 득세하여 부귀를 마음껏 과시하는 것이 당연지사가 되어 버렸다. 경치가 좋다 싶은 곳에는 어김없이 으리으리한 별장을 지어 아름다운 자연 경관을 망쳐버리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만약 옛말대로 정말 귀신이 있다면 그 집 방 안 어디에선가 귀신이 주인의 교만한 마음을 노려보고 있을지도 모른다.

 

[편집자 주] 한국고전번역원 이규옥 수석연구위원은 한겨레 창간주주다. 정의로운 시대가 오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창간 주주가 되었다. 현재 한국고전번역원에서 한문으로 된 기록물을 한글로 옮기는 일을 한다. 중학교 시절 한학자이신 할아버지의 제자 선생님께 <명심보감>을 배웠다. 한문이 재밌고 잘 맞는 공부란 걸 알게 되었다. 역사에 관심이 커 사학을 전공한 후 한문과 역사, 둘을 아우르는 곳, '한국고전번역원'에서 근무하게 되었다. 이규옥 창간주주는 주로 조선시대 문집에 실린 글에서 소재를 뽑아 대중이 읽기 쉽게 바꾸어 <이규옥의 '고전산책'>을 연재할 예정이다.

편집 : 양성숙 편집위원

이규옥 주주통신원  galji43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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