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주도 김녕에서 만난 황근

이맘때 제주도 성산포 근처나 김녕 쪽 바닷가 올레길을 걷다 보면 샛노랗게 핀 무궁화 비슷한 꽃을 만난다. 이게 바로 글자 그대로 노란 무궁화 황근(黃槿)이다. 황근은 우리나라와 일본에만 분포하는 세계적으로도 희귀한 식물이다. 우리나라 환경부에서는 멸종위기 야생식물 II급종으로 법령으로 정하여 보호하고 있다. 한여름 작열하는 햇빛을 받아 푸른 바다를 배경으로 피어 있는 샛노란 황근은 화사하기 이를 데 없어 보는 이로 하여금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꽃이 예쁘다 보니 지금은 다량으로 증식하여 해안도로가에 가로수로도 심어 놓아 예전보다는 심심찮게 만난다. 나는 황근을 보면 곧잘 무궁화를 떠올리며 우리 국화(國花)를 생각해 본다.

우리 나라꽃 무궁화

▲ 우리 나라꽃 무궁화

무궁화(無窮花)는 아시다시피 우리나라를 상징하는 국화(國化)이다. 애국가 후렴구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에도 등장한다. 또한 국가가 수여하는 훈장에도 들어 있고, 우리나라에서 쏘아올린 통신 위성에도 무궁화란 이름이 붙여졌다. 무궁화는 국법으로 제정한 것은 아니지만 통념상 우리 나라꽃으로 인정돼 왔다. 무궁화의 원산지는 중국, 인도 등 동아시아 지역이라는 학설이 있지만 아직까지 그 자생지가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주로 온대 및 아열대 지역에 분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식물분류학의 시조 Linnaeus, Carl은 1753년 무궁화(無窮花)를 “Hibiscus syriacus L.”라는 학명으로 최초 기재하였다. 종소명을 ‘syriacus’라 하여 원산지가 중앙아시아의 시리아와 관련이 있는 것처럼 되어 있지만 시리아 지역의 무궁화도 오래 전에 중국에서 건너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유럽에서 식재하는 무궁화는 십자군이 시리아로부터 도입한 이래 귀화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에도 중국을 통해서 들여와 한반도 전역에서 관상용으로 심어 기른다. 이와 같이 무궁화는 우리나라에 절로 나고 자라는 자생식물은 아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무궁화가 국화(國化)로서 부적절하니 우리 자생식물인 황근(黃槿)으로 바꿔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과연 그렇게 해야 할까?

국명 황근의 유래

▲ 바닷가에 화사하게 핀 황근

국명 황근(黃槿)은 정태현의 《조선삼림식물도설》(1942)에 의한 것인데 글자 그대로 ‘노란 무궁화’라는 뜻이다. 중국과 일본에서도 통용하는 한자어 ‘황근(黃槿)’을 그대로 원용한 것이다. 이후 이창복의 《대한식물도감》(1980), 이우철의 《한국식물명고》(1996)에서도 황근이란 국명을 쓰고 있다. 황근이란 국명 이외에 갯부용이라고도 한다. 북한에서는 순우리말 ‘갯아욱’이라고 부른다. 생태적으로 바닷가에 자라며, 분류학상 아욱과(Malvaceae)에 속한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게 한다. 중국에서는 황근(黃槿) 이외에 ‘우납(右纳), 동화(桐花)、해마(海麻), 만년춘(万年春), 염수면두과(鹽水面頭果)’ 등 지역에 따라 여러 가지로 부른다. 일본명은 ‘ハマボウ’(Hamabo, 黃槿)라 하고, 영문명으로는 노란 부용이란 뜻의 ‘Yellow rosemallow’ 또는 일본명을 차용한 ‘Hamabo hibiscus’라고도 한다.

황근의 학명

▲ 제주도 김녕 바닷가에 핀 황근

아욱과에 속하는 황근의 학명을 우리나라의 식물도감이나 국가표준식물목록에서는 대부분 “Hibiscus hamabo Siebold & Zucc.(1841)”을 정명으로 하고 있다. 그러나 이후 일본의 식물분류학자 Nakai는 속명을 ‘Hibiscus’에서 ‘Pariti’로 변경하여 “Pariti hamabo (Siebold & Zucc.) Nakai(1936)”으로 이명 처리하였다. 최근 APG III의 계통학적 분류체계에서 미국의 식물학자 Fryxell, Paul Arnold는 속명 ‘Pariti’를 다시 ‘Talipariti’로 변경하여 “Talipariti hamabo (Siebold & Zucc.) Fryxell(2001)”로 이명 처리하였다. 속명 ‘Talipariti’는 ‘기원과 의미가 알려져 있지 않은’이란 뜻이다. 이렇게 속명이 여러 번 바뀐 것만 보아도 황근의 계통학상 위치가 학계에서 아직까지 불분명하다는 것을 방증한다.

분포 및 생육지

▲ 용암이 흘러내린 척박한 바닷가에 자라는 황근

계통학상 아욱과(Malvaceae) 무궁화족(Hibisceae) 황근속(Talipariti)에 해당하는 황근의 원산지는 한국, 일본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제주도의 용암 해안지역 염습지 주변에 자라며, 전라남도 해남, 고흥, 완도 등의 남해안 섬지역 표고 50m 이하의 하구 또는 해안가의 자갈층 진흙이나 모래땅에서 아주 드물게 자라는데 주로 다육성 식물이나 덩굴성 식물과 같이 어우러져 산다. 황근은 분포역이 제한적일 뿐만 아니라 종의 개체수도 적어서 환경부에서는 멸종위기 야생생물 Ⅱ급종으로 지정 보호하고 있다. 또한 현재 한국적색목록에 멸종위기 범주인 취약종(VU)으로 평가되어 있다. 지금은 자생지 외에서 대량으로 증식하여 제주도에 가면 도로가에 가로수로도 많이 식재되어 있다.

형태적 특징

▲ 거센 바람과 척박한 자생지의 황근

황근의 줄기는 높이 1~3m 정도로 자라는 낙엽 관목으로 나무껍질은 초록빛이 도는 회색 내지 회색빛을 띤 하얀색이다. 겉은 평평하고 매끄럽지만 자라면서 세로로 갈라진다. 햇가지는 노란색을 띤 비단 털로 덮여 있어서 모두 노란색을 띠고, 새순에는 부드러운 별모양 털이 나 있다. 가지는 어긋나게 달리는데 많이 갈라져 수형이 전체적으로 둥근 모양이다. 잎은 어긋나며 길이 3~6cm의 원형 또는 넓은 도란형이다. 끝은 짧게 뾰족해지고 밑부분은 둥글거나 심장형이다. 잎 가장자리는 물결 모양의 무딘 톱니가 있거나 거의 밋밋하다. 표면에는 털이 드문드문 나 있으며 뒷면은 전체에 털이 밀생한다. 잎자루는 길이 1~3cm이며 턱잎은 1cm 정도이고 금방 떨어진다. 단풍은 비교적 붉은빛으로 물든다. 꽃은 무궁화처럼 아침에 피었다가 저녁때 시드는 하루 꽃이지만 봉오리가 차례로 부풀어 올라 6월부터 8월까지 여름 내내 가지 끝부분의 잎겨드랑이에서 꽃이 핀다. 아침에 꽃이 필 때는 밝은 황색이지만 질 때는 붉은빛이 도는 오렌지색으로 변하는 특징이 있다. 꽃 크기는 지름 5~10cm이고, 꽃받침은 길이 1.8~2.1cm의 종형이며 5갈래로 깊게 갈라진다. 수술통은 길이 1.5~2cm로 꽃잎의 1/2 정도 길이이며 앞쪽 2/3 부분에 수술이 달린다. 암술대는 수술통을 뚫고 나온다. 암술머리는 머리 모양이며 밝은 빨간색으로 끝이 5갈래로 얕게 갈라지고 털이 밀생한다. 꽃은 아침에 피어 저녁이 되면 곧 땅에 떨어진다. 열매는 삭과로 길이 3~3.5cm의 난형이며 10~11월에 익는다. 종자는 길이 4~5mm의 신장형이며, 표면에는 젖꼭지 모양의 작은 돌기가 빽빽하게 나 있다.

황근과의 첫만남

▲ 김녕 자생지에 무리지어 자라는 황근

나는 2008년 우리 연구회에서 여름방학을 이용하여 제주도 식물탐사를 갔을 때 서귀포 구좌읍 김녕 해안가에서 황근을 처음 만나보았다. 거센 바람 때문인지 아니면 한라산에서 분출한 용암이 흘러내려와 굳어진 현무암 지대 척박한 토양에서 살기 때문인지 키가 그리 크지 않고 모두가 땅바닥에 낮게 가지를 뻗어 자란다. 무궁화와는 달리 잎이 둥글납작하고 무엇보다도 종 모양의 꽃부리는 샛노란 색인데 중심부 밑부분은 진홍색이라서 확연한 대조를 이루어 확 눈에 들어온다. 처음 보는 순간 이런 깜찍한 무궁화 종류도 다 있나 싶었다. 화사하기로 치자면 무궁화는 황근에 비견할 수 없을 것 같다. 그렇다고 국화 무궁화를 황근으로 바꿔야 할까?

무궁화와 우리 민족

▲ 민족의 역사와 함께 한 무궁화

무궁화는 우리나라 자생종은 아니지만 오래 전부터 마을이나 집 주변에 심어 기르며 우리 민족과 역사를 함께 해 왔다. 중국 선진(先秦) 시대인 기원전 4세기경에 저술된 것으로 추정되는 신화·지리서 《산해경(山海經)》에서도 우리나라를 근역(槿域)이라 하여 '무궁화가 피고 지는 군자의 나라' 라는 기록이 나온다고 한다. 옛 기록에 의하면 고조선 이전부터 무궁화를 ‘하늘나라의 꽃’으로 귀하게 여겼고, 신라 효공왕 때, 고려 예종 때 외국에 보내는 국서에도 우리나라를 가리켜 '근화향'(槿花鄕)’이라 했다는 기록이 있다고 한다. 독립운동가 겸 교육자 이상재 선생의 손자인 이홍직(李鴻稙, 1907~1997)의 국어대사전에 나오는 바와 같이 무궁화는 “구한말부터 우리나라 국화로 되었는데 국가나 일개인이 정한 것이 아니라 국민 대다수에 의하여 자연발생적으로 그렇게 된 것”이다.

황근으로 바꾸는 것은 한마디로 부적절하다

▲ 황근

설령 국가에서 법령으로 제정한 것은 아닐지라도 국화 무궁화를 황근으로 바꾸는 것은 부적절하다. 무엇보다도 무궁화는 우리 민족의 역사와 더불어 한반도 전역에서 심어 길러와 우리 민족과 아주 친숙한 꽃이다. 반면 황근은 우리 자생종이라 할지라도 분포역이 지극히 제한적이다. 무궁화와는 달리 우리나라 남해안의 일부 섬지역과 제주도에 국한하여 아주 드물게 분포한다. 학계에서는 전라남도 완도군 소안면 월항리에 자생하는 군락이 자생 북방 한계지로 보고 있다. 황근은 난온대~열대에 분포하는 수종이라서 여름철 40°C~겨울철 영하 10°C에서 자라기 때문에 온대 내륙지방에서는 전혀 월동이 불가하다. 이러한 분포역의 제한성으로 봐도 황근은 우리 국화로서 부적절하다. 우리나라 사람치고 무궁화를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그러나 황근은 듣도 보도 못한 사람은 많을 터, 무궁화는 비록 국법으로 정해진 것은 아닐지라도 우리 민족과 역사를 함께 해 왔다. 대한민국이 패망하지 않는 한 무궁화는 영원무궁한 우리나라 국화임에 마땅하다.

편집 : 박효삼 편집위원, 심창식 편집위원

이호균 주주통신원  lee1228h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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