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촌동의 사적

허창무 주주통신원l승인2015.09.21l수정2015.09.21 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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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촌동(杏村洞)의 유래와 권율 도원수 집터
성곽이 끊어진 곳에서 왼쪽 내리막길로 접어들면 행촌동이다. 행촌동이라는 마을 이름은 이곳에 수령 420년 된 은행나무 거목이 있는 데서 유래했다. 은행나무는 성곽 서쪽 밑으로 자리 잡은 연립주택 뒤에 있는데, 길이 막혀 작은 철문을 통해 들어가야 볼 수 있다. 은행나무 밑에는 임진왜란 때 행주대첩을 이룩한 권율 도원수의 집터임을 알려주는 표지석이 있다. 장군이 살던 집은 지금은 없어졌다. 다음은 그 옛집에 관한 고사다.

백사(白沙) 이항복(李恒福)은 권율 장군의 사위였다. 그들의 집은 이웃집이었다. 백사의 집에 큰 감나무(살구나무라는 설도 있다)가 있었다. 해마다 가을이면 감이 탐스럽게 익었다. 그런데 그 감나무가 담 넘어 권율 장군 집 마당으로 가지를 뻗었다. 세도가였던 권율 장군의 하인들이 주인의 허락도 없이 감을 따 먹었다. 이에 화가 난 이항복이 권율 장군이 기거하는 방문의 창호지를 뚫고 팔을 내밀어 “이 팔이 뉘 팔이요?” 하고 물었다. “이놈아, 당연히 네 것이지 누 것이냐?” 하고 권율 장군이 답했다. 이항복이 다시 물었다. “저 마당으로 가지가 뻗은 감나무는 누구의 것입니까?” 장군은 “그것도 당연히 네 것이 아니냐?” 하고 대답했다.

소년의 재치에 탄복한 장군은 일찍이 백사를 사윗감으로 점지하지 않았을까? 임진왜란 때 장인과 사위는 모두 멸사봉공으로 전쟁을 승리로 이끈 일등 공신이었다.

▲ 권율 도원수 집터 표지석

딜쿠샤를 찾아서
권율 도원수 집터 표지석 바로 옆 서북쪽으로 낡은 붉은 벽돌집이 있다. 1919년 3‧1운동이 일어났을 때 그 소식을 전 세계에 최초로 알린 미국인 테일러(Albert W. Taylor 1875-1948) 기자가 살았던 ‘딜쿠샤(Dilkusha)’라고 하는 집이다. 테일러 기자는 금광 개발업자인 아버지 죠지 테일러를 따라 1896년에 한국에 왔다. 그 또한 금광 기술자로, 전기기술자로, 미국 UPI 통신원으로 1923년부터 일제에 의해 추방된 1942년까지 이 집에서 살았다. 이 집은 그의 아들 브루스 테일러가 2006년 찾아올 때까지 누가 지었으며, 누가 거주했는지 의혹에 싸여있었다.

테일러는 1919년 일제에 의한 화성 제암리 학살사건을 최초로 세상에 알렸다. 3‧1독립선언서를 입수해 외신을 통해 전 세계에 알린 것도 그였다. 3‧1독립선언서를 입수해 숨긴 과정은 극적이었다. 1919년 3월 1일 전날은 그의 아들 브루스 테일러(Bruce Taylor)가 지금의 신촌 세브란스병원에서 태어난 날이었다. 간호사들은 그가 가지고 있던 독립선언서를 갓 태어난 아기의 침대 밑에 숨겨 그때 병원에 들이닥쳤던 일제 경찰로부터 그것을 들키지 않고 지킬 수 있었다.

태평양전쟁이 일어나고 미·일 관계가 나빠져 일본은 한국의 독립운동을 도왔다고 테일러를 서대문형무소에 가뒀다. 그의 아내 메리는 6개월 동안 딜쿠샤에 가택연금 당했다.

딜쿠샤는 화강석 기저부 위에 붉은 벽돌을 세워 쌓은 프랑스식 건물로, 우리나라에서는 희귀한 벽돌쌓기식 건물이다. 벽돌은 미국산이라고 한다. 집은 장기간 수리하지 않아 벽돌 모서리가 떨어져 나가고 박공지붕 아래 나무 조각들이 너덜너덜한 상태다. 건물 오른쪽 아래에 있는 머릿돌에는 영어로 ‘DILKUSHA 1923’, ‘PSALM CXXVⅡ-Ⅰ’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다. 딜쿠샤는 힌두어로 기쁨과 행복 또는 이상향이나 희망을 의미한다. 1923년은 집이 지어진 해다. ‘PSALMS CXXVⅡ-Ⅰ’은 로마자로 성서의 시편(the Book of Psalms) 127편 1절을 뜻한다.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깨어있음이 헛되도다.’

힌두어와 성경 구절이 왜 나란히 조합을 이뤘을까? 인도에서 태어난 테일러는 인도 북부 곰티강 인근의 딜쿠샤 궁전을 보고 결혼 후 자신이 살 집 이름을 동일하게 짓기로 작정했다고 한다. 그의 아내는 영국인으로 배우이자 화가였다. 남편 알버트는 한국의 독립운동에 관한 기사를 썼고, 부인 메리는 나라 잃은 한국인들의 얼굴을 그렸다고 한다.

테일러 기자는 1948년에 미국에서 죽었다. 사랑했던 한국에 묻어달라는 유언에 따라 그는 양화진 외국인 묘지에 부친 조지 알렉산더 테일러(George Alexander Taylor)와 함께 묻혀있다.

2006년 그의 아들 부부와 딸이 부친의 묘를 참배하러 내한했다. 아버지는 먼 타국 외국인 묘지에 묻히고 어머니는 미국 캘리포니아 맨도사에 묻혀서 태평양을 사이에 둔 채 두 영혼이 서로를 그리워하는 처지가 된 것이 안타까웠던 듯하다. 아들 부부는 어머니 무덤의 흙을 양화진 아버지 무덤에, 양화진 아버지 무덤의 흙을 맨도사 어머니 무덤에 뿌렸다.

▲ 1919년 3·1운동을 최초로 세계에 알린 미국인 테일러 기자가 살았던 딜쿠샤. 권율 도원수 집터 바로 옆에 있다.

편집: 정지은 편집담당

글 허창무 주주통신원/ 사진 이동구 에디터

허창무 주주통신원  sdm347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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