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악산 오르기

이제 백악산으로 본격적인 등산이 시작된다. 백악산에 오르려면 신분증을 가지고 가야한다. 창의문쉼터에서 신원확인 후 방문객목걸이번호를 받은 후 20분 정도 올라가면 ‘돌고래쉼터’라는 휴식처가 나온다. ‘웬 돌고래가 산중턱에 나타났나?’하고 의문을 품으면서 주위를 살펴보면, 쉼터마루 옆으로 길게 누운 바위가 돌고래를 쏙 빼닮았다.

▲ 돌고래쉼터와 돌고래바위

다시 빤히 올려다 보이는 성곽을 따라 가파른 계단을 헐떡이며 오른다. 지나온 길이 발아래 아득히 보이고, 건너편으로는 인왕산의 봉우리들과 능선을 따라 이어진 성곽의 모습이 공중에서 내려다보이는 만리장성의 일부처럼 이채롭다. 그러나 그것을 촬영하려면 중간 중간에 군 초소가 있어 여의치 않다.

북쪽으로 보현봉과 문수봉, 비봉, 사모바위 등이 손에 잡힐 듯 가깝게 보인다. 머지않아 최고봉인 백악마루에 닿는다. 백악마루는 높이 342m로서 내사산 중에서 제일 높다. 낙산, 목멱산, 인왕산이 소리 지르면 화답할 것 같고, 눈 아래로는 경복궁을 비롯한 여러 궁궐들이며, 세종로며, 도심의 크고 작은 건물들이 지척으로 보인다. 한강 건너 63빌딩까지 한눈에 보이고, 남쪽 멀리로 관악산, 청계산, 남한산성이 있는 청량산이 보인다. 한양은 내사산으로 둘러싸인 아름다운 도시다. 자연과 인공물이 서로 조화를 이루는 수도 서울은 세계 유수의 대도시들이 갖지 못한 천혜의 보금자리다.

백악마루에 서면 마치 천군만마를 호령하는 장수가 된 듯하다. 조선 초 태조 이성계와 정도전 등 건국의 주역들도 이곳에서 비슷한 정감을 맛보았을 것이다.

▲ 백악산 서쪽 중턱에서 바라본 북한산봉우리들, 좌로부터 매봉, 향로봉, 비봉, 사모바위, 문수봉, 보현봉 등이 보인다.

북악산을 백악산으로 바로 부르기

백악산 정상에 ‘백악산 해발 342m'라고 적힌 표지석이 있다. 백악마루다. 우리들이 지금까지 거리낌 없이 불렀던 북악산과 백악산은 어떤 차이점이 있는가? 일제는 원래 백악산의 이름을 폄하하기 위해 북악산으로 바꾸었고, 36년이라는 긴 일제강점기를 지나면서 사람들이 어느 새 북악산으로 부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백악산(白岳山, 白嶽山)의 ‘白(백)’자에는 하얗다는 뜻도 있지만, 깨끗하다는 뜻도 있다. 그런 반면 북악산(北嶽山)의 ‘北(북)’자에는 북녘의 의미도 있지만, 도망치다, 달아나다, 라는 뜻도 있어 부정적인 이름으로 바꾸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설의 근거가 확실한 것은 아니다. 조선시대의 ‘조선왕조실록’기사에도 백악산이라는 이름이 북악산보다 더 많이 나오지만, 북악산이라는 이름도 쓰고 있다. 영조 12년(1736) 5월 13일의 실록에는 도성의 주맥인 북악(北嶽)에서 부랑자들이 산의 돌을 몰래 채취하여 내다팔고 있으니, 관계되는 부서의 관리와 실무자들은 심문하여 그 책임을 묻도록 하라는 상소기록이 있다. 정조 18년(1794) 2월 20일 실록기사에도 과거에 급제하는 사람들이 지방에는 없고, 모두 남산과 북악(北岳) 사이 지역에 사는 집안들뿐이라며 인재등용의 기회가 불공평함을 탓하는 기사가 있다. 이러한 기록들로 보아 백악산과 북악산을 같이 불렀음을 알 수 있다.

2007년 4월 문화재청은 백악산 일원을 국가지정문화재인 ‘사적 및 명승 제 10호’로 지정하였다. 이런 조치는 북악산이라는 이름이 격이 떨어져서라기보다는 천도 초기 도성 축성의 개념인 내사산 보존의 의미를 되살리고 여러 고지도와 문헌 등의 사료에서 일반적으로 기록했던 지명을 되살린다는 차원의 일이라고 문화재청은 밝혔다.

다음으로 ‘北岳(북악)’과 ‘北嶽(북악)’ 중 어느 것이 맞는 표기인가 하는 것도 논의될 점인데, 그 표기는 시대와 상관없이 혼용되어왔다. ‘白岳山(백악산)’과 ‘白嶽山(백악산)’도 같은 맥락에서 보면, 어느 것이 틀렸다기보다 둘 다 맞는 표기이다.

▲ 백악산 서쪽 가파른 나무계단을 오르는 필자의 난감한 모습

글 : 허창무 주주통신원, 사진 : 이동구 에디터

편집 : 박효삼 편집위원

허창무 주주통신원  sdm347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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