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암동의 또 다른 명승지를 찾아서

 환기미술관을 관람하고 환기미술관 위로 올라간다. ‘한국대학생선교회(CCC)’ 건물이 높다랗게 보이고, 주변은 산자락에 안긴 듯 한적한 소도시의 마을 풍경이다. 이런 곳에서는 어쩐지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것 같다. 화초나 푸성귀를 심은 좁다란 텃밭이며, 칠이 벗겨진 철제대문이며, 모서리가 떨어진 시멘트담장이며, 긴 바지랑대가 받치는 빨랫줄에 널어놓은 옷가지들을 보면서 우리들은 다시 1970년대로 돌아간다. 그곳에서 탐방객들은 살가운 흙냄새를 흠씬 맡을 수 있다.

 마을을 지나 언덕길을 올라가면 ‘능금나무길’이 나온다. 능금나무가 자라기에 적합한 토양이었을까? 이곳에서 임금에게 바치는 능금을 재배했다고 한다. 중턱에 이탈리안 레스토랑 ‘아트 포 라이프(Art for Life)'와 작은 공연장이 나온다. 이 위로는 집들이 보이지 않는다. 실뱀 같은 외길이 심하게 굽어지면서 타원을 그리다가 숲속으로 들어가기 전 모퉁이에 돌담장을 한 아담한 집 한 채가 나온다. 그 집이 바로 드라마 촬영장으로 이름난 카페 ’산모퉁이‘다. 거기서 다시 꺾이어 들어가면 ’백사실계곡‘에 도착한다.

▲ 이탈리안 레스토랑 ‘아트 포 라이프(Art for Life)’
▲ 커피프린스 1호점 TV드라마 촬영장 카페 ‘산모퉁이’

 

백사실계곡(명승 제36호)

 ‘백사실계곡’은 ‘서울시의 비밀정원’이라고 일컬을 만큼 도심에서는 보기 드물게 호젓하고 오염되지 않은 계곡이다. 명승 제36호로 지정된 이곳의 이름은 백사(白沙) 이항복(李恒福, 1556-1618)의 별장 터가 있어 붙은 이름이라고 하나, 아직까지 확실한 고증은 없다. 일설에는 추사 김정희의 별서 터라고도 한다. 

 그곳으로 들어가는 초입에는 사적 제462호로 지정된 ‘백석동천(白石洞天)’이라고 새겨진 바위가 있는데, 그것은 백사실계곡의 다른 이름이기도 하다. 옛날에는 경치가 빼어난 산천으로 둘러싸인 곳을 동천(洞天)이라고 말했다. 백사라는 뜻은 이 계곡에 흰 모래와 흰 돌이 많아 그렇게 불렀고, 실(室)은 계곡을 뜻한다. 이 계곡은 아직 청정지역이어서 1급수의 지표동물인 도롱뇽, 개구리, 버들치, 가재 등의 서식지로 알려진 자연환경보전지역이다.

▲ 백사실계곡 입구에 있는 ‘白石洞天(백석동천)’ 석각

 지금 백사실계곡에는 육각정자 ‘백석정’의 주초와 돌계단이 보이고, 그 뒤로 더 높은 대지 위에 사랑채와 안채의 건물터가 있는데, 사랑채의 주초와 담장, 석축 일부가 남아있고, 함벽지안이라는 연못이 있다. 계곡 아래로 계속 내려가면 홍제천, 세검정으로 통하는 계곡입구가 나온다.

▲ 백사실계곡 사랑채와 안채 건물의 주초
▲ 백사실계곡 육각정자 ‘백석정’ 의 주초와 ‘함벽지안’이라는 연못
▲ 백사실계곡의 숲속길

 

석파정(石坡亭,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26호)

다시 홍제천을 따라 내려와서 자하문터널 쪽으로 올라간다. 석파정을 보기 위해서다. 창의문 밖 석파정에 가려면 서울미술관으로 들어가야 한다. 석파정은 조선조 철종 때 안동김씨 세도가의 한 사람으로 영의정이었던 김흥근의 별장이었는데, 전 국왕의 외척세력을 몰아내고 흥선대원군이 집권한 후, 이 별장의 주인도 흥선대원군으로 바뀌었다.

 처음에 대원군은 이곳 석파정을 자기에게 팔라고 했으나 거절당하자 어느 날 아들 고종과 함께 그곳에서 하루를 묵었다. 임금이 묵은 곳은 신하가 살 수 없다는 것이 당시의 불문율이었기에 대원군은 그렇게 하여 이 별장을 빼앗을 수 있었다. 김흥근이 살 때는 이 별장을 삼계동정사(三溪洞精舍)라고 불렀으나, 대원군이 살면서는 그의 호 석파(石坡)를 붙여 석파정으로 고쳐 불렀다.

 본래 여기에는 안태각(安泰閣), 낙안당(樂安當), 망원정(望遠亭), 유수성중관풍루(流水聲中觀風樓) 등 8채의 건물이 있었는데, 지금은 안채와 사랑채, 별채만 남아있다. 주변의 경치는 예나 지금이나 큰 변화 없이 휘늘어진 낙락장송이며 서쪽 암벽에서 흘러내리는 계류가 잡목 숲과 어울려 도심 속의 선경을 이룬다.

▲ 석파정

 2012년 개관한 서울미술관은 ‘황소’, ‘자화상(1955)’, ‘환희(1955)’ 등 이중섭의 작품 19점을 포함하여 박수근, 천경자, 김기창, 오치균 등 한국 거장의 작품 10여점을 소장하고 있다.

석파정을 나오면 탐방객은 창의문에서 시작하여 부암동을 한 바퀴 돌고 다시 창의문으로 돌아온 셈이다.

글 : 허창무 주주통신원, 사진 : 이동구 에디터

편집 : 박효삼 편집위원

허창무 주주통신원  sdm347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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