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스로 충만한 악기는 듣는 이 없어도 소리를 낸다.

家在壁山岑 내 집은 속세를 떠나 푸른 산봉우리에 있어

從來有寶琴 가진 보물이라고는 오래전부터 내려온 거문고 하나.

不妨彈一曲 한 곡조 정도 연주하는 것이야 어렵지 않지만

祗是少知音 그 음을 알아들을 이 무척 적으니 망설이게 되네

 

글씨 한 점을 고민 끝에 샀다.
누군가에게 선물로 건네진 것이라는 것이 맘에 걸렸지만,
결국 그 내용이 마음을 움직였다.
타산지석이라더니, 세간을 떠나 청정함을 추구한다고 하거늘
결국 알아줄 이 없어 한 곡 타는 것을 망설이게 된다는 것,
몸과 마음이 따로 있는 표리부동의 표본이다 싶어 경계(警戒)로 삼고 싶었다.

 

                                   글씨를 쓴 이가  불(不)자를 위로 올리지 않은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하기는 하다.
                                   글씨를 쓴 이가  불(不)자를 위로 올리지 않은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하기는 하다.

 

세간에는 이자현의 낙도음(樂道吟)으로 알려졌지만 그것은 국학자료원에서 발간한 한시작가작품사전(2007)에 의거했을 뿐인 듯 싶다. 예를 들어‘李資玄의 詩世界’(2004) 라는 논문의 저자 권혁진은 고려의 문신 곽여(郭輿)의 시에 답한 칠언율시 하나만을 유일하게 전해지는 것으로 쓰고 있으며, 1930년에 발간된 신생(新生) 12월호에서 김원근 또한 권혁진과 같은 시 하나를 이자현의 작품으로 보고 있다.

생각하건데 평생 불도에 정진하여 당대의 고승들과 교분이 두터웠던 점이 사실이라면 깨달음 하나쯤 듣는 이가 어떻든 연주하는 것을 꺼려하지 않았으리라 짐작해본다.

중고거래 앱을 통해 내게 물건을 매도한 이는 금세 자취를 감추었고, 우리가 거래했다는 사실은 앱에서 사라져버렸으니 이 또한 인연이 아닐까 싶다. - 그런데 누군가에게 들려주고 싶은 노래 한 자락이라도, 내게 남아있는 것일까...

편집 : 김동호 편집위원

김해인 주주통신원  logcat@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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