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란함을 잠재우는 용기

합정역 부근에서 잠시 일을 보고서 2호선 열차에 오른다. 노약자 석은 꽉 찼고, 일반석 쪽에 빈 자리가 눈에 띄기에 얼른 그리로 옮긴다. 빈 좌석이 없는 경우에는 여간해서 일반석 쪽으로는 가지 않는 편이다.

행여라도 젊은이가 자리를 양보하느라 허둥지둥 일어나는 게 미안해서이다. 그들도 때로는 심신이 피곤할 때가 많을 터이니 더욱 그렇다.

그런데, 주변 분위기가 심상치 않게 느껴진다. 하나 둘 다른 쪽으로 이동하는 게 아닌가.

바로 건너편에 앉아서 매우 거칠게 통화하는 사람 때문이다.

합정역 부근의 명소 안내물
합정역 부근의 명소 안내물

발을 탕탕 소리가 날 정도로 구르며 고래고래 소리를 지른다.

순간적으로 자리를 피해보려고 생각한다. 그러나 동시에 지혜로운 해법이 무엇일까 머리를 짜내본다. 내가 직접 말로 하는 것보다는 승무원에게 연락하는 게 낫지 않을까?

마침 청소를 담당하는 분이 지나가기에 부탁을 한다. 어느새 홍대입구역을 지나 신촌역에 다다르는데, 문이 열리자 두 명의 직원이 들어온다.

그들이 소란을 피운 이에게 다가서자 갑자기 나를 째려보더니 신고했느냐고 물으며 눈을 부라리는데, 섬찟한 느낌이다. 잠시 주저하다가 이내 큰 소리로 "네. 여태까지 쭉 소란을 피우지 않았습니까?"하고 대답했다.

합정역 개찰구 앞의 모습
합정역 개찰구 앞의 모습

그러자 옆에 섰던 젊은이가 동영상을 촬영했다며 그제서야 내게 내민다. 고맙다는 인사를 하며 건너편을 바라보니 소란의 당사자는 그새 순한 양이 되어 고분고분하게 을지로입구역까지만 그냥 가게 해달라고 사정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렇게 긴 시간을 인내해야만 했을 법한  일은 생각만 해도 끔찍스럽다. 일단, 조사를 해야 되니 사무실로 가자고 하니까 마지못해 따라나선다.

모두가 같은 마음이었을텐데, 선뜻 나서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도 앞에 나서서 사실을 사실이라고 언급했을 때 자신도 모르게 받았던 여러 유형의 핍박과 가족에 대한 피해가 마음 속 깊이 내재된 것이 가장 큰 까닭이 아닐까싶다.

나의 불편함이 아니더라도 다른 이들의 어려움에 묵묵히 앞장서서 그 분들을 대변해 주는 사람들이 마냥 존경스럽기만 하다.

편집 : 하성환 편집위원

이상직 주주  ysangle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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