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도 걷는다
마을 자랑을 하고 싶은 마음이 내 몸 곳곳에 숨어있다.
오늘의 출근길, 조금 마음이 여유로워져 사진을 찍으며 천천히 걸었다.
연신초등학교를 지나 연천중학교 골목길 사이로 걸으면 골목을 걷는 즐거움이 새록새록 솟는다.
어느 주민이 정성을 들여 키우고 있는 배추가 실하게 완성되기 위해 쭉쭉 자라고 있다.
내가 이 동네에 오기 전 해에 시작된 빗물생태 마을은 성공적으로 진행되진 않은 것 같다. 길게 난 시멘트 사이로 잔디나 식물이 무성히 자란 걸 본일이 없다. 불광2동 주민센터가 바로 집 옆이니 주민센터에 한번 물어봐야겠다. 마을 주민이 관심을 가져야 담당 공무원들도 살짝은 긴장해서 열심히 사업을 진행시키지 않을까 작은 기대를 품고.
출근길 가끔 버스를 타는데. 우리집 버스 정거장은 연신초등학교, 다음 정거장이 새장골 유래비다. 이에 대해 검색해보니 이렇게 소개해준다.
'새장골은 조선시대 연서천변에 있던 '사정(射亭)', 즉 활쏘기 장소가 변하여 '사정골'이 되었고, 이 '사정골'이 세월이 흘러 '새장골'로 불리게 된 것입니다. 새장골유래비는 이처럼 활을 쏘던 역사적인 장소였던 '사정골'의 유래를 기리기 위해 세워질 비입니다.'
새장골이란 말이 새검정, 웃터골, 배곧누리, 도담마루처럼 굉장히 순우리말스럽다고 생각했는데 사정동 혹은 '사정골'에서 유래한 말이라는 것이 신기했다.
어느 지역이든 마을에 들어서는 초입에는 나무 한 그루가 서 있다.
내 눈이 따라가 머무는 곳은 바로 그곳이다. 이 느티나무도 어느 마을에 묵묵히 자리하고 뜨거운 여름에는 쉬어가라고 말해주는 나무를 닮았다. 연서시장이 곧바로 이어지는 길목에서 새장골 유래비는 느티나무와 함께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뜨거운 여름에는 이처럼 모여있는 주민들에게 시원한 바람을 만들어주었을 나무.
밤의 느티나무는 단풍빛과 함께 그윽한 빛을 내뿜는 듯하다.
밤이 주는 그윽함과 단풍 빛깔의 오묘한 조화가 새로운 기쁨으로 다가온다.
사람도 그렇지 않을까. 어느 순간의 모습과 다른 순간의 모습은 다 제각각의 빛깔이 있지 않은가.
슈퍼문이라고 들었다.
늦은 밤 집에 돌아가면서 조금 걸었다. 낮에 보았던 것들과 분명 같은 것이겠거늘 신기한 빛이다. 신기하게 아름다운 시간이다.
동그란 달을 카메라에 담고 싶어서 계속 동그라미를 누른다.
향림마을에 살면서, 특히 깊은 밤에 배롱터(향림도시농업체험원)를 걸으면서, 밤의 빛깔을 몽환적으로 바라보곤 했다.
텃밭이 있는 언덕배기에서 내려다본 세상은 동화 속 아름답고 정겨운, 가슴이 따뜻한 사람들로 그득할 것 같은 마을 그 자체였다. 꿈의 마을이다.
왼편으로 고개를 돌려 바라본 북한산과, 푸른빛 하늘은 또 어떠한지. 같은 불광동에 살아도 이토록 자그마한 공원이 있음을 모른채 시간에 쫓겨 살아가는 사람들이 아직도 너무 많다. 우리 동네 홍보대사를 자처하는 나는 이렇게 몇 글자 끄적이며 동네를 감탄한다. 삶을, 생활을 찬양한다.
슈퍼문이라는 그 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갑자기 누군가 나에게 사랑한다고 말하지 않았고, 모르는 사람이 나에게 말을 거는 일조차 없었다.
다만 걷는 내가 있었다. 이렇게 바라볼 아름다운 풍경이 있음에 감사하는 내가 있었다. 행복한 일이 일어난 것이다.
보는 각도에 따라 모습이 다르듯, 보는 높이와 거리에 따라 사물의 다른 모습이 보이듯,
하루 24시간의 시간은 각기 다른 빛을 내뿜는다.
밤이 주는 선물이 무엇인지 궁금하다면 은평구 향림마을에 와서(연신내역 도보 17분 거리) 몇십분 넉넉히 걸어보시길. 세상은 내가 바라보는 만큼 아름다운 거니까.
Not everyone who takes action can be happy,
but there is no happiness without action.
행동한다고 모두 행복할 수는 없지만, 행동하지 않는 행복이란 없다.
편집 : 하성환 편집위원. 조형식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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