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가신 내 아버님을 소환하는 일은 너무도 착잡하다. 파란과 굴곡의 파노라마 아닌 인생 몇이나 되랴! 정계든 재계든 사회에 드러난 인물은 아니었으나 가히 시대의 풍운아 임에는 틀림 없다.막내딸이었던 우리 집에서 떠나시고 채 넉 달이 되지 않았을 때다. 관악산에 오르셨다가 허리가 찰칵 내려앉아 등산객 중에 어느 집 청년의 등에 업혀 하산하신 후 더는 일어나지 못하고 세상을 뜨셨다. 양방으로 한방으로 두루 수소문하며 오빠 내외가 수고를 다 하셨다. 그러나 골다공증이 시작되어 물러나는 뼈가 신경을 누르니 고통은 이만저만이 아니고 화장실을
오늘 새벽 전 주한네팔대사를 역임하셨던 커먼 싱 라마(Kaman Singh Lama)님께서 코로나로 병원에 입원해 치료를 받아오다 세상을 떠났다. 나와는 부임 이후부터 최근까지 소식을 주고받으며 형제처럼 지내왔었다. 나는 대사님이라고 하기보다 형님이라고 하는 호칭을 사용하는 것이 더 자연스러울 정도로 지내왔다.지난 2014년 7월 13일에는 네팔어창시자 바누벅타 어챠르야(Bhanu Bhakta Acharya)님의 200주년 탄신일을 맞아 우리 부부가 네팔대사관과 공동으로 주최한 행사를 대사관에서 갖기도 하였고 이후 네팔대지진이 발생
“박 서방, 왔나?”하시며 반가이 손잡아 주시던 아버지! 가타부타 말이 없이 천장만 보고 누워 계신다. 배가 등에 들러붙은 형국이다. 눈은 퀭하니 들어가고 입을 벌린 채 눈 감고 가쁜 숨 몰아쉬다가 가끔 눈을 뜨고 천장을 응시한다. 오른손은 가슴에 얹고 왼손은 아까부터 아내가 잡고 주물러 준다. 뭔가를 여쭈어보면 들릴락 말락 겨우 ‘으응’ 하거나 띄엄띄엄 고개를 끄덕이신다. 때로는 웃거나 찡그린 표정을 짓는다. 처가 잠시 자리를 비운다. 둘만 남았다.결혼 전, 석 달 동안 처가에서 살았다. 자취하고 있었는데 마침 작은처남이 입대하는
평생 자기 이름조차 갖지 못하고 떠나간 한 여자를 기립니다. 핏줄로 맺은 인연을 떠나 제게 잔잔하지만 울림 있는 가르침을 준 어른으로서 그니를 그리워하고 잊지 않으려 짧은 기억을 남깁니다. 남 앞에 나서거나 당신을 내세우기 싫어하는 성품인지라 제가 이렇게 글 쓰는 걸 아시면 괜한 짓 말라며 핀잔을 주셨을 겁니다. 1927년 경북 예천군 용문면 구렬 전주 이씨 이순행 님 셋째 딸로 태어난 이달녀. 친언니 이름으로 아흔셋 삶을 살다 지난 10월 24일 돌아가셨습니다. 달녀가 태어나기 이태 전 언니 달녀가 세상에 나왔지만, 돌림병으로 세
오늘 대학 동기 방에 문자로 뒤늦게 친구 부인이 보내온 부고를 받으면서 며칠 전 운명한 친구의 부고가 새삼 가슴을 아프게 한다.철없던 60년 전 대학에 입학하여 만나 그는 상공부 쪽으로 공무원을 시작하고, 나는 산업체로 전공을 살려 각자의 길을 걸으면서 많은 도움과 혜택을 누리고 살게 되었다.고인이 된 친구는 국장으로 정년을 맞이한 후 개인 사업을 하면서 사무실을 운영하였다. 우리의 아지트로 한 달에 두 번을 만나서 놀이를 즐기고 오래도록 건강하게 살자고, 그래야 아지트를 이용할 수 있다고 말해왔다. 농 섞인 이야기들이 현실이 되어
“정기적으로 빵을 구워드릴 테니까”웬만한 집에는 다 갖고 있는 김치냉장고를 구입했습니다. 중고냉장고 10만 원, 김치 통 4개는 따로 구입해서 모두 11만 4천 원이 들었습니다."작은 집에 꼭 김치냉장고가 필요할까?" 했지만 다향이의 입장이 확고했습니다."아빠. 내 베이커리 용품들이 늘어나서 넣어둘 데가 없잖아. 그리고 난 껌정산나비님의 김장김치가 세상에서 제일 맛있어. 그런데 껌정산나비님이 김장김치를 보내주실 때마다 둘 곳이 없어서 고민을 하잖아. 난 맛있는 김치를 쉬게 하지 않고, 끝까지 맛있게 먹고 싶어.""&hell
2016년 1월 18일 아침, 큰 눈이 쏟아 붓듯 내리는 서울.오빠! 당신의 장례식이 대만시간 10시에 시작합니다. 저는 서울에 돌아와 창밖에 휘날리는 눈꽃 송이를 바라보고 있으니 어린 시절 개구쟁이 당신이 떠오릅니다.우리는 모두 장난꾸러기였습니다. 할머니는 대나무 회초리로 우릴 다스렸는데, 그 회초리는 벽에 높이 매달려있는 액자 뒤에 두었지요. 할머니가 매를 어디다 감추는지 모두 알았습니다. 대나무가 액자 양쪽 밖으로 튀어나왔으니까. 어느 날 오빠는 어른들 몰래 대나무 회초리를 자른 후, 귀신도 모르게 액자 뒤에 그대로 놓아두었습
성남 노모가 오지 말라하시니 이번 추석 안 간다. 대신 나의 집이자 스튜디오이며 신화미술관인 이곳 원주에서 제사를 지낸다.아버지는 삼 년 전 돌아가셨다. 술 한 잔 올리고 절을 하는 내내 두 마디 말만 떠오른다. 아버지! 죄송합니다~마음 같아서는 친할배 할멈, 외할배 할멈까지 모시고 제사 올리고 싶었으나 못했어요. 새해 설날에 그리할게요. 절 올리다보니 최선을 다해 살지 못하고 아버지도 제대로 섬기지 못한 지난날 때문에 불효자는 웁니다.그래도 화업 40년 해내고 기념전시까지 마쳤으니 대견하다고 쓰담쓰담 해주세요. 아버지 칭찬이 목말
정적에 싸인 깊은 밤, 어머니 어깨에 기대어 있던 저는 낙숫물소리에 잠이 달아납니다. 가을비가 내리나? 빗소리가 어머니의 잠을 방해하는 것 같아 어머니 뺨을 어루만져봅니다. 온몸이 마비된 어머니는 그저 눈빛으로 말합니다. ‘가을비가 내리고 나면 그만큼 추위도 따라온단다. 애야! 이불 잘 덮고 추위 조심해라!’저는 대꾸합니다.”엄마, 걱정하지 마! 엄마 몸이 따뜻해. 이불보다 포근한걸!“어머니의 부드럽고 따뜻한 손을 만지며 생각에 빠집니다. 내년 겨울에도 차가운 손발을 이불 속에 밀어 넣으면 엄마가 따뜻이 녹여주기를 바랄게. 2013
이 세상에 태어난 사람은 언젠가 모두 죽는다. 죽음은 이별의 가장 확실한 방식이다. 그럼에도 나는 누님을 떠나보내지 못한다. 마음속엔 항상 그리움으로 가득하다. 누님의 부재를 의식할 때마다 가슴엔 슬픔이 고이고 멍한 시간을 보낸다.어느 날은 호수공원에 가서 한동안 앉아 있다 오고 또 어느 날엔 숲길을 걸으며 조용히 누님을 생각하기도 한다. 어제도 어스름 내리는 숲길을 걸으며 누님을 생각했다. 나뭇잎 가지 사이로 푸르르 날아오르는 새가 나를 반기는 누님 같고 풀벌레 소리들이 나를 위로하는 누님의 소리 같다.나와 누님은 두 살 터울이다
어머니가 황혼의 하늘을 바라보며 “하늘이 몹시 붉어지는 걸 보니 태풍이 곧 오겠다.” 고 말합니다.저도 머리 들어 먼 하늘 바라봅니다. 파란 하늘에 흰 구름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시커먼 구름이 뒤덮고 있지도 않습니다. 그저 붉은 노을이 하늘 가득 걸려있었지요. 붉은 노을을 보고 있자니 심장이 떨려옵니다.어머니는 비닐 뭉치와 못, 망치를 챙겨 나오시며 양계장에 비닐을 둘러 비바람을 막아야 한다고 아이들을 부릅니다. 나이가 많고 키 큰 아이는 비닐의 윗부분을 잡고, 작은 아이는 아랫부분을 잡아 평평하게 하고, 어린 막내는 옆에서 못을 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