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생활 속 자주 쓰는 말 중에 ‘갑질’이 있다.

갑(甲)이라는 한자에 접미사 ‘질’을 붙여, 상대적으로 우위에 있는 자가 상대방에게 무례하고 권위적으로 구는 행태를 일컫는다.

육십갑자의 10간(干) 12지(支)중 천간(天干)의 첫 번째와 두 번째 글자로 단지 기호의 순서일 뿐인 갑과 을이 언제부터인가 신분의 우열, 상하를 나타내는 대명사처럼 쓰이고 있다.

흔한 경우로 계약서와 같은 서류는 갑은 고용인 을은 피고용인, 갑은 집주인 을은 세입자로 표기한다.

▲ 대한항공 직원들과 시민들이 4일 저녁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계단에서 한진그룹 총수인 조양호 회장 일가의 '갑질'을 규탄하고 조 회장 일가에게 경영 일선 퇴진을 요구하는 촛불집회를 열고 있다.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출처 :2018년 5월 11일자 한겨레신문)

몇 년 전 ‘갑질’이라는 사회적 이슈로 세상을 뜨겁게 달구었던, 이른바 ‘땅콩회항’ 한진그룹 일가의 다양한 갑질을 비롯하여 우리사회의 갑질 스캔들은 끊임없이 발생하고 있다.

남양유업의 ‘물량 밀어내기’ 갑질, 조폭영화를 방불케 하는 위디스크 회장의 엽기적 갑질, 백화점 갑질, 가히 갑질의 온상이라 할 만한 프랜차이즈 본사들의 가맹점 갑질 등등 기사화 되고 보도 된 갑질 사례만 해도 셀 수 없을 정도이다.

갑질의 경중에 따라 ‘슈퍼 갑질’이나 ‘울트라 갑질’로 분류하기도 하며 심지어는 약자의 지위를 역이용하여 횡포를 부리는 ‘역갑질’이라는 것도 있다.

매스컴에 빈번히 오르내리던 수많은 갑질 사건의 주체는 대부분 부와 권력을 거머쥔 사람들이었다.

인생 대부분을 ‘을’의 지위로 살아가는 나로서는 힘 있는 자들의 갑질 횡포에 관한 기사를 접할 때마다 피해자인 ‘을’의 입장에 감정이입 되어 분통을 터뜨리곤 했다.

몇 년간 음식점을 운영한 경험이 있다. 회사원에서 자영업자의 신분이 된 것이다. 사업장 규모는 작았지만 도심 한가운데 상권이라는 이유로 건물 임대료는 몹시 비싼 편이었다. 건물주인은 재일교포 재력가라고 했다.

물질적 풍요를 누리고 사는 사람들은 마음조차 여유로워 세상에 대해 관대할 것 이라는, 재력의 크기와 자비심의 상관성에 대해 동화적 잣대를 적용하며 살아가던 나.

사업초기, 절대적 경험부족으로 무수한 시행착오 속에 운영은 적자의 연속. 기를 써도 제날짜에 임대료를 입금하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그때마다 건물주로부터 걸려오는 위압적인 말투의 독촉 전화에 나는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곤 했다. 재일교포 재력가는 나 같은 영세 자영업자에게 조금도 자비롭지 않았다.

‘조물주 위에 건물주’라는 우스갯소리에도 설핏 웃어지지 않을 만큼 ‘을’인 내가 가까이 하기엔 너무 두려운 ‘갑’.

조물주 위의 건물주!

그렇다면 그때 나는 항상 주눅 든 ‘을’이었을까?

그렇지 않았다.

마음에 들지 않는(?) 고객에게는 심지어 “당신에겐 밥을 팔지 않겠다”라고도 했고, 식자재를 납품하는 업체에게는 상품의 사소한 흠결을 꼬투리 삼아 까탈을 부리기도 했으며 때로는 거래처를 바꾸겠다는 협박(!)도 했다.

틀림없는 ‘갑질’이었다.

누군가 그랬다. 돈이 많은 사람이든 적은 사람이든 상관없이 사람들은 모두 갑질 할 수 있는 유전자를 가지고 있다고.

비단 권력자들이 행하는 슈퍼 울트라 갑질이 아니더라도 우리의 갑질 본능은 끊임없이 저보다 약한 편을 향해 폭력의 기회를 찾는다. 그러면서 대부분 사람들은 자신들이 ‘을’의 위치에 있다고 생각한다.

'도파민에 취한 뇌가 일으키는, 갑질도 병이다'라는 글을 읽은 적 있다.

권력이 지나치게 남용 되면서 도파민이 비정상적으로 분비 촉진 되어 타인에 대한 공감 능력이 상실된다는 내용이었던 것 같다.

모든 갑질의 속성은 폭력이다.

갑질로 인해 발생하는 문제는 경제적 피해도 있지만 그에 못지않게 인격적 정서적 모욕의 측면도 크다.

'대한민국은 갑질 공화국이다'라는 표현도 흔히 회자 된다. 기업, 학교, 회사, 군대, 국가 거기에 가정에서 조차 갑을 관계는 구조적으로 견고하게 존재한다.

작고 큰 조직 속에서 개인은 부지불식간에 혹은 의도적으로 변화무쌍한 역할 변환을 경험하며 살아간다. 갑이 을이 되고 을이 갑이 되었다가 갑질에 을질에 병질 정질...

갑, 을이 상하(上下) 강약(强弱) 관계가 아닌 순서(順序)로서의 원래 의미를 되찾으려면 타인을 배려하는 성품과 같은 인간적 요소와 법, 교육과 같은 제도를 통한 사회적 장치가 유기적으로 어우러질 때라야 가능할 것이다.

무엇보다도, 내가 겪고 싶지 않은 상황을 타인에게 행하지 않는 마음 씀이 먼저다.

“진정으로 그 사람의 본래 인격을 시험해 보려거든 그 사람에게 권력을 쥐어 줘 보라”

-에이브러햄 링컨-

 

편집 : 김동호 편집위원 

이경애 주주통신원  iemma194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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