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10 양산문화회관, '조윤범과 쾨르텟엑스의 오페라 이야기'

그는 주인집 딸을 사랑했다.

이야기의 시작은 항상 그렇다. 그녀는 그를 사랑하지 않았다. 그녀가 사랑한 사람은 가난한 귀족이었지만 시대의 모순을 민감하게 느낀 시인이었다.

그리고 혁명이 일어났다.

혁명은 모든 것을 바꿔놓았다. 주인집 딸을 사랑한 하인은 혁명에 앞장섰고 그 결과 권력를 얻었다. 권력을 이용해 그는 사랑을 얻으려했다. 그가 먼저 한 일은 자신의 연적을 거짓 사실로 기소한 것이다. 이제 하인이었던 남자는 이런 마음으로 쓰기 시작했다.

“콘스탄티노플 출생이라고? 외국인이네. 생 시르 사관학교에서 공부했다고? 군인이잖아. 반역자네. (왕당파 장군인) 뒤무리에와 공범이잖아. 거기다 시인이라니, 마음을 다치게 하고, 풍속을 전도하는 자가 아닌가”

사모했던 귀족의 딸은 시인을 구해달라고 옛 하인에게 매달린다. 하인은 욕망에 눈 먼 자신의 잘못을 깨달았지만 모든 것을 되돌리기에는 이미 늦어버렸다. 여인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하는 죽음을 택한다. 이 비극적인 결말의 오페라는 실제 인물의 이야기에 기초했다.

▲ RCA 1976, 낡아버린 음반 속에는 낡지 않을 욕망을 노래하는 서른 다섯 플라시도 도밍고,

서른 둘 레나타 스코토의 열정이 살아있을 것이다.

아리아 '조국의 적'은 바리톤 baritone 의 영역이다. 묵직한 테너의 음색은 혁명에 자신을 내던졌지만 인간적인 욕망에 굴복한 옛 고용인의 고민을 표현하기에 어울리지 않는다. 그럼에도 노래는 담담했다. 담담한 가운데 끓어오르는 격동을 제대로 전달하는 성악가는 흔하지 않기 때문이다.

서울 한 구석에서 사람들의 함성이 빽빽했던 날, 오페라 '안드레아 셰니에'의 이야기와 아리아를 들었다. 아내와 아내의 지인, 한 달여만에 만난 아이도 자리를 같이 했다. 우리는 덤덤하기만한 기교에 대해 덤덤히 의견을 나누었다. 가사에 들어있는 감성에 대해 의견을 교환했지만 '적'에 대해서는 얘기하지 않았다. 부족한 감성, 확연히 드러난 증오는 어떻게 꾸미든 그 괴기스러움을 감출 수 없다. 설사 노래가 이렇게 이어진다 하더라도.

“이제 나는 성스러운 사명을 등졌네. / 내 마음은 증오로 가득하다네. / 이 증오를 가져다준 것 / 모순적이지만 사랑이라네.”

우리는 이제,

이 걸맞지 않은 모순의 의미도, '적'이 무엇인지 하는 것도 알고 있다.

 

편집 : 김동호 편집위원

김해인 주주통신원  logcat@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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