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안당 일기> 창덕궁 후원길을 걷다

정우열 주주통신원l승인2019.11.04l수정2019.11.05 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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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궐의 뒷동산, 왕의 걸음으로 걷다

10월의 마지막 날, 31일. 오늘은 우리 <동우회> 역사탐방일이다. 원래 지난 주 24일(목)이었으나, 그날 전체 동기회에서 맛기행 행사가 있어 부득이 한 주 미루었다.

"우영, 이번 탐방 어디로 갈까? 단풍철이니 나들이 겸 갈만한 곳 어디 없을까?" 나의 말에 우영은 "글쎄? 웬만한 곳은 다 가봤으니... 또 가까운 소요산이나 용문산 같은 곳은 인파로 붐벼 복잡할 테고.. 차라리 창덕궁 후원(비원)이 어때?" 했다. 그렇다. 그동안 근처 웬만한 유적지며 명소는 다 가봤다. 창덕궁 후원도 2013년 6월에 다녀왔다. 그때는 신록이 우거질 때였다. "그래, 한번 가 봤지만 그땐 여름이었으니까 가을 단풍길 걸어보는 것도 좋을 거야. 그럼 후원으로 정하겠네." 오늘 창덕궁 후원 탐방은 이렇게 해서 정해진 것이다.

12시 30분, 안국역 3번 출구. 선약이 있는 우사(이덕훈), 탄월(김원택), 향산(윤인호)을 빼곤 모두 나왔다. 오랜만에 정재(김란식)가 나오고 멀리 밴쿠버에서 우빈(문순탁)이 참석했다. 특히 바쁜 업무에도 범산(이경회)이 시간을 내어 줬다. 범산은 요즘 부인의 투병 생활(현재 서울대 병원 입원 중)을 지켜보며 초조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오늘 참석 회원은 경산, 범산, 우빈, 우영, 이산, 정재, 그리고 나, 모두 7명이다.

우린 늘 찾던 안국동 그 해장국집으로 가서 해장국에 소주를 곁들여 점심을 했다. 평안도 사투리의 그 주인 할머니(?)가 정정한 옛 모습 그대로 카운터에서 우리를 반겨 준다.

점심을 마치고 창덕궁으로 향했다. 오후 2시, 후원 입장 시간이다. 후원은 미리 예약을 해야 관람이 가능하다. 내가 미리 예매를 했다. 전형적 가을 날씨다. 구양수(歐陽修)는 오늘과 같은 날씨를 그의 글 <가을소리를 노래하다>(秋聲賦)에서 '天高日晶'(하늘은 높고 해는 맑다)이라 표현했다.

▲ 단체 사진

우리는 입장하기 전에 기념사진을 한컷 찎고 언덕을 넘어 안쪽으로 들어갔다. 마치 옛 왕실 임금이라도 된 듯 왕의 걸음거리로...

창덕궁은 아름답고 넓은 후원 때문에 다른 궁궐보다 왕들의 사랑을 많이 받았던 곳이다. 자연 지형을 그대로 살리면서 골짜기마다 정원을 만들었다. 여기 저기 단풍이 울긋불긋 곱게 물들어 햇볕에 맑게 빛났다. 천자만홍(千紫萬紅) 그대로다.

▲ 부용정

언덕을 넘으니 저만치서 부용지(芙蓉池)가 손짓을 하고 그 뒤로 규장각(奎章閣)이 주합루(宙合楼)를 이고 우뚝 서 있다.

▲ 규장각. 합주루

반가운 얼굴들이다. 헌데 어수문(魚水門) 주위에 취병(翠屛)이 보이지 않는다. 왜일까? 쓸쓸하다. 부용지에서 낚시를 드리우던 정조의 모습도 없고 낙엽만 쓸쓸히 떨어진다. 지난 여름과는 달리 마음이 스산하다.

춘향전에서 "춘당춘색(春塘春色), 고금부동(古今不同)"이라 했던 바로 그 춘당, 영화당(映花堂)에선 지금 국악 연주가 한창이다.

▲ 영화당

정재는 "내가 없으면 간 줄 알아"하고 나의 귀에 대고 속삭이듯 말했다. 사실 정재는 그동안 어지럼증(이석증/耳石症)때문에 참석치 못하다 오랜만에 오늘 나왔다. "알았어. 걱정 말고 힘들면 들어가!" 내가 말했다.

▲ 금마문

다시 발걸음을 애련지(愛蓮池)로 옮겼다. 지난번엔 금마문(金馬門)을 지나 늙지 않는다는 불로문(不老門)으로 들어가 애련지(愛蓮池)를 보고 연경당(演慶堂)으로 갔는데, 이번엔 불로문에서 한 사람씩 개인 사진(영정사진?)을 찎고 바로 오른쪽 길을 따라 올라갔다. 골짜기 숲 속으로 그윽히 존덕정(尊德亭), 폄우사(砭愚榭)가 보인다.

▲ 존덕정. 폄우사

다시 언덕을 넘어 취한정(聚寒亭), 소요정(逍遙亭), 태극정(太極亭)을 지나 옥류천(玉流川)으로 갔다. 그렇게 흐르던 물도 다 말라 버리고 바위만 외롭게 서있다. "흐르는 물은 백척 멀리 날고(飛流三百尺), 흘러 떨어지는 물은 하늘에서 내리며(遙落九千来), 이를 보니 흰 무지개 일고(看是白虹起) 온 골짜기에 천둥과 번개를 이룬다(飜成萬壑来)"라고 쓴 숙종의 시구도 잘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류상곡수연(流觴曲水宴) 또한 그 흔적을 찾아 볼 수 없다. 한 해의 농사를 빌기위해 정조가 모내기를 하고 그 거둔 집으로 지붕을 덮었다는 청의정(淸猗亭)이 오늘 따라 초라해 보인다.

옆에 육각형 존덕정(尊德亭)을 찾아가 천정을 봤다. 헌데 전에 보이던 정조의 친필 '萬千明月主人翁自書'가 보이지 않는다. 분명히 지난번에 이 존덕정 천정에서 봤는데... 우린 용산정(龍山亭), 관람정(觀纜亭)을 뒤로 하고 서쪽 언덕을 넘어 연경당으로 갔다. 전엔 향나무가 용트림을 하고 있는 옛 신원전터로 갔는데...

장락문(長樂門), 장양문(長養門)을 지나 소슬 대문으로 들어서니 연경당(演慶堂)이다 이 집은 순조의 아들 효명세자(孝明世子)가 아버지를 위해 지은 당시 전형적인 양반집 형태를 따서 지은 것이다. 궁궐에 일반 민가 형태의 집이 있는 것은 이곳 밖에 없다고 한다. 이로서 순조의 소박한 생활 태도를 알 수 있다. 안채, 바깥채, 내실과 사랑채의 구분이 확실하다.

특히 선향재(善香齋)는 향(向)을 서향으로 해 동판으로 차양을 해서 해가리를 했다. 그걸 본 이산(이근달)이 "왜, 태양광 집열판으로 안했어?"하고 한마디 했다. 물론 이 말은 원자로를 폐기하고 그 대체 에너지로 태양광을 독려하는 문재인 현 정부를 꼬집어 말한 것이다. 나는 안으로 들어가 사랑채에서 안채를 바라보며 "안방에서 밖 사랑채를 볼 수 있게 일직선으로 되어 있다."고 하였다. 양쪽 기둥에 '山靜日長仁者壽', '月明人影鏡中来'란 주련(柱聯)이 눈길을 끈다.

▲ 선향재

'산은 고요하고 해는 길어 어진이 오래 살고, 달 밝으니 사람 그림자 거울 속에 비친다.'는 뜻이다. '山靜日長', 산중 긴 여름날의 한적함을 그대로 나타냈다. 방문 앞에는 노둣돌이 있었는데 오늘은 보이지 않는다. 노둣돌은 말에서 내리기 좋게 한 받침돌로 '하마석'(下馬石)이라고도 한다. 현재 이 선향재는 독서실로 사용하고 있다,

우리는 이 연경당을 마지막으로 후원 탐방을 마쳤다. 붉게 물들은 후원길, 옛 임금이 걷던 그 길을 오늘 나는 친구들과 함께 한가히 걸었다.

"아아, 슬픈 소리여, 이것은 가을 소리구나. 무엇 때문에 가을이 오는가?

생각건대 대체로 가을의 모습이란 그 빛이 마음을 아프게 하고 담박한데, 안개는 흩어지고 구름은 사라져 고요하다. 또 가을의 모양은 밝고 맑으며 하늘은 높고 햇빛은 투명하게 빛난다..."

(噫噫悲哉, 此秋聲也. 胡爲乎来哉. 蓋夫秋之爲聲也, 其色慘淡, 煙霏雲斂.其容淸明, 天高日晶. ...)

나는 구양수의 추성부를 읊조리며 창덕궁 후원을 나왔다. 인정전(仁政殿)위로 높이 흰구름이 한가로이 떠돈다.

2019. 11. 2. 김포 여안당에서 한송 포옹

 

편집 : 김동호 편집위원, 심창식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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