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25일자, 한국일보 <다시 본다, 고전>에 붙여서!

 

서정주 <서정주>
최근 10월 25일 자 인터넷 한국일보에는 시인 박연준 씨가 조심스럽게 꺼내는 글이 있다. <다시 본다, 고전>이라는 제목의 글을 격주 금요일 싣기로 했다며 첫 번째로 미당 서정주를 언급하고 있다. “애비는 종이었다....”로 시작하는 자화상의 작가미당의 첫 시집 <화사집>을 추천하며 끝내는 글에는 다분히 미당을 다시 끌어올리는 뜻이 역력하다.

시인 박연준이 고등학교 때 처음 <자화상>을 통해 만난 서정주와 시詩라는 장르의 문학적 충격을 반추하면서 우리의 글을 다루는 미당의 천부적 재능은 그가 살아온 내력과는 분리 해야하는 것이 당연한 논리라며 미당의 삶이 아니라 작품만을 재평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귀신이 돕는 시인이다. 그가 신의 목소리를 흉내 낼 때, 능글맞고 완벽하다. 이미 거장의 솜씨로 첫 시집을 빚은 뒤, 그는 한숨이 나올 정도로 좋은 시들을 줄줄이 써냈다. 전집을 읽어보면 태작 없이, 한국말을 이토록 아름답게 쓰는 게 가능한가.“

라고 그를 신의 경지에 올리고는 친일과 독재자에게 찬양시를 바침으로써 지금 냉대를 받게 되었다고 역설한다. 시는 잘못이 없고. 시는 시인을 위해 태어나는 게 아니고, 독자를 위해서도 아니고. 우리 모두처럼 시는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난다, 고 극히 개인적 소회를 대한민국 주요 언론에 감히 올려 자신의 주장을 강요하고 있다.

위에서 박연준 시인이 언급했듯이 어떤 개인이 태어나든 어떤 행로를 걷든 어떤 시를 쓰든 누가 막을 것인가. 그러나 그가 태어나서 부려놓은 족적을 어찌하랴! 금을 부려놓은 사람은 금으로 남고 똥을 부려놓은 사람은 똥으로 남고 빛을 부려놓은 사람은 끝내 빛나고 말 것이다. 그래서 태어나는 것은 자유이되 삶은 진실로부터 대체 자유롭지 못한 것 아닌가. 개인과 개인의 흔적이 시대의 다리를 밟고 역사가 된다.

더구나 지금 시국이 어떠한가. 어떤 이유에서든 친일과 왜구를 척결하지 못하고 오는 바람에 우리 민족정기는 혼탁해지고 그간 번성한 악의 쇠가시들이 개혁과 진보를 향한 애국적 발걸음을 부여잡아 한 보 한 보가 힘든 현실이다. 100년 적폐의 가장 근원에 친일이 있고 그를 털고 오지 못한 과오가 지금 우리 발목을 잡고 있어 다시 백척간두에 선 우리의 작금에 대해 박 시인은 어떤 진단을 내리는지 궁금하다                      

                     !질마재 신화(양장본 HardCover) 

헤아릴 수 없는 독립군들이 얼마나 쓰라린 세월을 살다 독립을 보지 못하고 죽어갔는가. 계구鷄狗처럼 죽어간 그들의 뒤에는 친일과 밀정이 한 몫을 했다고 생각할 때 시 좀 여러 편 잘 썼다고 어떤 이의 죄가 가벼워지겠는가. 박 시인의 말처럼 미당의 행적이 무슨 수로 제거되고 지워지겠는가. 배설은 자유이되 매국노와 친일파로 사전에 등재될 것이며 이미 민족문제연구소에서 편찬한 <친일인명사전>에 올라가 있지 않은가.

더구나, 프랑스가 낳은 현대시의 비조 보들레르를 들먹이며 미당을 비견比肩하는데 이는 어불성설이다. 그는 금치산자로 판정받은 낭비벽이 심한 댄디였지만 매국은 하지 않았다. 아싯슈를 꼬냑에 타 먹고 시를 쓸지언정 학살자를 향해 찬양가를 읊진 않았다. 검은 미녀, 잔느 뒤발과 뒹굴지언정 정권에 아부하지 않았다.

"실제로 미당이 시인부락의 족장이 되어 어떻게 수십 년 동안 한국문단의 지배 권력자가 되어 '미당 신화'가 사실로 조작되었는지 분석한다. 뿐만 아니라 '미당 신화'가 어떻게 확대재생산 되어 유포되었는지 '미당 신화'의 주범 '괴물 엘리트'의 등장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리하여 글쓴이 늘샘은 "시대의 절망이 시적 재주를 낳고 결국엔 노예도덕으로 종결되고 마는 전형적인 사례"로 미당을 꼽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위의 글은 10월 26일자 한겨레온에 실린 글의 일부이다. <미당신화와 괴물 엘리트>라는 제목의 글로 <미당신화>라는 비평서를 통해 2017년에 완간된 미당전집에 대해 혹독한 비판을 가한 늘샘 평론가의 글이 한겨레온 하성환님을 통해 하루 전에 소개되기도 하는 요즘이다. 

더구나 누가 시를 감상하지 말라 했나? 작금은 유사 이래 가장 자유가 보장된 정권이며 시대이다. 멀쩡한 대통령을 간첩이라느니, 빨갱이라느니, 죽여야 한다느니, 갖은 막말을 쏟아놓아도 잡혀가는 일 없고 총구멍이 나지 않으며 자유를 만끽하고 있지 않은가. 미당의 시를 암송하든 혼자만의 성소를 지어놓고 미당을 예배하든 누가 간섭할 수 있으랴!

그러나 그를 범국민적으로 기릴 수는 없다. 나 개인을 포함한 우리라는 개념은, 민족과 문화라는 이름의 에리어(area)가 전제되며 이를 포함한 정신적이고 물리적인 지정학적 동류와 동질성이다. 이는 같은 문화권역으로 모든 것의 기초이다. 이 권역의 생명과 혼은 무엇으로도 침해받을 수 없으며 모든 것에 우선해야 한다. 목숨이 저당 잡힌 상황에서 무엇이 먼저일 수 있으랴! 그러므로 이를 배신한 이의 재능이 천부적인들 그의 정신 무엇을 기념비적이라 할 수 있는가.

문학상이란 무엇인가. 자손만대 국민들에게, 후학들에게 그의 정신과 공적을 받들라는 것 아닌가. 그의 매국 정신을 받들여야 할까. 국민을 학살한 독재자 살인범을 찬양한 것이 역사에 길이 남을 공로요 공적功績이란 말인가. 그래서 당연히 제정되지 말아야 할 상이었으며 그간 17년이나 지속 되어 온 것은 척결되지 못한 친일 독재 정권들의 득세와 무관하지 않다.

다행스럽게 촛불 탄핵과 개혁이 실현되고 나서 지난해에 와서야 미당 문학상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한국작가회 소속 자유실천위원들의 끈질긴 행동실천으로 <친일작가기념문학상폐지운동>의 첫 번째 성과였다. 그러나 정권이 바뀌면 다시 그 모습을 드러낼 수도 있다. 우리나라 메이저 언론 중의 하나인 중앙일보가 제정했고 자유실천위원회를 비롯한 국민의 정서와 요청을 받아들여 미당문학상을 전격적으로 폐지한 그 행보에 방점을 찍어야 할 것이다.

그의 시를 밑씻개로 하든 우러러보든 개인의 자유이되 공적으로 기릴 수는 없다. 박연준 시인의 이번 글이 그간 미당 문학상 심사위원과 수상자들의 뜨거운 면면에 열기를 빼기 위한 작업의 일환인지는 모르겠으나 그도 공적公的인 지면에서 떠들 일은 더욱 아니다.

한국작가회 자유실천위원회, 민족 문학연구회 회원 김자현

 

편집 : 심창식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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