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완도의 일출

의무와 권리, 권리와 의무, 어느 것이 먼저일까?

어느 것이 먼저이든 우리는 둘 다 해야 한다. 그런데 요즘 세상은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어찌 된 일인지 많이 배우고 권력을 가진 목소리가 큰 사람이 항상 앞에 서 있는 세상이 되어버렸다.

목소리가 작은 사람들이 말은 하지 않지만 생각조차 없을까? 그분들도 충분히 생각하고 판단할 수 있는 사람들이란 것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그렇다고 목소리가 큰 그 사람이 의무를 다했는 지 알아보면 그렇지 못하면서 그 큰 목소리로 자기의 과실을 덮어보려고 애를 쓰는 것이었음을 알 수가 있다. 우리는 찾아야 할 권리도 있지만, 꼭 해야 할 의무도 있다. 의무는 다하지 않고 권리만 주장하는 것은 결코 옳지 못한 일이다.

열을 내어 권리를 주장하는 사람을 보면서 어떤 사람들은 저 사람 똑똑한데, 심하면 존경스럽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철저한 기회주의자가 그 사람의 겉만을 보고 아부성 발언을 한 것이라고 본다. 그 사람의 내면을 보면 의무를 다하지 못함이 드러날까 두려워 그런 사람일 수도 있다는 말이다.

강한 것처럼 큰소리치는 사람이 어쩌면 세상에서 가장 약한 사람일 지도 모른다. 자기의 치부나 부족함이 드러남을 걱정하여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속으로는 상대의 말이 틀렸다고 생각하면서도 밖으로는 예 예를 반복하고 굽신거리면서 당신의 말이 옳다고 하는 그런 사람은 더 못난 바보라 생각한다. 그렇게 해서 얻는 것이 있는가 하면, 그 말을 그대로 믿고 그 사람에게 도움을 주는 그 사람은 더 못난 바보일 것이다.

우리는 이 세상에 태어나 살면서 누구든 사회로부터 직간접으로 많은 도움을 받고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사회에 진 빚을 다 갚고 가지는 못하더라도, 빚을 더 지는 일은 하지 않는 것이 옳을 것이다. 다시 말해 권리를 주장하기에 앞서 내가 할 의무는 다했는지, 의무를 다하지 못했다면 의무를 다하고 그 다음에 권리를 주장함이 옳은 일이다.

그런데 우리 인간은 참 묘하게도 생겼다. 목소리에 볼륨이 있어 돈이 많으면 볼륨을 고음으로 올리고, 돈이 없으면 그 볼륨이 저음으로 조절된다.

그렇지만 우리의 청각은 고음을 아주 싫어한다. 스피커에서 찢어지는 소리가 나면 싫어하듯이 말이다. 우리의 청각은 저음에는 그 소리를 들으려 애를 쓰는데, 사람들은 그 소리를 듣지 않으려고 한다. 하지만 우리 청각은 저음을 더 많이 좋아한다는 것도 알아야 할 것이다.

힘이 없고 약한 자, 많이 배우지 못한 사람이 말을 할 때, 비록 조리 있게 말을 하지는 못하더라도 최소한 그 사람이 하고 싶어 하는 말이 무엇인지는 들어보고 다음 말을 이어주어야 한다. 지위가 높다고 조금 많이 배웠다고, 돈이 좀 많다고 우쭐대면서 그 사람의 말을 자르는 것은 한마디로 나는 내가 최고로 알고 사는 나밖에 모르는 바보요! 하고 광고하는 것밖에 안 된다.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이 다른 사람에게는 틀리게 들릴 수도 있다는 점을 생각하고 상대를 배려하는 그런 사람이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이런 사람이 존경을 받는 그런 교육도 필요할 것이다. 100년 후가 되더라도.....,

우리의 선대들은 오늘 같은 날이 올 것을 예견하고 곡식은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는 말을 했나 보다.

법은 있으나 법관들이 할 일이 없는 세상이 언젠가 오지 않을까!

 

편집 : 김동호 편집위원

마광남 주주통신원  wd341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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