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도는 여성교육과 건전한 성문화의 선진고장

폐창(廢娼)운동

요즘 성범죄문제로 세상이 많이 시끄럽다. 하루가 멀다 하고 성에관한 뉴스를 접하다 보니, 동시대를 살아가는 남성으로서 부끄러움을 금치 못하겠으며 깊이 반성한다. 이런 문제가 대두 된 것이 상당히 오래 된 일인데도 아직 이렇다 할 해결의 조짐은 보이지 않는 것은 안타깝다.

성에 관한 문제들이 언제부터 시작 되었을까? 국내 3대 집창촌의 하나라고 알려져 있는 한 곳은 1908년 을사늑약체결 이후 진출한 일본인들에 의해 설치된 성매매 집결지라고 한다. 기독신보(1928, 11, 28)의 기사 한 사설을 따르면 조선에 있는 소위 인육장사라는 기생, 창기, 작부 등에 종사한 총 인원이 삼천오백팔십팔명이고 그 출신을 보면 처녀로 있다가 발을 드려놓은 사람이 일천이백명, 출가했다가 버림을 받은 여자가 칠백삼십육인, 농업하는 여자가 오백사인이라는 기사가 있다.

1916년 일제에 의해 공창제가 강제도입 되었다고 한다. 이러한 일제의 더러운 잔재를 청산하기 위해 1946년 6월 조선부녀총동맹은 ‘공사창 폐지를 위한 대책 좌담회’를 열고 성판매자들에 대한 적극적인 생활대책 마련과 이들에 대한 인격 존중을 주장했다. 그리고 8월에 폐업공창구제연맹을 결성해 성매매여성들의 갱생 운동을 펼쳤는데 이 단체의 회장을 맡은 사람이 김말봉이었다. 김말봉은 광복 후 폐창운동을 전국적으로 확산 전개해 나갔고 폐창(廢娼)운동에 온 힘을 쏟았다. 그 결과 1946년 인신매매 금지령이 내려졌고 1948년 2월 14일 입법화되어 공창 폐지가 선포됐다.(입법의원 朴賢淑 등)

건국부녀동맹으로 발족한 여성단체는 1945년 12월 22일 조선부녀총동맹으로 개명하고 행동강령으로 남녀평등의 선거권과 피선거권, 여성의 경제적 평등권과 자주성 확립, 남녀 임금 차별 폐지, 8시간 노동제 확립, 산전산후 각 1개월간의 유급 휴양제 확립, 탁아소, 산원, 공동식당, 공동세탁소, 아동공원의 완비요구, 공사창제, 인신매매 철폐, 모자보호법 제정, 봉건적 결혼제 철폐를 내걸고 이의 실현을 위한 운동을 벌였다.
동맹은 1946년 동맹원이 80만 명이었고 1947년 8월에는 동맹원 200만 획득운동을 벌이고 있었는데 1947년 남한의 여성인구 약960만 명에 비교하면 적어도 전체여성의 약 10%정도는 조직화하고 있었다고 볼 수 있다. 농가부녀, 도시주부, 노동여성, 지식여성 등이 이념적 주체로 설정되었을 뿐 아니라 실질적으로 각 계급 계층 여성들이 남한 각 도, 시, 군, 읍, 면, 마을 단위로 조직되었다고 한다.(출처 : 이대학보(http://inews.ewha.ac.kr))

1948년 4월 8일 경남신문의 기사에 신 마산애국부인회에서 공창폐지구호금을 조달키 위하여 2차에 걸쳐 흥행단체를 이용하여 활동한 결과 모아진 一萬二千圓을 지난 4월 7일 부 후생과에 폐창구호금으로 전달하여 관계과원을 감격시켰다는 기사가 있을 정도로 전국적인 문제가 되었다.

이렇게 폐창운동을 했던 김말봉은 1957년에 교회 내에서 여성들이 하나님의 자녀로 남성들과 평등하게 대우받고 하나님께서 주신 재능을 발휘할 수 있어야 한다면서 30년대부터 여성장로 안수제도를 추진해 마침내 1957년 12월 18일 서울 성남교회에서 장로 안수를 받았다고 한다.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장로였다. 또 그해 한국 여성 최초로 대한민국예술원회원으로 피선되기도 했다.

▲ 유치원 졸업사진

1925년에 완도에서는 부인들 500여명이 모여 경찰서를 찾아가 서장을 면담하고 공창을 폐지할 것을 주장하고, 폐창(廢娼)해야 한다고 시위를 하기도 하였다.(1925, 2, 28 조선일보) 이에 앞선 1910년대에 여권신장가라는 노래를 만들어 남녀가 평등함을 외쳤던 곳도 완도였다. 이러한 운동이 일게 되었던 것은 어느 지역보다 빠르게 받아드린 신교육이라 생각한다.

위에 소개 된 그림은 1950년도 완도의 유치원 졸업기념 사진이다. 총 졸업생 34명 중 남학생이 11명인데 비해 여학생의 수는 23명이나 된다. 이때는 여자가 글을 배울 필요가 없다고 했던 때이다. 그러나 완도는 그렇지 않았다. 이렇게 앞 선 여성교육 때문에 어느 지역보다 강렬한 항일운동을 펼쳐졌던 곳이 완도였고, 일본 순사들이 전 조선에서 최고의 고장이라고 한 곳도 완도였다. 완도는 교육, 역사, 문화 등에서 빛나는 전통을 가진 자랑스러운 고장이다.

편집 : 김태평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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