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후 민간인 학살유족들 과거사특별법 재개정요구하며 원혼굿 공연

<전후민간인 학살유족들 과거사특별법 재개정요구>

때 : 2019.12.03.13:00~ 14:30

곳 : 국회 정문 앞 담장 앞

누가 : 한국전쟁후민간인피학살자전국유족회, 광복회 외

무엇 : 과거사특별법 재개정요구 및 원혼굿 범국민문화재

1945.8.15. 이후 해방공간과 한국전쟁 과정에서 이승만 정권의 정권유지를 위한 몸부림으로 일어난 국가 권력에 의한 국가폭력으로 무자비하게 학살당한 민간인들이 수십만에 달한다고 한다. 이제 그 유가족들이 70년 가까이 숨죽이며 살아온 슬픔을 떨치고 일어서 국가의 잘못을 인정하라고 일어섰다. 그들은 그 동안 말 한 마디 할 수 없는 핍박 속에서 숨죽이며 살아 온 자신들의 슬픔을 풀어내었다.

▲ 국회앞에서 벌어진 원혼굿 공연과 함께 과거사 특별법 재개정 요구 시위70년 가까이 숨죽이며 핍박 받아온 유가족들이 가슴에 맺힌 한을 풀어 달라 요구하고 나섰다.

유족들은 우리들에게는 무참히 죽어간 희생과 죽음의 실체를 밝히고 희생자들의 명예를 회복시키고자 나섰다. 아울러 앞으로는 이런 비인간적이고 반민주적인 국가권력에 의한 국가폭력으로 더 이상의 희생자가 생기지 않도록 해야할 책임과 의무가 우리 모두에게 있다.

그 중에서 우리 유가족들에게 슬픔을 안겨준 한국전쟁을 전후한 이승만 정권이 군경과 함께 동원된 서북청년단과 같은 극우민간 사설단체까지 나서서 자행한 민간인 학살이 불법적, 반인륜적인 범죄임을 밝히고 국가적인 책임을 물어 법적인 보장을 받고자 한 것이다.

이들은 국가폭력에 대항할 힘이 없었고, 반공주의를 앞세운 폭압정치 속에서 원통한 피해를 호소하기는커녕 숨죽이며 살아야 하였다. ‘빨갱이‘로 몰아세우는 독재정권 밑에서 자손들까지 연좌제로 묶였으며 사회진출에 지장을 받기까지 하며 살아왔다.

독재자들과 이를 이어받은 군사정권에서는 이러한 민간인 학살자들의 복권은 커녕 ‘여순 반란‘ ’빨치산 후예‘라는 굴레 속에 가두고, 지역주민들까지 몽땅 “전라도 빨갱이’ 라는 억울한 누명을 쓰고 기죽어 살아야 하였다.

그러나 이제 과거사위에서 분명히 밝혔듯이 억울한 죄명, 또는 재판도 없이 현장에서 사살을 당하는 등 인간 이하의 행위로 희생된 원혼들을 달래야 하는 유족들의 가슴에 맺힌 한을 70년이 다 된 오랜 세월이 지난 오늘에야 겨우 원혼굿으로 달래드릴 수 있었다.

아울러 유족들은 자유한국당이 2010년 중단된 과거사위의 활동을 반대하고 방해하고 있음을 중시하고 한나라당, 새누리당, 자유한국당으로 이어지는 지난 정권의 세력들에게 과거사위원회활동을 보장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아울러 한국전쟁후민간인피학살자전국유족회, 광복회 등의 유관 단체가 끈질기게 입법투쟁을 벌여 지난 9월 23일 행안위를 통과한 과거사 법안이 법제사법위원회에 상정되자 여상규 위원장의 망나니짓에 행안위 간사들이 자유한국당의 입맛에 맞추어 누더기 합의안을 만들었으나 끝내 의 합의안마저 반대하여 상정도 무산 되고 말았다.

유가족회에서는 이제 자유한국당에게 경고하고 해체하라고 소리치면서 반발하고 나섰고, 오늘 집회에서 원혼굿을 올리면서도 꾸준히 자한당에게 요구와 촉구를 하였며, 해체하라는 구호를 외쳤다.

▲ 김원웅 광복회장의 특별법 최초 발의자로 감회와 재개정을 축구하는 축사
▲ 유가족드르이 가슴에 맺힌 한을 풀어주는 원혼굿 공연

원혼굿이 공연되기 직전에 광복회 김원웅 회장님이 직접 나서셔서

“지난 정권 시절에 ‘과거사법안’을 맨 처음 발의하였던 사람으로 오늘 이와 같은 요구가 다시 일게 된 것이 한 없이 죄송스럽다면서 우리나라는 친일파들이 집권세력이 되면서, 일제에 맞서 싸워 온 민족주의자들을 ‘빨갱이‘로 몰아 핍박하면서 자기들의 정권유지를 위해 수많은 사람들을 학살한 반민족적 세력이었다. 이제 이렇게 핍박당하였던 민족주의 세력들의 억울함을 풀어주고 다시는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게 하는 것이 우리나라의 장래를 위해 반드시 해야 할 일이 아니겠습니까?” 라고 외치면서 유족들의 한을 풀어 주어야 할 국회가 역할을 다해주기를 요구하였다.

이어서 원혼굿의 공연이 있었다. 바닥에 펼쳐진 원한의 포장 위에서 하얀 국화송이들을 들고 간절한 소원을 빌고 슬픔의 마음을 담아서 하늘에 호소하는 손짓으로 마지막에는 땅과 바닥에 모든 것을 바치는 몸짓으로 원혼을 달래주었다.

이어서 각 지방에서 올라온 유가족 대표들의 호소문이랄까 그 동안의 한을 풀어내는 순서가 이어졌다. 온 종일 아니 며칠이 지나더라도 이 한많은 유족들의 슬픈 사연이 끝나지는 않을 것만 같았다.

한 참석자는 내가 겪은 “여순 반란?”이라는 민족의 슬픈 사태를 생각하면서 지난날 당하였던 정보과의 감시를 생각하니 저절로 치가 떨려 왔다.

연좌제 때문에 전국 1등으로 중앙정보부에 합격을 하였던 동생이 신원조회에서 탈락을 하고, 몇날 며칠을 울고 서러워하던 날들도 떠올랐다.

전라도에서 경기도로 전입하여서 근무하고 살면서 겪은 “전라도 빨갱이”라는 프레임에 수없이 울음을 참아야 하였던 지난날들도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

제발 이제라도 저 유족회의 한을 풀어 주어야 한다. 자한당은 독재자의 후예답게 끝까지 물고 늘어지는 세퍼트 같은 잔혹함을 포기하지 않고 있으니 이를 어쩔 거나?

편집 : 김태평 편집위원

김선태 주주통신원  ksuntae@emp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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