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휴가 시작되기 며칠 전부터 아빠의 굴욕은 시작되었다.
“하루만 같이 놀아주라”
“놀아주면 뭐해 줄 건데?”
몇 번의 협상이 오고 간 후에야 겨우 하루를 윤허 받았다. 상전이 아니라 아예 군림하는 자들이다.
큰 아이는 고1 이고(멋진 놈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 멋진아들 이라고 부른다), 작은 아이는 중2 이다(예쁜 마음씨를 가진 놈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에 이쁜아들이라고 부른다).
이 두 녀석과의 황금연휴 데이트는 이렇게 아버지의 비굴함을 밑천으로 어렵게 성사되었다. 장소는 삼청동과 북촌일대. 물론 멋진 아들은 그의 여자친구와의 동행을, 이쁜 아들은 맛있는 점심과 용돈을 반대급부로 요구했다.
마음 같아서는 산에라도 같이 가자고 요구하고 싶었지만, “내가 왜 아빠친구들이랑 놀아야 해?” 라며 당당하게 맞짱 뜨는 아드님의 기세가 거센지라 미리 꼬리를 내렸다. 일년에 몇 차례 정도 반강제적으로 문화기행 또는 가벼운 여행을 하며 공감하고자 노력해 보았으나 여전히 쉽지 않음을 깨닫게 되는 과정이 반복 되었다.
특히나 멋진 아들은 중학교를 다니는 3년 내내 아빠의 애간장을 태웠다. 자잘한 사고들이 계속 이어지는 덕분에 경찰서, 검찰청, 법원을 다니며, 권력기관에 근무하시는 분들과 인사를 하고 지냈다.
세월의 힘인지 무슨 변화의 바람이 불었는지 불분명하지만 고등학교에 진학한 뒤부터 멋진 아들은 질풍노도의 시기를 지혜롭게 빠져나온 것 같다. 공부를 해보겠다며 학원을 등록하고, 공부에는 별 도움 안 될 것 같은 여자친구를 만나더니 서로에게 좋은 영향을 주고 받는 모양이다.
강아지를 좋아하는 이쁜 아들은 삼청동길을 걸으면서도 지나가는 강아지만 보면 족보와 종을 줄줄꿰며 따라 다니고, 똥자(집에서 길르는 반려견의 이름이다)를 데려올걸 그랬다며 계속 아쉬워 한다.
아기자기한 골목길이 이어지고, 맛집으로 소문난 가게 앞에서는 줄을 선 손님들이 또 다른 그림을 만들어 낸다. 어깨를 스쳐가는 여러 국적의 외국어 행렬들이 신선한 충격이었는지 아이들도 호기심이 가득한 모습이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구석구석을 다니며 군것질도 하고, 쇼핑도 하고 주고 받은 대화들이 지난 몇 달치를 합한 것보다 양이 많아 보인다. 항상 아빠 일에 매몰되다보니 아이들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어떤 고민 덩어리를 끌어 안고 있는지 관심도 두지 못했던 걸 반성한다.
이런 흥미로운 데이트를 앞으로 몇 번이나 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행복한 하루를 만들어준 아이들에게 감사한다. 그런데 앞서 걸어가는 이놈 멋진아들! 너무 뜨거워 보여서 아빠는 질투 난다.

편집:김유경 편집위원(newcritic2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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