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살이꽃 피는 가을에

이재(理財)에 능한 자, 쉬이 이재(泥滓)되고 박춘근 객원편집위원l승인2020.09.18l수정2020.09.19 0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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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야흐로 코스모스의 계절이다. 코스모스는 가냘프고 야리야리하게 보이는 풀이다. 그러나 나약하진 않다. 여름 내내 폭염과 폭우와 태풍이 휘몰아쳤지만, 끄떡없이 살아남아 꽃을 피운다. 밟힌 아이도, 부러진 아이도, 먼지를 뒤집어쓴 아이도 꽃을 피운다. 코스모스는 당차고 아름다운 여인의 표상이다. 꽃말은 소녀의 순정, 진심, 순결, 조화 등 꽃색에 따라 다르다.

불면 날아갈 듯 가녀린 몸매 –김진학-
눈물로 무늬진 연분홍 옷고름 –이해인-
청초한 코스모스는 오직 하나인 나의 아가씨 –윤동주-
가을 햇살과 함께 춤을 추고 있는 저 신들린 미친년 –반기룡-
청초한 여인의 갸름한 목덜미를 타고 한 송이 꽃이 된다 –안희선-
…….

그렇다. 코스모스는 바라보는 이의 시심을 북돋우는 가을의 여인이다. 구한말 이후에 들어온 것으로 추정한다. 그래서 고서에는 나오지 않는 귀화식물이다.
 

살살이꽃의 춤사위를 부추기는 건들바람


사람이 다소 건방지게 행동하거나 일이 없어 빈둥거릴 때, 우리는 건들거린다고 한다. 그런데 이맘때 바람이 ‘건들바람’이다. 초가을에 선들선들 부는 시원한 바람이다. ‘건들거린다’는 “바람이 부드럽게 살랑살랑 불다.”는 뜻을 가진 우리말이다. 좀더 과학적으로 정의하면, ‘먼지가 일고 종잇조각이 날리며, 작은 가지가 흔들리는 정도’의 바람이다. 하늘이 유난히 높고 깊다. 오곡이 여물고 갖은 과일이 영그는 계절이다. 이때 부는 바람이라면 내 몸을 맡겨도 좋으리라. 붙임성 많은 본성을 어찌 감추랴. 알랑거리듯이 바람 따라 몸을 내맡긴다. 요리조리 간드러지듯 살살 춤을 춘다. 춤사위가 가히 요정 같다. 이를 보고 우리네 선대에서는 코스모스를 살살이꽃이라고 불렀다.

먼저, 살살이꽃을 그려 보자.
누구나 꽃의 가장자리에 있는 꽃잎을 먼저 떠올리지 않을까? 보통 8장이다. 한 장 한 장이 혀 모양을 닮았다. 설형(舌形) 또는 설상(舌狀)이다. 흰색, 옥색, 노랑, 분홍, 빨강, 선홍, 노랑, 보라, 자주 등 꽃색이 참 다양하다. 색깔뿐인가? 모양도 가지가지다. 그런데 혀모양꽃 말고 또 다른 꽃이 보인다!

▲ 살살이꽃의 구조 : 관상화와 설상화(ⓒ 안단테)

 

혀꽃과 대롱꽃

 

살살이꽃은 가지와 원줄기 끝에 한 송이씩 꽃이 핀다. 자세히 보면 그 ‘한 송이’에는 두 종류의 꽃이 있다. 앞에서 말한 혀모양꽃이 바깥쪽으로 피어 있다. 또 한가운데에는 꽃자루가 없는 작은 대롱 모양 꽃이 무수히 많다. 그러니까 ‘한 송이’가 아니라 하나의 커다란 꽃다발인 셈이다. 이들이 모여서 하나의 머리 모양을 이룬다. 이런 꽃차례를 머리모양꽃, 두상화(頭狀花)라고 한다. 우리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다. 해바라기를 비롯하여 국화, 과꽃, 금잔화, 백일홍, 달리아, 쑥부쟁이, 개망초, 금불초, 구절초, 쑥갓 등이 모두 그렇다. 되풀이하면 두상화는 꽃의 가장자리를 둘러싸고 있는 혀모양꽃(舌狀花 : 설상화)과, 가운데 핀 노란색의 대롱꽃으로 나뉜다.

 

헛꽃과 참꽃

 

혀모양꽃을 차근차근 살펴보자. 우선 꽃잎이 얇고 넓적하다. 또 그 끝이 톱니 모양으로 얕게 갈라져 있다.

여기서 잠시 학창 시절, 생물 시간으로 돌아가 보자. 꽃이란 무엇인가? 꽃은 속씨식물의 생식기관이다. 암술, 수술, 꽃잎, 꽃받침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가운데 생식에 직접 관계하는 요소는 암술과 수술이다. 꽃잎과 꽃받침은 암술과 수술을 보호하거나 보조하는 구실을 한다. 자, 여기까지가 우리가 알고 있는 기본 상식이다. 그런데 아무리 보아도 꽃잎뿐이다. 암술과 수술, 꽃받침이 보이지 않는다. 그러니 이 꽃은 안갖춘꽃이다. 열매를 맺을 수 없는 헛꽃이요, 가짜꽃이다. 참꽃이 아닌 위화(僞花)다. 당연히 불임성(不稔性)이다. 수술과 암술이 모두 퇴화한 무성화(無性花)다. 열매를 맺을 수 없으니 꽃으로서는 볼장 다 본 신세다.

▲ 꽃의 구조(네이버)

 

참을 알아야 거짓이 보인다. 다시 살살이꽃을 보자.
가장자리 혀꽃 말고 꽃의 한가운데 무엇인가 촘촘하게 박혀 있다. 볼품없어 보인다. 거의 눈에 띄지 않을 정도로 자질구레하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대롱 모양을 하고 있다. 그런데 대롱 하나하나 모두 꽃이다. 앞에서 말한 대롱꽃이다. 이를 한자말로 할 때는 대롱 관(管) 자나 대롱 통(筒) 자를 넣어 관상화(冠狀花) 또는 통상화(筒狀花)라고 한다. 꽃마다 5장의 꽃부리가 선명하다. 별 모양이다. 별꽃이다. 혀모양꽃으로 둘러싸인 꽃 속의 꽃이다. 한 꽃에 암술, 수술이 모두 들어 있는 양성화(兩性花)다. 종자를 맺는 참꽃이다.

▲ 짧고 원탁 모양인 화탁 위에 수많은 꽃들이 모여 피는 두상화서에서 가장자리에는 설상화, 가운데에는 통상화가 모여 있다. 통상화를 확대보면 암술머리가 2개로 갈라져 있고 꽃잎이 서로 붙어 있는 통꽃이다. 즉, 꽃부리(화관)를 이루는 꽃잎이 서로 융합하여 각각의 꽃잎이 분리되지 않은 꽃이다. 맨 우측의 C’’’는 살살이꽃과 달리 설상화에 암술머리가 달려 있는데 이는 민들레의 두상화서로 설상화로만 되어 있다. 좌측 : 코스모스 혀꽃과 대롱꽃(ⓒ 허영회) / 우측 : 해바라기 대롱꽃의 구조(ⓒ 송홍선)


살살이꽃의 변신술, 터미네이터종자


헛꽃은 형언하기 어려운 여러 가지 색을 띠기도 한다. 그만큼 사람들의 재주가 하늘을 뚫고 바다를 가른다. 돈이라면 무얼 못하랴, 망설일 게 없다. 돈이 되니까 GMO(Genetically Modified Organism)를 넘어 터미네이터종자까지 생산한다. 신의 영역이 따로 없다.
GMO는 종(種)간의 경계를 넘어 다른 종의 결합을 통해 만들어진다. 즉, 유용한 유전자만을 골라서 다른 생물체에 삽입하여 입맛에 맞는 새로운 품종을 만든다. 그래서 안전성 논란이 끊이지 않는다. 용어마저 통일되어 있지 않아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유전자 재조합 식품’, 농림부는 ‘유전자 변형 농산물’이라고 한다.

이와 달리 잡종 제1세대(F1)는 품종의 교배로 얻어진 종자다. 이는 상대적으로 안전하고 우수한 품종이다. 우리가 먹는 가지, 토마토, 오이, 피망, 배추, 양배추, 옥수수 등은 거의가 잡종화되어 있다. 종자 회사에서 판매하는 종자는 거의 F1 품종이다. 문제는 잡종 종자가 그 우수한 형질을 발휘하는 것은 F1뿐이라는 점이다. 표면적으로는 GM 유전자가 생태계의 야생종으로 옮겨갈 경우를 대비하기 위함이지만 실제로는 새로운 종자를 개발하는 데 드는 막대한 비용을 회수하기 위함이다. 이런 조작술이 터미네이터 기술이다. 터미네이터란 '종결시키는 자'라는 의미다. 그러니까 터미네이터종자란 유전자 조작 기술로 만들어진 종자로 상업적인 목적에서 종자의 발아 능력을 없애버렸으니 종자를 채취해서 파종해도 싹이 트지 않는다. 그래서 해마다 새 종자를 사서 파종할 수밖에 없다. 그러는 사이에 우리의 토종 종자는 사라지고 우리는 해마다 씻값으로 많은 돈을 지불해야 한다. 구분할 수는 없지만 어느 종묘상에서 파는 살살이꽃 씨앗마다 이름이 생소하다. 슈퍼 비키 믹스, 피코티, 씨 쉘스 믹스, 옐로우 가든, 황화 코스모스, 일반 코스모스... 이제부터는 축제장에 가서 예쁜 꽃씨를 받아오려 하지 말자. 아무짝에도 쓸데없는 짓이다. 다시 그 꽃을 보려면 그 씨앗을 구입해야 한다. ‘종자는 못 속인다.’는 말도 이제는 잊혀진 속담이다. 겉모양은 똑같지만 그것은 이미 씨앗이 아니다.

▲ 여러 종류의 살살이꽃. 왼쪽 위부터 시계바늘 방향으로 살굿빛, 오렌지, 화이트, 피리 부는 사나이(Pied Piper), 피코티(Picotee), 핑큿빛, 초콜릿, 적색, 피리 부는 사나이. 대부분 터미네이터종자이다.(ⓒ ㈜팍스넷)

 

살살이꽃은 하지가 지났을 때 피기 시작한다. 낮의 길이가 짧을 때 꽃눈이 분화되어 꽃이 피는 대표적인 단일식물(短日植物)이기 때문이다. 이런 특성을 인위적으로 조작한다. 낮의 길이에 둔감하도록 변형한 것이다. 요즘은 꽃송이가 커다란 여름코스모스, 봄에도 피는 사계코스모스, 키 작은 애기코스모스, 여러해살이 숙근코스모스 등 형질이 다른 살살이꽃이 많다. 살살이꽃은 이미 가을꽃이 아니다.

▲ 사계 코스모스(ⓒ 꽃과 풀데기)와 여름 코스모스(ⓒ 예쁜숲)


인간을 짓이기는 가짜 뉴스

군더더기 없이 설명하고 싶었는데 요령이 부족하다. 괜히 복잡하게 얽히고 말았지만 결코 어지럽지 않다. 이쯤해서 정리하자. 그러니까 화려하게 보이는 혀모양꽃은 열매를 맺지 못하고, 보잘것없게 보이는 대롱꽃이 열매를 맺는다. 사람들은 겉모습이 화려한 헛꽃을 반긴다. 참꽃은 눈에 차지 않는다. 그러나 진객(珍客)은 다르다. 헛꽃을 거들떠보지 않고 대롱꽃으로 직진한다. 그곳에 꿀이 있기 때문이다. 외양을 중시하는 우리는 헛꽃의 꽃색을 다양하게, 모양을 오묘하게 변형시키는 데 주력해 왔다. 이제는 코스모스 꽃잎이 몇 장이냐고 묻는 이도, 8장이라고 답하는 이도 모두 가짜꽃을 보고 하는 말임을 알아야 한다. 질문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다. 진짜 꽃에는 꽃잎이 없다. 무엇이 참이고 무엇이 거짓일까?

포털 사이트에서 ‘가짜 뉴스’를 검색하니 어제와 오늘(9.15.~16.) 이틀 동안 크고 작은 뉴스가 109건 검색된다. 드러나지 않은 사건은 그 얼마이고 이 시각 현재 진행되고 있는 음모는 또? 아래는 눈에 띄는 4건이다.

"코로나 19 확진자 수가 검사 수에 따라 달라지는 데도 검사 건수인 분모에 대한 언급 없이 확진자 수만 발표하고 있다. 필요할 때 검사 건수를 늘려 공포를 조장한다, 정부가 방역을 다른 목적에 이용한다는 의심이 사그라들지 않는다." 국민의힘 윤희숙 의원의 말이다. 이에 대해 권준욱 중앙방역대책본부 부본부장은 "좀 충격입니다. 방역 당국은 과학 그리고 근거, 있는 그대로의 상황을 토대로 치명률을 낮추고 희생을 최소화하느냐만 머릿속에 있지…" (MBC 뉴스데스크, 2020.09.15.)

 

“추미애 아들 변호인은, 한 네티즌이 온라인 커뮤니티 'MLBPARK'에 ‘추미애 아들 변호사 현근택은 이해찬 사위라네요. 어쩐지 잘 몰랐는데 참 왜 현근택을 변호사로 선임했는지 알 것 같다.’며 ‘물러났지만 지금도 민주당 실질적 대표는 이낙연이 아니라 이해찬이라는데 현근택을 쓴 이유가 있네요.’라고 쓴 글을 캡처해 올리기도 했다.” (파이넨셜뉴스 2020.09.15.)

“경찰이 지난달 의료계 집단 파업 당시 '경찰이 파업에 참여한 전공의를 붙잡기 위해 세브란스병원에 급습했다'는 내용의 가짜뉴스 작성 용의자로 몇 명을 추려낸 것으로 확인됐다.”(CBS노컷뉴스, 2020.09.16.)

“더불어민주당 김성환 의원은 9월 15일 조선일보가 국민의힘 주장을 받아 그대로 보도한 ‘최근 5년간 ‘태양광 벌목’ 307만 그루… 81.3%는 문재인 출범 이후 베어 넘겼다‘는 기사가 전형적인 가짜뉴스라고 밝혔다. 김 의원이 산림청 자료를 입수해 분석한 바에 따르면, ’19년까지의 산지 태양광 전용 허가 건수 12,721개 중 75.8%는 이명박, 박근혜 정부 당시에 전용허가를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Break News, 2020.09.16.)

단순한 오보나 소문이 아니다. 지극히 의도적이다. 속지 않으려면 먼저 속여야 한다는 신념으로 일단 내지르고 본다. 버젓이 언론의 탈을 쓰고 등장한다. 그들만의 신문·방송·유튜브를 필두로 포털, 소셜네트워크 서비스(Social Network Service) 등 갖은 수단을 동원한다. 특정 언론과 집단이 미리 짬짜미해서 입맛대로 왜곡하고 짜깁기하고 가공한다. 이를 다시 받아쓰고 옮겨 쓰고 베껴 쓰고 나아가 앵무새처럼 24시간 뇌까리고 퍼뜨린다. 날강도 찜쪄먹는 재주를 가진 공도(公盜)들이다. 등쳐먹는 꾐수는 하늘을 찌르고 거짓의 함성이 온 산하에 누비친다. 트위터·페이스북·인스타그램 등을 타고 삽시간에 나라의 근간을 무너뜨리고 ‘인간’을 짓이겨 버린다.

 

잘생긴 놈 얼굴값 못하고 꼴값을 떤다

 

다시 살살이꽃으로 돌아가자.
작은 살살이꽃 한 송이에서도 진짜와 가짜, 참과 거짓이 난무한다. 별빛은 반딧불로 보이는 걸 서러워하지 않는다고 했다. 대롱꽃은 하찮다고 여기거나 말거나 자기 신세를 탄하지 않는다. 헛꽃을 바라보는 인간의 맹목적 사랑을 부러워하지도 않는다. 말없이 제자리를 지킬 뿐이다. 참꽃은 타인의 눈을 의식하지 않는다. 아니 그럴 처지가 아니다. 한시가 바쁘다고 꽃가루와 꿀을 마련한다. 벌•나비•파리•등애•개미•노린재 차별하지 않고 손님을 맞이하기에 여념이 없다. 가을 내내 가쁜 숨을 몰아쉬며 내년을 준비한다.

예부터 잘생긴 놈은 얼굴값하고 못생긴 놈은 꼴값한다고 했다. 살살이꽃을 보면 말이 바뀌어야 한다. ‘잘생긴 놈 얼굴값 못하고 꼴값까지 가관이네, 뚝배기보다 장맛이라더니 못생긴 놈이 실속 있다.’라고 말이다. 그러고 보니 내가 꽃을 보는 눈이 글렀다. 꽃으로서의 생명은 1도 없는 허깨비를 보고 ‘잘생긴 놈’이라고 했으니…. 겉모습만 보고 반드럽다고 판단한 내가 잘못이다. 돌아가신 할머니가 현신해서 사정없이 지천하신다.

“아니, 이 썩을놈아, 나이는 똥구멍으로 쳐묵었냐? 낼모레 칠순 맞는 놈이 그래 눈을 어따 두고 사냐? 까막눈이 따로 없제, 경사 났네 경사 났어! 이 속창시 없는 놈아, 진짜랑 가짜도 분간 못하냐!”

 

나는 삿된 악령의 포로였다

 

얼떨떨하다. 키워봤자 소용없다고는 하셨다. 경상도 방아코보다 못할 놈이라고 푸념하셨다. 그래도 그렇지 살아 계실 때 그리 호되게 야단을 치신 적은 거의 없다. 거짓이 판을 치는 세상이다. 살아갈수록 참과 거짓의 벽은 모호하다. 나날이 교묘한 세상으로 바뀌고 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얼마나 많은 헛것을 참으로 알고 지냈던가? 아니다. 나 또한 삿된 악령의 포로였음을 고백한다. 무구한 아이들의 영혼을 망가뜨린 사나운 죄인이었다.

통일주체국민회의 대의원이던 육성회장과 가까이하려고 잿밥에만 눈이 가던 시절이다. 선배들은 10월 유신의 당위성을 홍보하느라 가정방문을 했다고 했다. 과외를 해야 부수입이 좋다며 줄곧 6학년만 담임하다가 이제는 과외가 없어지니 저학년만 맡는다고들 했다. 혼분식을 장려한답시고 날마다 도시락을 검사하고 눈 밖에 난 아이들은 여지없이 화장실 청소나 반성문을 쓰게 했다. 건뜻하면 원산폭격을 시켰다. 그러다가 통일벼가 나오자 선생은 모름지기 선봉에서 쌀소비를 촉진한다고 월급봉투 안에 정부미 교환권이 들어 있었다. 그런데 밥맛 없다고 집어던졌다. 같잖은 주제에 맛이 있네 없네 하면서 몽니를 부린 거다. ‘자율적 협찬금’이라는 육성회비를 비롯하여 각종 잡종금을 받아내기 위해 아이들을 닦달하고... 하다못해 졸업식 때 송사 답사 적임자 선발한다고 요란하게 공지하고, 점지해 둔 아이 한 명을 위해 들러리로 선 아이들의 눈 눈 눈... 얼마 남지 않는 날이다. 앞으로나마 거짓을 참으로 섬겼던 지난날을 뉘우치면서 살아가라는 할머니의 준엄한 경구로 받아들인다.

한 가지 보탠다.
여러 번 되풀이하지만 혀꽃은 헛꽃이다. 그런데 혀꽃이 이렇게 자신을 가꾸는 데는 이유가 있다. 곤충을 끌어들이기 위한 유인책이다. 어차피 주변의 꽃들과 경쟁해야 한다. 일단 곤충의 눈에 띄어야 한다. 꿀을 잘 찾아오도록 화려하게 치장한다. 이를 벌안내(honey guide)라고 한다. 비록 열매맺지 못하는 헛꽃일망정 참꽃의 결실을 위해 지금 이 순간 온몸으로 춤을 추고 있다. 어찌 살살이꽃뿐이랴. 모든 식생은 행동거지 하나 허투루 하는 법이 없다. 하물며 인간이…

 

부처는 돌아앉고 예수는 외면하고

 

낮에는 글쟁이 말쟁이 사진쟁이 대동하고 꼴불견일세. 염주 걸고 목탁 치고 합장하는 데 불쑥 드밀고, 십자 걸고 성경 끼고 성호 긋는 데 기웃거리다가, 여의도 광화문 서초동 세종시 들락거리랴, 밤에는 효자동 실실 넘보면서 남의 밑살 암니옴니 킁킁대니 몸뚱아리 열 개라도 못 당하고 말고. 아하, 이제 알았다. 한 놈이 왜 9명의 보좌진을 두고도 모자라 수십, 수백의 충복을 데리고 다니는지….

때깔 따라 헛꽃만 보는 그대! 엄동설한 허허벌판에 서서 열매 맺지 못만 회한에 젖으리라. 돈만 있으면 귀신도 부릴 수 있는 세상이려니, 탐(貪)•진(嗔)•치(癡)의 삼독(三毒)에 빠진 자 돌밭에 누워 눈감지 못하고, 권력에 취한 자 가시밭길 밟으며 북망산 맴돌지니, 부처를 믿는 자 그 고행(苦行)을 좇고 예수를 믿는 자 그 말씀에 순종하라.

삿된 자들이여,
이젠 귀신발도 안 듣나니
오매불망 방자질을 당장 멈추라.
응사는 참매 풀고 사냥꾼은 개를 풀어
저들의 겉더께 속더께 할 것 없이 싹싹 털고 박박 문질러 까발리고
살붙이 일가붙이 줄줄이 엮어 미주알고주알 밑두리콧두리 샅샅이 파헤치게 하라.

아서라,
이재(理財)에 능한 자, 쉬이 이재(泥滓)되리니…….
니가 믿는 부처가 먼저 돌아앉고말고
니가 좇는 예수가 애써 외면하고말고.

▲ 3년 전, 선자령 가는 길, 성황당 근처에서 본 아이다. 무료할 때마다 말을 걸지만 넌지시 웃고 있을 뿐, 예나 지금이나 가타부타 말이 없다. 특별히 오늘은 선시를 들려준다. 경허스님의 열반송이란다. 心月孤圓 光呑萬像(심경구원 광탄만상) 光境俱忘 復是何物(심결구망 부시하물) 마음달이 외로이 둥그니, 빛이 만상을 삼켰도다. 빛과 경계를 함께 잊으니, 다시 이것이 무슨 물건인고.
박춘근 객원편집위원  keun728@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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