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에서 살아오면서 어릴 때 고국에서 느꼈던 옛 정취를 그리워했다. 일시 귀국할 때마다 두리번거리며 그 냄새를 찾아온 것은 옛날얘기가 아니다. 지금도 찾고 있으니까. 그동안 한국은 너무도 많이 변해버려 56년 전의 옛 모습들은 다분 자취를 감춰버렸다, 전통시장이 어디에 있는 것을 알게 되면 멀어도 찾아 간다. 하나로마트에서 파는 상품들같이 포장이 안 돼 있는 대신에 가격이 싸고, 자기 물건을 팔고 있는 사람들과 얘기 나누며 덤 놔주는 것을 받는 맛은 생생하고 좋다.
피난 시절에 산속에서 한동안 생활 했던 것을 기억하며 전남 영암 월출산 부근에 집을 마련하기도 한 나는 최근에 누구를 마음으로 만났다. 그 사람은 이 세상을 떠나가고 없지만 책과 영상물을 통해 그분의 영혼과 말씀을 만났다. 아래는 그가 쓴 책 속에 나오는 글귀이다.
“수연! 그 이름처럼 그는 자기 둘레를 항상 맑게 씻어 주었다. '평상심이 도(道)'임을 행동으로 보였다. 그가 성내는 일을 한 번도 본적이 없다. 그는 한마디 말로해서 자비의 화신이었다. 구도의 길에서 '단지 안다는 것'은 '실제의 행함'에 비할 때 얼마나 보잘 것 없는 것인가? 사람이 타인에게 영향을 끼치는 것은 지식이나 말에 의해서가 아님을 그는 깨우쳐 주었다. 맑은 시선과 조용한 미소와 따뜻한 손길과, 그리고 말이 없는 행동에 의해서 혼과 혼이 마주치는 것임을 몸소 보여주었다.”
법정스님!
법정스님에 대해서 알게 되면서 내 마음 속에 숨이 트였다. 많은 한국 사람들이 사랑하고 존경하는 분이 내 마음 속에도 깊은 울림을 주고 있다는 사실은 나에게 참 기쁜 일이다. 내가 너무 변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한 지인이 법정스님의 책 ‘무소유’를 건네주어서 살펴보니, 초판이 1976년에 나왔는데 그 때 나는 만학도로 토론토대학을 졸업하고 첫아이를 키우고 있었다. 인터넷은 물론이고 스마트폰이나 유튜브도 내 삶속에 없을 때였기 때문에 한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로부터 완전히 차단된 상태였다.
법정스님에 대해 좀 더 알고자 길상사를 방문했다. 전철 4호선을 타고 한성대 입구에서 내려 6번 출구로 나가 02번 마을버스로 조금만 가면 적당히 소박하고 적당히 웅장한 절이 나타난다. 그 안에는 졸졸 흐르는 시내 물도 있다. 많은 스님들이 와서 묵으면서 공부할 수 있는 공간이 여기저기에 보인다. 나도 그들 사이에서 수행하고 있는 모습이 상상된다.
시주 ‘길상화 보살’의 공덕비 앞에 서서 그분의 영혼을 느껴보고, 법정 스님과 두 분의 합작으로 이루어진 무소유 도량의 분위기를 가슴에 담았다. 산의 정기를 담고 있는 도인 법정 스님의 책 ‘무소유’를 읽고 감동한 여성 김영한이 파란만장한 인생을 거치며 이루어 놓은 막대한 재산. 성북구에 잘 개발된 7천여 평의 대지와 40여동의 건축물을 기부하면서 만들어졌다는 길상사. 숲 냄새, 사람 냄새 풍기는 두 분과 더불어 김영한의 이루지 못한 사랑 백석 시인의 삶과 숨결은 잘 삭은 식혜와 같은 정감을 불러일으킨다. 세상을 맑고 향기롭게 하는 한국의 최고의 영적 유산이다.
생명모성 연구소 김반아
~편집 : 허익배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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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도 자주 보고 싶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