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지 못할 날이다.

몹쓸 놈을 만났다. 은평욘세병원. ‘유방암 판정 확진’ 통보. 건강검진에 포함된 MRI와 조직검사를 한 결과 유방암이 3기를 넘어 가슴뼈로까지 퍼졌다는 판정. 다음날 은평구청에서 연락이 왔다. 은평구 암환자로 등록되어 나와 내 남편과 아이들 심리안정치료와 도움말을 줄 1:1가정주치의를 배정하는데, 가까운 병원이나 평소 가족들을 치료해왔던 의사가 있다면 알려달란다.

구청 보건소에서는 내가 살아온 동선을 따라 암을 일으킬 만한 요인이 있는지 모두조사에 들어간다는 통보서도 함께 보내왔다. 식품의약품안전처에서는 지난 5년 동안 내가 먹고 마신 음식물 구입목록을 조사하여 GMO가 섞인 식품이 있는지, 불량음식이 있는지 조사한다며 ‘카드사용내역조회’에 동의하냐고 물어왔다.

 

2차로 검사 받은 서울대병원에서는 담당 의사를 정하고 알려줬다.

유방암에 대한 생존율과 내 유방암이 가진 특성을 설명했다. 치료방법으로 세 가지를 제시했다. 서울대병원 자체 치료방법을 알려주고 대체의학 설명도 함께 곁들였다. 환자한테 ‘꼭 낫겠다.’는 의지를 강화시키기 위한「심리안정 프로그램+음악치료+미술치료」도 의료보험공단에서 제공한단다.

전산화단층촬영(CT)과 뼈스캔 그리고 혈액검사 부작용과 부작용 처치방법을 설명해주고, 유방암에 대한 모든 치료용어를 쉬운 말로 풀이한 책을 주었다. 유방암이 가족력으로 이어질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하여 내 딸에 대한 식생활과 습관을 조사하고 유방암 예비 진단 날짜를 잡아주었다. 여성가족부에서 필요한 모든 비용을 부담한다고 했다.

 

집에 치료용 AI로봇 한 대가 배정되었다.

날마다 내 행동과 먹은 음식을 적어 스캔․보관하여 병원으로 보낸다. 내가 어지럽거나, 밥맛이 없거나, 토하거나, 하루에 1만 보 이상 걷지 않거나, 침대에서 나오지 않거나, 핸드폰으로 전화가 한 통도 오지 않거나, 냉장고가 비웠거나, 과일이 없거나, 집안 공기가 좋지 않으면 내 가족과 보건소 병원으로 바로바로 알려준다. 가족없이 혼자 병원 가는 날은 동행치료사 한 명이 함께 가서 절차를 밟아주고 같이 기다려 준다. 병원 오가는 교통비도 병원 예약된 전날 통장으로 입금해준다.

 

집에 은평구 봉산 숲 해설사가 출근한다.

보호자가 자리를 비울 때 숲 해설사들이 걷기운동에 동행한다. 함께 걸으면서 궁금한 풀과 나무도 알려주고, 걷기 좋은 산길도 일러준단다. 자연치유법이다. 미세먼지나 큰비 무더위 소나기눈이 내릴 때는 안전하게 숲길을 걸을 수 있도록 이끌어주는 일도 한다. 병원에 홀로 가기 힘들 때는 함께 가서 이것저것 챙겨주는 일도 맡아준다.

유방암 환자에 좋은 머위, 강황, 들깨는 농림축산식품부 직거래 누리집에 환자번호를 등록하면 한 달에 한 번 집으로 보내준다. 집으로 보내오는 모든 서류에는 다음과 같은 문구가 적혀 있어.

환자 건강정보와 유전자정보를 노출하지 않으며, 어떠한 연구 자료로도 제공하지 않습니다. 환자와 그 가족들은 치료를 빌미로 ‘개인정보제공동의서’ 서명을 요구하는 모든 서류를 거부할 수 있으며, 서명 거부 때문에 치료에 불이익을 받는 어떠한 일도 없음을 알려드립니다. - 보건복지부장관 -

 

"여보, 일어나. 병원 가야지."

"오늘 어지럽고 속 메스꺼운데 AI로봇이 체크한 자료만 의사샘한테 보내자."

"얼씨구~웬 AI...? 잠깨라니까! 병원 예약된 날이야. 또 2030년 그 나라 이야기야?"

 

암판정 뒤 잠을 깊게 못 들어 걱정이다. 날마다 개꿈만 꾼다.

 

편집 : 양성숙 객원편집위원

김시열 주주통신원  abukung@hanmail.net

한겨레신문 주주 되기
한겨레:온 필진 되기
한겨레:온에 기사 올리는 요령

저작권자 © 한겨레:온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