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회] 메르스 혼란, 근원적 진단: 주객이 전도된 의료보장 제도

[편집자 주] 지난 봄 '메르스' 공포가 전국을 덮었을 때 우리 보건당국은 우왕좌왕 어찌할 바를 몰랐다. 수많은 문제점이 드러났지만 어쩌면 아직도 수면위로 안 올라왔을뿐 크고작은 허점이 있을 것이다. 메르스 사태를 지켜본 이광찬 주주의 소회는 남다르다. 그는 1967년 보사부 사회보장심의위원회 연구위원을 시작으로 제3차~6차 국가경제개발5개년계획 사회보장, 복지, 보건 분야 계획위원, 한국사회복지정책학회장(1997), 의료보험통합추진기획단 위원(1998)을 지냈다. 펴낸 책으로 <국민건강보장쟁취사>(2009)가 있다.

그는 "그동안 많은 비판, 분석, 처방들이 분분했고, 의료 민영화와 의료권력 문제·공공의료 강화·일차의료 등등 올바른 지적들도 많았다. 그러나 이런 것이 또 일과성 일진광풍으로 수그러드나? 여기서 통절한 반추와 근원적 해부 및 단호한 메스가 있어야겠다."고 강조한다. 그가 한겨레:온에 보내온 글을 소개한다. 글의 내용이 전문적이고 용어가 낯선 것도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의료보장제도의 틀을 만들고 다듬어오는데에 평생을 바친 그의 혜안을 주주님들과 공유하고 싶어서 여기에 소개한다. 연재글은 모두 다섯 차례에 걸쳐 소개한다. 

 

[제1회] 메르스 혼란, 근원적 진단: 주객이 전도된 의료보장 제도

글레저(Glaser, W.A.)의 지적대로 모든 나라의 보건의료는 상업에서가 아니라 종교에서 발전해 온 것이며, 그러므로 의료제도는 사적인 시장경제에서의 사리 추구로는 그 목적을 달성할 수 없다. 전문의료인들의 보건의료는 인도주의적인 사회적 서비스인 것이며 수입의 극대화 수단이 되어서는 안 된다. 예를들어 스웨덴의 의사 소득은 대략 근로자 평균소득의 3배 이하 정도다. 

이를 위해 공적 시스템인 국가의 의료보장제도 확립이 요구된다. 이에 따른 우리의 강제가입제 피보험자들을 위한 보건의료서비스는 현재와 같이 비규제적 자유시장(the unregulated free market)에 내맡겨서는 안 된다. 그 이유는 그러한 시장이 기능할 수 있는 두 가지 불가결한 요소가 없기 때문이다. 그 첫째 요소는 의료소비자들은 자기들이 어떤 의료서비스를 구매하고 싶은지를 알지 못하고, 둘째는 마땅히 필요한 의료의 구매 인가 기능과 공급기능의 분리가 안 되어 있다. 이상의 양 기능을 의사들이 다 하기 때문이다.

더욱이 거의 사적 의료부문인 병·의원에 의존하는 건강보험도 최근 사회권으로서의 건강·의료보장권보다는 의료민영화·영리화라는 더욱 자유시장화로 근간을 뿌리채 흔들고 있다. 그래서 공적 의료보험이 사보험(private insurance)의 ‘대상(代償)’원칙(principles of 'quid pro quo')으로부터 크게 벗어날 수 없다. 전국민적 연대책임에 의한 보편적인 균등 급여와 국민통합이 불가능해진다.

▲ 한겨레 자료사진: 지난 2일 오후 서울 중구 봉래동 서울역광장에 모인 보건의료노조원들이 ‘2015 보건의료노조 총력투쟁 결의대회’를 열고 의료민영화 저지, 노동시장 구조 개악 반대와 공공의료 강화 등을 요구하고 있다. 이종근 기자 root2@hani.co.kr

해방 후 의료의 패러다임은 독일의 의학 및 의료를 수용한 일제의 식민의료를 청산하지 못한 채 미국의 선교활동, 군정 및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미국식 의료가 지배하였다. 이것은 임상적 질병치료 위주의 전문의 왕국을 구축하는 결정적 토대가 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정부 수립 후 국가의 책무인 국민의 공적인 의료보장을 방기한 상태에서 근대적 의료는 사적인 시장에 내맡겨져 일부 부유층을 제외하고는 접근할 수 없거나 혹 죽을 때 마지막으로 생활의존 가산을 다 털어서 들르는 최후의 ‘터미널’이었다.

헌법 상 규정뿐, 사실상 의료보장권과 의료의 공공적 생산·서비스기반은 전무한 상태에서 일반국민의 보건의료는 사적 의료시장에만 내맡겨져 개인적 책임에만 일임되어 왔다. 그 후 약육강식적 조합방식 의료보험을 거쳐 최근 힘겹게 통합적 전국민건강보험체제를 갖췄으나 보건복지부 관장 하에 ‘건보공단’이 주된 책임을 지고 일관성 있고 체계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유기적 체제를 확립하지 못했다. 현재 보건의료분야의 기획과 집행, 책임과 권한이 여러 부처에 분산되어 있어 일관성 있고 유기적인 협조가 안 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세계 유례 없이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을 보험자(공단)에서 분리·독립시켜 고양이에게 생선가게를 맡긴 꼴이 되었다. 의료라는 상품은 도덕성과 공익성뿐만 아니라 일반상품과 근본적으로 달라서 수요가 공급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공급이 수요를 결정한다. 공급자인 의사가 소비의 모든 것을 결정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보험자(공단)는 절대로 ‘소극적인 소비자’가 되어서는 안 되고 ‘현명하고 적극적인 구매자(positive purchaser)'가 되어야 한다.

사적 의료서비스 체제에서 병원들이 의료의 질에 대한 공익적 평가를 받는 일은 드물다. 이것은 국민건강보장이란 하나의 유기적인 공적 시스템의 미확립 하에 불공평, 비용 과다 낭비, 보건의료 우선순위에 대응 불능 등을 야기한다. 그것도 사후 치료(특히 급성질병 치료) 위주의 값비싼 전문의 중심 최신·최고급 첨단기술 의료의 개념을 둘러싼 천민자본주의적 시장력의 각축장화 체제다. 병원의료시장에서의 경쟁은 병원들의 남용은 물론 불필요한 수술, 과다한 중복 진단검사, 과도한 처방과 기타 제반 질적 열등화를 초래한다. 이것은 의료공급자와 의료소비자 간에 다름이 없고 상호 불신이 심각하며 ‘좋은 의료’라는 개념과 인식 자체가 잘못 왜곡 형성되어 있다. 즉, 우리의 의료사적 맥락에서 ‘좋은 의료’는 무조건 대형병원 전문의에 의한 값비싼 최신·최첨단 기술 의료서비스라는 통념을 갖게 되었다.

'행위별수가제'라는 유인체제 하에 이러한 ‘전문적’ 의료메스에 의한 집중적 시술 및 의약품의 과·남·오용으로 많은 환자를 초단시간에 기계적 진료를 하고 진료비 과다·허위청구까지 하면서 의료인들은 수입증대에 열을 올리고, 환자를 의학적 실험연구대상으로 삼기까지 한다. 환자들에게 시간과 정성을 들여서 예방과 건강을 중시하는 인술을 베풀 여유도 유인도 없고 서비스의 엄격한 통제도 없기 때문이다. 환자들은 이에 불신이 심화되어 특히 새로운 '전문의'를 찾아 헤매고 한 번 진료를 받기위해 오히려 질병을 악화시키거나 합병증·병발증을 유발시키기도 한다.

이런 상황에서 폭증할 수밖에 없는 의료비의 재정조달은 건강보험제도가 책임지도록 강요당하고 있다. 이것은 주객이 전도된 것이다. 국가가 의료보장의 책임을 지고 의료의 생산과 분배를 공적으로 관리하여 바람직한 의료서비스의 최적 효율성을 확보하여야 하나, 오히려 의료시장이 왜곡되어 의료보장제도 위에 군림하니 이 제도는 급증하는 의료비의 재정조달 책임만 강요당하는 수단으로 전락했다. 

환자와 의사 사이의 의술 양식이 사적 자본의 논리를 반영하고 있다. 이종찬 교수의 분석처럼 대학병원과 종교재단 병원, 재벌들 설립의 대형병원들은 아무 규제도 없이 막강한 의술 권력을 행사하는 ‘왕국’이다. 이런 맥락에서 1차 의료 담당의사와 전문의가 기능적인 분업관계가 아니라 수직적인 신분관계로 받아들여진다. 의사들은 의술과정에 환자를 파트너로서 동참시켜야 하나 전문의들은 그들을 자기 몸에 대한 주체로 참여시키기는커녕 자신들의 임상적 시선의 객체로 삼아 소외시킨다. 이와 같이 건강증진보다는 질병치료를 지향하는 의술을 자본화하는 시장논리, 일상생활을 의료화하여 몸을 상품화된 객체로 전락시키고 있는 의료권력이 서로 작용하여 한국사회에서 국민건강보장제도의 목적 달성이 불가능한 근본적 토대를 이루고 있다.

국민건강보장에 중추적인 1차 의료 담당의사의 비율은 6%에 불과한데, 값비싼 전문의는 90여%에 달한다. 그것도 소수 대형병원들에 '블랙홀화'가 강화되고 있다. 의료자원이 모든 국민의 건강을 위한 분배가 아니라 대자본 권력에 집중되는 것이다.게다가 '의료기술', '의료산업'이란 이름으로 돈벌이나 및 업으로 부추겨지면서 의료에 대해 완전자유경쟁을 유도하고 건강보험 역시 사적인 민영보험에서도 일부 분담하게 하자는 주장까지 나오는 실정이다. (다음회에 계속)

편집: 이동구 에디터

이광찬 주주통신원  nonun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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