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에 내리는 비는 안 반갑다. 갈 길은 먼데 추적거리는 빗물이 걸음을 더디게 한다. 지하철 첫차(주안역발 05:12)를 타기는 난생 처음이다. 잠 보충을 하다 시청역에 내리니 06:20. 서두름이 지나쳤는가. 집합시간은 7시다. 진동이 느껴진다. 박혜정님이다. 이미 도착해 대한문 앞이란다. 군산행 전세버스는 7시나 돼서야 나타났다.

한겨레:온은 웹 주주매거진이다. 주주통신원이 매개자가 되어 한겨레와 주주 간 소통을 위해 온라인으로 기사를 송·출고한다. 신속하고 편리하지만, 오프라인의 끈끈함이 아쉽다. ‘2015 한겨레 주주통신원 워크숍 및 총회’는 그 간의 성긂을 메울 수 있을까. 특히 이번 걸음에서는 한겨레주주통신원회(이하 한주회) 운영규정과 전국운영위원장을 아퀴지어야 한다.

 

서울광장을 뒤로 하고

출발 전, 차 안 여기저기서 안타깝다는 소리가 들렸다. ‘민중총궐기 대회’가 열리는 현장에 참여하지 못하는 아쉬움이었다. 한겨레주주이기에 가능한 ‘초록은 동색’의 한숨들이다. 일부러 경복궁역에서 내려 걸어오느라 땀범벅이 된 오성근님이 폰으로 찍은 역사 안 출구 원천봉쇄 사진을 보여주었다.

▲ 경복궁역 출구 폐쇄
▲ 경복궁역 출구 폐쇄 안내문

토요일과 빗길, 두 악재가 겹쳐 더딘 운행으로 ‘군산YMCA청소년수련관’을 향했다. 달리는 차 안에서 의례적으로 시작된 인사말 나누기는 개성 있는 언변들이 통통 튀자 화기애애함으로 지펴졌다. 입을 열면 본래면목이 드러나는 현상들이 계속 이어졌다. 다양한 맛보기가 쌓이며 열기가 더해졌다.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차익환 한겨레 디지털이미지부장과 인사를 나누었다. 그는 28년 이상 한겨레에 머물 수 있게 해준 주주들에게 감사하다는 난데없는 겸손함으로 감동을 주었다. 마흔 넘은 한겨레맨들의 얼굴에서 욕심이나 찌푸림이 걸러져 있는 게 공통점인 이유를 얼핏 본 듯했다.

 

적산가옥과 철길을 품어 신선한 군산

드디어 ‘2015 주주통신원 워크숍 및 총회’가 열렸다. 이동구 한겨레 커뮤니케이션팀장이 1년여의 주주통신원 활동 현황을 보고하고 평가했다. 덩달아 나도 주주통신원과 편집위원으로서 좌충우돌했던 장면들을 파노라마로 떠올렸다. 여러 측면에서 점진적으로 발전한 것이 분명했다.

뒤를 이어 ‘기사쓰기 및 주주통신원으로 활동 시 알아야 할 사항’에 관한 내 강의가 있었다. 다소 쑥스럽지만 경험한 바를 예로 든 전략이 주효해서인지 부드럽게 진행되었다. 두 질문도 현장 참여자의 답변으로 깔끔하게 해결되었다. 끝난 후 명강의라 평해준 얼굴들이 있어 비로소 어깨를 펼 수 있었다.

한주회(한겨레주주통신원회)는 아무 잡음 없이 매끄럽게 정착하였다. 첫머리에서 한주회의 운영규정 설명회가 있었고, 이어서 전국운영위원장과 부위원장 및 두 명의 감사가 선출되었다. 온활추(한겨레온활성화추진팀)를 이끌며 열성적으로 활동한 윤명선 주주통신원이 위원장 후보 추천을 받고도 이를 사양하며 수석부위원장직을 수락하는 모습이 흐뭇했다.

▲ 군산 일본식 가옥과 철길 흔적

비로 인한 고속도로 교통 체증으로 늦은 회의, 이어서 점심을 먹고 오후 문화답사 일정의 첫 방문지인 군산 근대역사박물관으로 향했다. 적산가옥들과 철길이 드러난 거리 풍경이 예스러우면서도 신선했다. 다른 지방 도시들이 특색 없이 네모난 콘크리트 건물들로 구성되어 하나같은 탓이다. 일제치하와 채만식의 탁류를 상기시키는 군산항의 면모를 재현한 군산박물관은 관람객들로 붐볐다.

 

안도현의 시, 그리고 중얼거림

시인 안도현은 요즘 시를 쓰지 않는다. 시 비슷한 생각이 나면, 그 떠오르는 중얼거림을 “사회의 작은 언론”인 트위터를 통해 세상에 전달한다. 그에게 시적인 것은 “남들과 달리 생각하고, 남들과 달리 표현하는 것”이다.

안 시인은 백석의 시를 좋아한다. 백석은 월북한 탓에 국정교과서라면 많이 실리지 못했을 시인이다. 안 시인은 친일을 한 미당 같은 이의 작품도 국어교과서에 실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물론 친일 행적은 밝혀야 한다면서.

‘안도현 시의 밤 토크쇼’는 주주통신원 안지애님의 사회로 진행되었다. 그녀의 여섯 살 아들 영진이는 어느 결에 무대 위 의자에 올라 천진하게 응석을 부렸다. 첫무대라 떨리고 경황이 없을 터인데도, 아들과 눈을 마주하며 조용히 달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안온한 아나운서의 탄생이었다.

절필했다는 보도기사는 한겨레 최재봉 기자의 오보라고 안 시인은 지적했다. 그는 사회자가 제시한 단어에 즉답함으로써 시인의 감성을 입증하기도 했다. 그 중 하나다. “가을이란?” “길가 풀줄기처럼 더 이상 뻗지 않는 것!”

TV조선의 인터뷰 영상, 즉석 사인회, 객석에서의 질문 등이 이어지면서 “오래된 책표지 같은 군산”의 밤은 깊어갔다.

 

이연실의 <목로주점>과 <고갯길>

그냥 잠자기가 아까워 우루루 무작정 나섰다. 비탈진 밤길을 어슬렁거리다가 문을 연 <고갯길>로 들어섰다. 낮은 조도와 푸짐한 안주거리, 그리고 마음을 연 사람들의 추억을 헤집은 회상에 취해 이연실이 부르는 <목로주점>에 앉아 있는 듯했다.

▲ <고갯길>에서 이야기꽃을 피우다

멋드러진 친구 내 오랜 친구야// 언제라도 그 곳에서 껄껄껄 웃던// 멋드러진 친구 내 오랜 친구야// 언제라도 그 곳으로 찾아오라던// 이왕이면 더 큰 잔에 술을 따르고// 이왕이면 마주 앉아 마시자 그랬지// 그래 그렇게 마주 앉아서// 그래 그렇게 부딪쳐 보자// 가장 멋진 목소리로 기원하려마// 가장 멋진 웃음으로 화답해 줄게// 오늘도 목로주점 흙바람 벽엔// 삼십 촉 백열등이 그네를 탄다

그네를 타다 나는 스르르 잠이 들었다. 다음 날 아침 월명호수 산책길에서 정신님이 깜놀했다고 털어놨다. 어찌 그렇게 앉아서 표정 없이 잘 수 있느냐고. 내공이 대단하다고. 그렇게 오랜 지하철 생활자로 익힌 잠 보충법을 들켰다.

 

고은의 <만인보>처럼

이튿날 동선은 경쾌했다. 만추를 만끽하며 월명산, 전주 태조거리, 전동성당, 경기전 어진박물관 등을 거닐며 기웃거렸다. 길게 늘어선 손님들을 맞는 왱이집 콩나물국밥은 평범한 형상과 달리 경이로운 맛이었다. 알콜 1.5% 모주는 술이 싫은 내 입으로 술술 넘어갔다. 수정과 사촌이었다.

서울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 마이크는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넘어갔다. 다들 가만히 앉아 있었던 게 신기할 만큼 말빨과 노래 솜씨는 다채로웠다. 그런 분위기를 대변하듯 옆에 앉은 최호진님 왈, “정이 많이 들었어.” 그래서 우린 만나야 한다.

고은의 <만인보>가 떠올랐다. 그만큼 얼굴 하나하나에 이야기가 달렸다. 기회가 되면 한겨레 주주통신원 만인보를 꾸려야겠다. 주주와 주주통신원에 관한 절창이 터질 때, 한겨레:온, 한주회, 더 나아가 한겨레의 환한 행진은 지속가능할 것이다.

편집: 이동구 에디터

김유경 편집위원  newcritic2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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