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화들'의 청춘연가

형님, 한가위 오붓하게 보내셨어요?
주일 설교 준비로 더 바쁘시겠군요. 형님도 참, 유튜브를 통해 연합 온라인 예배를 올린다고 하셨지요? 잘하셨습니다. 비록 집은 작아도 세상과 지역사회의 아픔을 함께하는 큰 뜻이야말로, 우러러 하늘에도 부끄럽지 않고 굽어 땅에도 부끄럽지 않은 일입니다.

저야 뭐, 늘 여전하지요. 옆 동으로 이사한 딸내외가 수시로 드나들고 그때마다 손주 보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 글쎄 엄마 소리도 못하는 하니가 뭘 안다고 등 뒤에서 숨바꼭질하고, 두 발로 섰다고 자랑스레 쳐다보며 만세를 부르다가 엉덩방아를 찧는 짓에 그만 넋을 놓고 웃습니다. 미수(美壽)에 이르도록 그런 재미 모르고 살았으니 헛헛하기도 하지만, 따지고 보면 그게 어딥니까? 때마침 정부의 방역 지침 강화로, 학교의 교정가꾸기지원사업도 중단된 지 오래됐습니다. 핑계가 좋아 사돈집 간다고 코로나 19를 빙자해서 집에서 지내다 보니 묵은 때 벗기면서 잘 지냅니다.

접때 보내 주신 청춘연가!
오늘에야 겨우 일독을 마쳤습니다. 아시다시피 표지를 열면 작가를 소개하는 란에 아래와 같이 작가의 말이 먼저 나옵니다.

나는 프로필이 없다. 나의 몸 절반이 아직 북에 묶여 있기 때문이다. 실명은 물론 나의 과거 행적을 밝힐 수 없으며 숨어서 간신히 손만 내밀고 세상에 이 소설을 보낸다.”

일찍이 어느 작가가 소설을 내면서 이렇게 자기를 숨긴 적이 있는지, 아니 그럴 필요성이 있는지 의아합니다. ‘아직 북에 묶여 있는 몸 절반의 실체도 궁금합니다. ‘숨어서 간신히 손만 내밀고라는 말속에서 작가의 비장한 속내가 읽힙니다. “세상에 이 소설을 보낸다란 말속에는 또 어떤 함의가 숨어 있을까요? 그가 말한 소설이 단순한 이야기가 아님은 분명합니다.

소설은 곧 허구성에 바탕을 둔 서사체잖아요? 작가의 상상력에 따라 사실처럼 꾸며 쓴 허구일 텐데 그렇다면 이 소설은 사회 개혁을 표방하고 있는 고발문학이요, 분단이 가져온 역사의 산물로 보아야 할 것입니다. 형님이 이 책을 보내 준 내면을 어렴풋이 헤아리면서, 제 우졸한 판단으로는 어쩌면 이 소설은 가공한 이야기가 아니라 일종의 수기나 논픽션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앞섭니다. 그렇다고 문학의 순수성을 의심하지는 않습니다. 당연히 작가가 숨기고자 하는 어떤 특수한 처지는 제 관심 밖입니다.

 

이미 익히 알고 계시겠지만 주인공, 선화의 궤적을 간략합니다.
청진사범대학의 혁명력사·당정책의 강좌장인 아버지 정학민, 말끝마다 너의 아버지만큼만 되어라.”하고 되뇌는 어머니 강옥련, 그리고 중학교 교사인 외동딸 정선화는 누가 보아도 북한의 엘리트층입니다. 어느 날, 보름 간격으로 주던 배급이 끊기면서부터 북녘은 온통 아비규환이 되고 맙니다. 이른바 고난의 행군이 시작된 것입니다. 외출복은 사철 한복으로 만족하고, 채소죽 한 그릇도 달게 먹습니다. 어쩌다가 도시락에 달걀 한 알 보이면 그날은 온종일 기분이 좋았다던 선화입니다. 텔레비전을 팔아 밑돈을 마련해서 어머니가 채소 장사를 시작하지만 동업자의 농간에 다 털리고, 급기야 두 칸짜리 집을 팔아 단칸방으로 이사합니다. 선화가 나서서 채소팔이를 하지만 아버지는 영양실조로 쓰러지면서 그나마 대학교에서 준 옥수수쌀 한 자루와 입쌀 10kg으로 연명하는데 결국 어머니마저 결핵으로 쓰러지고 맙니다. 딱히 마땅한 일을 찾지 못한 선화는 중국으로 팔려 가는데 이는 스스로, 인신매매꾼의 유혹을 이기지 못한 채 앞을 보지 않고 무조건 내디딘 걸음이었습니다.

형님, 아무리 픽션이라지만 지나치게 가혹하고 처절합니다. 어제의 이웃이 인육을 먹어도 까딱없이 흘러가는 세상이니 눈물마저 말라붙은 건조한 사람들뿐, 자식 굶기기 전에 내다 버리는 아비어미가 다반사요, 어제의 제자가 꽃제비되어 선생을 인육시장에 내다 팔지만 누구 하나 눈여겨 보질 않습니다. 꽃제비들을 등쳐먹는 구호소 관리들의 횡포와, 경비생에게 몸을 허락한 대가로 강냉이 몇 개 도둑질하는 경옥 어멈 앞에서 왠지 헛웃음이 나옵니다. 강냉이를 자식들에게 먹이면서, 배 지나간 자리 운운하는 그녀의 말에서는 그 어떤 감정도 일지 않습니다. 열여섯에 중국으로 팔려 가 아이를 지우고 남한에 정착한 뒤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언니들 모르게 노래방에 드나들다가 몸을 팔러 일본으로 가는 경옥이 또한 그러려니 하고 지나갑니다. 저는 이 이야기가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완전 허구이길 간절히 바랍니다. 또 우리가 처한 작금의 현실은 모두 픽션이길 기도합니다.

군주민수(君舟民水), 백성은 물이요, 임금은 배입니다. 강물이 배를 띄우지만, 노하면 배를 뒤집을 수 있다 하지 않았습니까? 인육을 먹도록 방치한 그 는 뒤집혀 마땅한데 그러하지 못하다면 국민은 짐승이 되고 그곳에서는 정글의 법칙만 난무할 것입니다. 정글에서 추방당한 이들은 망망대해를 떠도는 난민이 되고, 난민은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허섭스레기로 둔갑, 마침내 가족까지도 돌볼 여유가 없어 각자도생의 길로 추락합니다. 그들의 윤리와 도덕과 인성은 풀죽 한 사발 앞에서 도리머리를 짓고 맙니다. 상궤를 벗어난 이는 이미 사람이 아닙니다.

형님도 왜, ‘삐라를 기억하시지요?
아이들이 주워 오면 교사는 반공 도덕 점수를 올려주고, 파출소에서는 공책으로 바꾸어 주던 선전지 말입니다. 누가, 언제, 어디에서 주웠는지 꼬치꼬치 캐묻고 나서 우리는 이를 교무실 수집함 속에 넣었지요. 대개 한 군데에서 다발로 발견한 탓에 여러 장을 들고 다니면서 인심 쓰듯 한 장씩 나누어 주던 아이와, 사탕이나 지우개를 건네며 한 장만 달라고 보채던 아이들 모습이 삼삼합니다. 이미 아이들은 선전지의 글이나 그림을 다 알고 있는데 우리 교사들은 어린이가 보아서는 안 되는 국가 기밀이라도 되는 양 쉬쉬했잖아요? 더 웃기는 일은 청구서나 고지서를 뜻하는 영어의 빌(bill)이 일본으로 건너가서 비라(ビラ)가 되고, 이를 다시 우리가 삐라로 둔갑시킨 것이지요. 그러니 삐라자체가 비틀린 언어인데 이를 또 우리는 대남 전단지불온 삐라라고 가르쳤으니, 굴곡진 언어의 유희는 그 끝이 어딘지 모를 지경입니다. 남북한 삐라의 시작은, 한국전쟁 당시에 유엔군이 25억 장을, 북한이 3억 장을 뿌린 것으로 집계돼 있답니다. 그런데 그 삐라가 요즘 다시 회자하고 있습니다.

지난 810, 대북 인권 운동 단체에서 활동하던 전수미 변호사가 대북 전단 살포가 돈벌이 수단이라고 폭로했잖아요? 소요 경비 대부분은 미국 해외홍보원 산하 민주주의진흥재단(NED)이나 보수단체로부터 지원을 받는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돈이 들어오면 관계자들이 지인들을 불러 회식하고, 룸살롱이나 사우나탕에 들르는가 하면, 노래방에서 도우미를 불러 즐겼다고 합니다. 이를 안 NED 한국 담당자가 북한 인권과 전혀 관계없는 곳에 허비했냐고 강력하게 항의를 했다지요. 게다가 남조선 사람들은 50달러, 100달러짜리를 주는 것도 아니고 추접하게 1달러, 10달러짜리를 주면서 그것도 가달러로 보내 주냐는 핀잔도 들었다네요. 아무튼 북한 인권을 알리는 순수한 의도는 간데없고 후원 목적이나 정치적 프레임 등 돈벌이 수단으로 사용하다 보니 언론사를 다 불러 모아 떠들썩하게 행사를 치른다지요. 그러나 이를 소명이라고 생각하는 선교 단체에서는 접경 지역에서, 때로는 중국 연변이나 동북 3성 지역에서 성경이나 유에스비(USB) 등을 조용히 보낸다고 합니다.

그런가 하면, 북한은 아직도 여성이 성폭행을 당하면 그 남자한테 복종하고, 남성은 이를 무용담으로 얘기하는 그런 문화를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북에서 당하고 다시 중국에서 인신매매단에 끌려다니면서 만신창이가 된 몸으로 탈출, 꿈에 그리던 자유 대한으로 정착하려는데……. , 과거를 잘 아는 하나원의 신변 보호 담당관이나 군 정보사령부 군인들이 말입니다. 누구보다도 그녀들을 보호해야 할 자리에 있는 자들이, 자신들이 어떤 행위를 저지르더라도 고소하거나 고발하지 않는 성문화를 빌미로, 그동안 끊임없이 성적으로 유린해 왔다니 현실은 소설보다 가혹합니다.

지난 9월 초에 탈북 여성 씨를 성폭행한 혐의로 국군정보사령부 소속 군인 2명을 기소했다는 뉴스를 보셨지요? 10년 전 압록강을 건너 탈북한 씨는 이미 우리 국민이 됐는데 정보당국 관계자들이 북한에 남아 있는 동생을 이용해 북한 무기연구소의 정보를 빼낸답시고 그녀에게 접근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동생이 북한 보위부에 적발이 돼 정치범수용소에 끌려갈 위기에 처하게 되자, 그녀는 A상사에게 술까지 사 주면서 도움을 요청했다고 합니다. 그렇게 하소연하던 첫날 A상사에게 겁탈당하고, 이를 안 그 상사인 B중령까지 가세해서 둘은 그녀를 1년 넘게 성노예로 삼았다는 겁니다. 이로 인해 두 번의 임신 중절 수술과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로 극단적인 우울증 증세를 보인다고 합니다. 가관인 것은 군검찰입니다. 특별한 이유 없이 9개월 동안 수사를 끌어왔을 뿐만 아니라 조사 과정에서 성폭행 당시 상황이 녹음된 음성파일을 그녀에게 들려주었답니다. 그 끔찍한 기억과 악몽을 재경험(플래시백)하게 함으로써 2차 가해를 서슴없이 자행하기도 했다니 말입니다.

아무리 작가의 상상력이 현실을 꿰뚫고 있다고 하더라도 청춘연가는 실화일 수가 없습니다. 인간이 비집고 설 수 없는 정글 속에서 빚어진 까마득한 옛날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참으로 입이 다물어지지 않습니다.

다시 태어나고 싶다. 전신을 으깨던 치욕과 고통의 나날들이 전혀 없었던 듯, 순간의 악몽에 불과했던 듯 그렇게 과거가 없는 여자가 될 수 있다면…….”

하나원에 혼자 남은 선화의 독백입니다. 하지만 이는 복녀를 비롯하여 경옥, 미선, 영애, 성철, 화영, 애란 등 선화들의 피맺힌 절규입니다.

너희들이 아무리 정의를 외쳐도 현실은 열 배 백 배 더 차갑다는 걸 뼈저리게 느끼게 해 주마.”

70년대 초, 명동에서 시위하던 저를 낚아챈 경찰관이 한 말입니다. 하지만 제가 겪은 차가운 현실은 선화들에게는 비견할 수 없는 부르주아의 호사일 것입니다. 예컨대 871216, 13대 대통령 선거는 27년 만의 직선제였습니다. 당시에 여당의 언론 담당 참모는 기자 앞에서 태연히 KBS로 전화를 걸어 선거 보도 지시를 내리는 판이었다지요. 국민들은 투표를 앞두고 느닷없이 반공 영화 킬링 필드를 보고, ‘민중민주주의란 무엇인가?’ ‘동토의 광란등 안보 심리를 자극하는 프로그램을 집중 방송했지요. 어쩌면 선화들에게는 4·195·18까지도 약간의 일탈 정도로 보이지 않았을지 모르겠습니다.

문제는 그토록 무지막지한 삶을 헤쳐 온 선화들이 앞으로 얼마나 큰 좌절을 겪어야 할까요?

작가는 서두에서 오로지 생존만을 위해 꽃처럼 아름다운 시절을 모두 도망치는 데 쏟아부어야 했던 북쪽의 청춘들. 그들은 과연 잃어버린 청춘의 연가를 되찾을 수 있을까?”하고 절규합니다. 그리고 후기에서 이렇게 하소연합니다.

그 두려움을 이기고 용기를 가다듬어 소설을 집필하도록 나의 등을 떠민 것은 내 고향 사람들의 수난이었다. 너무도 비참해 스스로도 부끄러운 삶의 설움이 저도 몰래 터져 나왔다. 다만 이 소설은 고통의 일부만을 그렸다. 아픔의 조금만을 푸념하였다.... (중략) 남한 사람들의 시선 앞에서는 늘 소심해지고 마는 자신을 어찌할 수 없다. 못살고 낙후한 제 고향을 탈출하여 더부살이처럼 얹혀사는 신세라는 자격지심이 눈치를 보게 한다.”

, 김유경 작가에게도 한 말씀 드립니다. 지나친 겸양은 예가 아닙니다. ‘죽은 것이나 다름없는 북한의 말이 아니라 살갑고 개미진 우리말들입니다. 이야기 속에서 처음으로 알게 된 말들을 생각나는 대로 두서없이 적습니다. 작가의 바람처럼 청춘의 연가를 되찾을 수 있을 때까지 원 없이 세상과 소통하기를 바랍니다.

홉뜨다, 진펄, 허비다, 줄레줄레, 슴벅이다, 변의(便意), 선손(), 아뜩하다, 어리무던하다, 데룩거리다, 도리머리, 옹송그리다, 평토하다(平土), 곡장(曲牆), 묘갈(墓碣), 강냉이쌀, 어슬어슬하다, 사멸하다(死滅), 죽나발, 입쌀, 썩어지다, 차례지다, 새물거리다, 혼곤하다(昏困), 헙헙하다, 실팍하다.

상처 없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마는 선화들은 수도 없이 치욕스러운 사선을 넘나든 이들입니다. 그들은 '제3의 국민'이라고 비하하지만 엄연히 대한민국 국민입니다. 스스로 다른 존재로 규정합니다. 안타깝습니다. 가장 큰 아픔은 남한 사람들의 무시와 비난이라고 입을 모읍니다.

너희 나라로 돌아가라, 우리 보고 간첩이냐고 묻는데 가슴이 철렁했다, 너희 때문에 우리 일자리가 없다며 대놓고 면박을 준다, 왜 우리 세금으로 너희를 따뜻하게 돌봐야 하는지 알 수 없다, 우리는 북에서도 남에서도 환영받지 못하는 존재다…….”

북에서 나왔지만 여전히 북은 선화를 옥죄고, 남으로 왔지만 여전히 남은 선화를 홉뜨고 노려봅니다. 그렇습니다. 이 순간 흔적은 없으나 온몸 곳곳에서 고름 내를 풍기며 썩어가는 것 같은 상처들을 꼭꼭 손가락으로 짚으며가슴을 치는 선화들을 보듬어 주어야 합니다. 그들이 부르짖는 청춘의 연가에 귀기울이면서.

편집 : 김동호 편집위원, 심창식 편집위원

박춘근 객원편집위원  keun728@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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