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잘됐네. 사제지간에 같이 심문 한번 받아 볼까?” 푸른 수의에 수갑이 채워진 채로 김×× 검사실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 “선생님!~” 하는 외마디 비명에 고개를 들어 쳐다보니 검사실에서 피아니스트로 일하는 제자였다. 제자는 눈물을 흘리면서 안절부절못하며 사무실을 뛰쳐나갔다. 검사실에는 또 한 사람... 수의를 입고 수갑이 채워진 채로 고개를 숙이고 있던 여성이 나를 쳐다보는 순간 “선생님!”하며 눈물을 글썽거리며 어쩔줄 몰라했다. 제자와 스승이 수갑을 차고 만나다니...

 

나중에 안 일이지만 수갑을 찬 채 앉아있는 제자는 창원공단에서 노조위원장을 지내다 압수수색 중에 집에 ‘미제 침략사’라는 책이 있다는 것을 빌미로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끌려와 조사를 받고 있었던 것이다. 한 사무실 안에 검사와 검사를 돕는 일을 하는 제자와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끌려 온 제자와 참교육을 하겠다고 나섰다가 수의에 수갑을 찬 선생님이 한 자리에서 만나다니... 한 사람은 국가보안법으로 또 한 사람은 무너진 교육을 바로잡겠다고 교육감실에 찾아갔다가 교육감실 점거농성이라는 죄목로 끌려와 수갑을 차고 있는 제자들은 눈물을 흘리고 이 모습을 보며 소름끼치는 웃음을 웃고 있는 공안검사.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성직이라며 존경받던(?) 교사다. 그러나 “우리는 더 이상 사랑하는 제자들에게 거짓말을 할 수 없다”며 섬김받는 교사가 아니라 섬기는 교사가 되겠다고 노동조합에 가입했다가 ‘탈퇴각서’를 쓰지 않았다는 이유로 교단에서 쫓겨났다. “촌지를 받지 않는 교사, 지나치게 열심히 가르치려는 교사, 그리고 반 학생들에게 자율성, 창의성을 높이려 하는 교사가 왜 교단에서 쫓겨나야 하는가? 아이들한테 인기 많은 교사가 왜 교직에서 쫓겨나야 하는가?….”(전교조교사 식별법 참고)’ 혼자서 싸우다 힘에 부쳐 전교조를 만들고 가입해 탈퇴각서를 쓰지 않은 것이 왜 공안 검사에게 조사를 받아야 하는가?

<해직교사원상회복 1인시위를 시작하다>

지난 9월부터 머리카락이 허연 노인들이 교육부 앞과 시도 교육청 앞에서 “31년을 기다렸다. 89년 전교조해직교사 원상회복시켜라” 라는 피켓을 들고 아침마다 1인시위를 하고 있다. 지나가는 사람들의 호기심어린 눈빛으로 쳐다보고 지나간다. 31년이라니... 어떤 시내버스 기사들은 손을 흘들어 주며 ‘엄지척’하며 지나가기도 하고 어떤 이는 따뜻한 음료수를 사다 손에 쥐어주며 “고생하십니다. 힘내십시오”라며 격려해 주는 분들도 있다. 그런가 하면  “저 사람들 뭐야! 선생인 것 같은데 원상회복은 또 무슨소리야!” 하는 표정으로 지나치는 분들도 있다. 이 사람들이 궁금해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1989년 우리는 국가로부터 폭력을 당했다. 정당하게 행사하지 못하는 권력은 권력이 아니라 폭력이다. 모든 권력은 정당하게 행사되는 것이 아니다. 수많은 양심수들이 그렇고, 정권에 비판적인 지식인들이 국가보안법으로 재갈을 물려 희생자가 된 사람들이 그렇다. 516쿠데타는 혁명이라고 쓴 국정교과서를 가르칠 수 없다며, 교육이 아니라 시험문제풀이 전문가로 키우는 교육을 할 수 없다는 교사들에게 수갑을채워 교도소에 끌고 가는 것이 그렇다. 전두환 노태우정권은 광주학살의 국민적 저항의 관심을 돌리기 위해 전교조를 희생양으로 삼았다. 1,527명 그리고 사학민주화를 위하 나섰던 교사, 그리고 6·25를 북침이라고 가르쳤다며 누명을 씌워 쫓겨난 교사... 이들 1700여명이 교단에서 쫓겨난 것은 폭력이다.

해직된지 5년.... 1994년 김영삼정부는 해직교사들을 복직시킨다며 시혜차원에서 특별법을 만들어 ‘신규교사 채용’이라는 특별법으로 복직을 시켰다, 경제적인 고통을 견디지 못한 교사들은 ‘신규교사 채용’이라는 굴욕적인 채용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김영삼정권은 해직교사들의 이런 약점을 알고 신규채용이라는 또 다른 형식의 항복을 강요한 것이다. 울며 겨자먹기로 한계상황에 몰린 해직교사들은 이 굴욕적인 채용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는 끝이었다. 5년간 해직생활의 고통은 그 후 ‘민주화유공자도 아닌 ’민주화운동관련자 증서‘라는 종이 한 장 뿐이었다. 배·보상을 포함한 연금 불이익과 같은 원상회복이란 꿈도 꾸지 못한채 31년이라는 세월이 지나갔다.

<착하기만 한 사람이 되라고 가르쳤습니다>

「합포고등학교, 교사 김용택/ 위 본인은 경상남도 초등교육과-16017(2006. 10. 18)호 『2007년 2월말 퇴직교원 정부포상 계획』 에 따른 정부포상 추천대상자입니다. 저는 2007년 2월 말 정년퇴직 예정자로서 합포고등학교 인사자문위원회에서 재직연수에 해당하는 녹조근정훈장 추천대상자로 심의되었으나 개인사정으로 정부포상대상자로 추천되는 것을 희망하지 않으므로 이에 포기서를 제출합니다.」 2006년 10월 31 교사 김용택..... ’

돌이켜 보면 38년 6개월. 참 부끄러운 교직생활이었다. 정년을 앞둔 2006년 교무부장이 찾아 와 훈·포상 대상자니 공적조서를 써내라고 했다. 공적이라니...? 돌이켜 보니 공적이 아니라 가르치라는 국정교과서를 가르쳐 암기한 순으로 서열을 매기는 부끄러운 교직생활이었다. 공이 없어 훈장을 받지 못하겠다고 했더니 포기서를 내란다. 그것도 ‘개인 사정으로...’라고 쓰지 않으면 포기가 안된다는 것이다. 예상했던 것보다 파장이 컸다. 경향신문을 비롯한 신문에서 사설에까지 나오고 보수적인 언론이 대서특필했다. 그러나 교육위기를 불러온 공범(?)임을 자백하고 고해성사하는 정부도, 지식인도 언론도 찾아볼 수 없었다.

비판이나 자아비판을 하지 못하는 단체나 개인은 부패한다. 우리헌법 전문에는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민주이념을 계승...’한 나라라고 명시하고 있다. 불의에 저항하는 정의가 우리 국민정신임을 강조한 것이다. 잘못을 잘못이라고 하면 생존권을 빼앗겨야 하는가? 잘못된 교육현실을 바로 잡겠다는 것은 불의에 저항하는 정의감의 발로다. 교육부는 ‘전교조교사 식별법이라는 공문을 학교에 보내 탈퇴각서를 내지 않은 교사를 파렴치범 잡듯이 찾아내 교단에서 몰아냈다.

 

<해직교사의 삶과 철학>

해직기간동은 우리는 별별 일을 다 했다. 생존을 위해 트럭운전사가 되기도 하고 막노동에 학원강사까지 마다하지 않았다. 나이가 젊거나 부부교사 중 한 사람이 해직된 경우는 전교조에 상근활동을 하거나 환경운동이나 노동운동, 농민운동 시민사회단체에 활동에 뛰어들었다. 해직교사들은 교육을 정상화시키는 일, 민주화를 앞당기는 일이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고 참여 했다. 필자의 경우에도 해직 기간동안 공립대안학교 태봉고 설립에 동참하기도 하고 언론개혁을 위해 경남도민일보 창간과 오마이뉴스 기자를 비롯한 SNS활동, 그리고 노동자들의 교육을 위해 지역의 인사들과함께 ’노동사회교육원‘ 설립하기도 하고 탈학교 학생들을 무료로 무료로 교육을 시키기는 ’보리학교‘를 운영하기도 했다.

이러한 노력이 한계가 있다는 것을 절감한 나는 주권자들이 헌법을 알아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헌법대로 하고 헌법대로 사는 나라를 만드는 길이 주권자가 주인으로서 살 수 있는 민주주의 앞당기는 길이라고 판단, 헌법읽기운동에 뛰어들었다. 필자의 뜻에 공감하는 분들과 함께 ’우리헌법읽기국민운동‘이라는 시민단체를 만들어 포켓에 넣고 다니며 읽을 수 있는 ’손바닥헌법책‘을 만들어 전국 시도 교육감과 MOU를 체결하고 헌법 강사양성교육과 헌법교육을 하러 뛰어다녔다. 손바닥헌법책은 놀랍게도 4년여만에 손바닥헌법책이 전국에 40만여권이 보급되는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다. 물론 강원도에서 제주도까지 지부를 만들어 헌법읽기운동을 계속하고 있다.

필자의 경우뿐만 아니다. 국가의 폭력이 저지른 31년, 해직된 1700여 명의 해직교사들은 교육민주화 운동뿐만 아니라 노동운동, 농민운동, 환경운동, 여성운동 등 사회 곳곳에서 소외된 사람들, 약자들의 아픔에 함께하면서 교육민주화운동 민주사회를 앞당기기 위한 교육시민사회운동에 동참해 왔다. 이들 중에는 31년 동안 연금을 받지 못해 경제적인 어려움과 병고에 시달리며 비참한 삶을 살아 온 사람이 있는가 하면 지금도 병마와 싸우며 어렵고 힘든 삶을 살고있는 사람도 많다.

감춰진 역사는 역사가 아니다. 국가권력에 의해 해직당한 교사들의 원상회복은 역사 바로 세우기 운동이다. 해직교사들은 해직당시의 충격으로 가정이 파탄나고 심리적인 충격으로 많은 선생님들이 암에 걸려 세상을 등졌다. 그들이 살아있을 동안 국가는 그들이 저지른 과거의 폭력을 사과하고 원상회복을 시켜야 한다. 교육민주화를 위해 31년이 지난 역사를 덮어두고 정의를 말할 수 있는가? 헌법 10조시대를 만들 수 있는가?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며, 결과는 정의로운 세상‘을 만들 수 있는가? 이 글을 쓰려고 컴퓨터 앞에 앉는 순간 경남 진주 진양고등학교 해직교사 하만조선생님이 타계했다는 안타까운 소식을 들었습니다. 원상회복을 보지 못하고 떠난 선생님의 명복을 빕니다.

편집 : 심창식 편집위원

김용택 주주통신원  kyongtt@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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