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 저무는 겨울 저녁에

                        - 이 기 운

 

길가에 서있는 건초더미
바람 부는 날의 피난처
기억도 아득한 어린 날
돌 던지며 따라다니던
머리 풀고 춤추는 여인
달빛조차 시린 붉은 종아리
돌부리 걷어차며 맨발로 추는 태평무
평안 하라 세상이여
나는 숨어서 울어도
너희는 울지 마라
누가 알 수 있을까
눈보라치는 밤이면
가마솥 아궁이에
고양이처럼 숨어들도록
부엌문을 빠끔히 열어두시던
아버지는 아셨을까
축복하는 자를 조롱하는
무지함은 아픈 멍울이 되고
흐린 겨울 저녁 길
나무들도 말이 없네
회개하라 가슴 깊은 곳에
감추고 있는 변명의 말까지
슬퍼하라 아무 생각도 없이
키 큰 사람들 따라하던 날들을

 

그대를 향해 나는 가네
해 저무는 겨울 저녁
내 유년의 예배당에
흔들리는 호롱불
 


편집, 사진 : 양성숙 객원편집위원

이기운 주주통신원  elimhill@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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