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좋은날 맞이합니다.
오전에 끄적인 <명시감상> 일곱번째 글 올려봅니다. 변변찮은 글이지만 끝까지 읽어보시며, (누구나의 마음속에 잠재되어 있지만) 世波에 씻기어 나간 '시를 사랑하는 마음'(=詩心)을 되살리는 마음으로 감상하시면 좋겠습니다.
 

제목 : 자네 집에 술 익거든
- 김 육 -

자네 집에 술 익거든
부디 날 부르시소

내 집에 꽃피거든
나도 자네 청해 옴세

백년덧 시름 잊을 일
의논코자 하노라.
ㅡㅡㅡㅡㅡㅡㅡㅡ
오늘 소개할 시는 조선중기 명신(名臣)으로서 실학파의 선구자이며 벼슬이 영의정에 이르렀고, 대동법(大同法)이란 개혁적인 세제(稅制)을 시행하여 백성들의 고초를 덜어주는 정책을 펼친 김육(金堉 /1580~1658 / 호는 潛谷) 이란 분의 '시조'입니다.

~ 초장에서는 백년지기로 사귀는 친구에게 넌지시 이릅니다.
" 내 풍문에 들으니, 자네 요즘 맛있는 술 담갔다면서? 그 술이 잘 익을때 쯤에 부디 나에게 전갈 주시게나 "
뭐 이런 뜻으로 보이는데, 아마 산너머 이웃마을에 글방 동문수학한 붕우(朋友~요즘 말로 '절친') 집에서 새로 술을 빚었다는 얘기를 듣고, 이렇게 글로 써서 전갈을 보냈는가 봅니다.

~중장에서는, 앞의 초장에 화답하는 내용입니다.
" 우리집 담장가에 심겨진 복숭아와 살구 나무에 복사꽃과 살구꽃이 필적에, 나도 자네를 우리집에서 술한잔 하자고 초청하겠네그려"
참으로 정겨운 벗 사이의 신의와 우정이 오가는 대목이 아닐수 없네요. 요즘 우리 사회에서는 보기힘든 여유와 낭만까지 느껴집니다.

~마지막 종장은 이 시조를 쓴 분, 김육의 속마음을 여실히 보여줍니다.
"자네와 더불어 술잔 권하며, 그동안 쌓인 시름을 잊어버리고 싶다." 뭐 이런 뜻으로 해석할 수 있겠지요. 김육 선생은 워낙 강직한 성품으로 올곧은 언행을 하며 벼슬살이 하다가, 당시의 실권자인 간신(奸臣)과 혼군(昏君)의 미움을 받아 두번씩이나 초야에 물러났으나 주경야독으로 실력을 쌓아, 70세에 효종 임금의 신임을 받아 영의정을 제수받고 마침내 대동법을 본격적으로 시행한 조선 시대 통틀어 몇 안되는 명신(名臣)으로 역사에 기록된 분입니다.
봄철에 피어난 고운 꽃들 옆에서 벗과 함께 담론을 나누면서, (백성들의 무거운 세금을 덜어주기 위해) 대동법 시행을 하는 과정에서 덧붙어 쌓인 큰 시름을 잠시나마 잊고 싶다는 마음을 토로하고 있습니다. 비록 큰 권세와 부(富)를 쌓을수 있는 벼슬에 있는 사대부이지만 청렴하고 결백한 작자의 소박하면서도 진솔한 마음을 엿볼수 있는 시조라고 평할 수 있겠습니다.

어쩌다 가끔은 정겨운 벗과 얼굴을 마주보고 치맥이나 막걸리잔을 기울이며 대작(對酌)하는 여유가 있는 삶은, 코로나19 전염병으로 인해 변화없이 지속되는 지루한 ‘집콕’의 일상으로 때로 자신이 비루해지고 주위 사람들이나 환경이 싫어질 때, 그래도 삶의 한자락 위안이 되어 다시 새로움을 꿈꿀 수 있는 힘의 원천이 되는 것 같습니다. 우리 모두 다가올 입춘(立春)과 새봄을 기다리며, 믿음과 희망을 끝까지 잃지 말았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이제, 김창업(1658 -1721)이란 분의 풍류 넘치는 시조를 덧붙임으로 오늘 명시감상 7번째 글을 맺습니다.
"벼슬을 저마다 하면 농부할 이 뉘 있으며
의원이 병 고치면 북망산이 저러하랴
아이야, 잔 가득 부어라 내 뜻대로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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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 허익배 편집위원

허익배 주주통신원  21hip@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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