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 노인요양병원
복지관에 매일 오시는 할아버지가 있습니다. 인물이 좋고, 키도 훤칠하며 허리도 꼿꼿한 것이 아주 건강해 보입니다. 부인인 할머니는 키가 작고 굽었음에도 이틀에 한 번씩 노인 일자리 사업으로 사회복지관에 일을 나옵니다. 할머니의 출근 여부와 상관없이 할아버지는 하루에도 서너 번씩 복지관에 옵니다.
딱히 할 일이 있거나 볼일이 있어서 오는 게 아닙니다.
“이거(복지관) 처음 지을 때 여자 한 명이 있었어. 얼마나 지독하게 돈을 달라고 떼를 쓰는지 내가 어쩔 수 없어서 45만 원을 줬어. 그런데 여태 갚지를 않아. 이젠 고발을 해서 감옥에 보내는 수밖에 없어.” 하면서 사무실 안의 한 복지사를 가리킵니다.
할아버지가 그 얘기를 한 건 오래전부터라고 합니다. 당신이 가리킨 의자에서 근무하는 복지사가 나오면 ‘왜 돈을 갚지 않느냐’고 삿대질을 하면서 언성을 높이기도 합니다. 그러다가 한 번은 복지사의 엉덩이를 철썩 때려서 소란을 일으키기도 했지요.
할아버지는 매일같이 45만 원 이야기를 하고, 지목을 받은 직원은 당신의 자리에서 근무했던 직원이 바뀌어도 몇 번 바뀌었는데 왜 자신에게 그러는지 모르겠다고 하면서 곤란해합니다. 나는 매일 할아버지의 체온을 재고, 핸드폰을 받아서 안심콜로 전화를 합니다.
1935년생인 할아버지는 툭하면 사라집니다. 그리고 복지관이나 할머니한테 “여기 OO인데 집에 가는 방법을 모르겠다.”라고 전화를 합니다. 그런 비상상황에서 할머니가 택시나 버스를 타고 찾으러 가거나 복지관에선 경찰에 도움을 요청합니다.
심심치 않게 경찰차로 귀가한 할아버지가 자랑스레 말합니다.
“내가 야단을 쳤더니 저것들(경찰)이 날 여기(집)까지 태우고 왔어.”
전화번호랑 주소를 적은 팔찌나 목걸이를 할아버지한테 착용시키라고 경찰들이 말합니다. “영감님이 저 지경이면 병원에 보내야지 어떻게 (감당)하려고 그냥 놔두는 거냐?”고 할머니 주변 분들이 난리입니다.
“병원에선 말 안 듣고, 막 돌아다니려고 하면 꽁꽁 묶어 둔대요. 그런데 저 양반은 잠시도 가만있질 않잖아. 묶여 있을 걸 생각하면 불쌍해서 어떻게 보내?” 라고 하면서 눈물을 질금질금 흘립니다.
“자녀분들은 뭐라고 하세요?” 그 모습을 본 복지사가 묻습니다.
“그냥 내버려 두래요. 고생 좀 하라고.”
“아니, 그건 아니지요. 할아버지는 이미 고생한다고 해서 나아질 단계가 지났는데.”
“……?”
이런 모습을 볼 때마다 어머니 생각을 합니다.
“아버지가 건강하게 살아계셨어도 어머니를 요양병원에 보냈을까?”
지난달에 열흘 간격으로 돌아가신 작은할아버지, 할머니도 생각납니다. 할머니가 오랫동안 아프셨고, 치매도 앓아왔습니다. 그런 할머니를 오랫동안 돌봤던 할아버지가 많이 힘드셨는지 먼저 돌아가셨습니다.
요양병원에 계시는 어머니가 자꾸 마음에 걸립니다. 자주 찾아뵙고 이야기를 나누며 외출해서 좋아하는 음식도 드시게 하면 좋을 텐데 코로나 19로 모든 게 멈추었습니다. 외출은 기약이 없고, 면회도 비닐 막 사이로 잠깐 볼뿐이니 상심이 큰 것 같습니다. 그래서인지 어머니의 사고(思考)나 기억력이 눈에 띄게 나빠지고 있습니다.
통화 때마다 한숨 쉬는 어머니를 나 혼자 집을 얻어서 모시는 게 낫지 않을까? 사시는 동안 모든 약을 끊고, 먹고 싶은 음식을 양껏 드시게 하고, 원하는 곳을 맘껏 다니는 게 낫지 않을까? 창살 안에서 오래 사느니 잠깐이라도 자유롭고 행복하게 사는 게 좋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하면서 아이한테 물어보았습니다.
“다향아, 아빠가 너 방 하나 얻어주고, 아빠는 지방에 내려가 살면 어떨까?”
“그럼, 카페는 어떡해?”
“너 살 원룸이랑 작은 가게 하나 얻어주면 너도 좋지 않아? 네 마음대로 할 수 있으니까.”
“아니, 싫어. 아빠랑 같이 카페 하면 잘 될 수 있어도 나 혼자 하는 건 승산이 없어. 아빠가 꼭 지방에 내려간다면 카페는 없던 일로 해.”
“……?”
꼬맹이 시절부터 제일 친한 친구가 말합니다.
"스물네 시간 동안 한눈팔지 않고, 계속 지켜봐야 하는데 그건 가능한 일이 아니야. 우리 할머니만 해도 사나흘 동안 잠만 자다가 또 사나흘 동안 잠을 자지 않고, 밤새 문을 두드리고, 가스 불을 켜고 하는데 그걸 감당할 사람은 없어. 좋아서, 마음이 편해서 요양병원에 보내는 사람이 어디 있냐? 어쩔 수 없어서 그런 거지."
어려운 선택을 할 때마다 ‘형편껏 살아야지’ 했던 아버지가 살아계신다면 이런 상황에선 뭐라고 하실까?
편집 : 박춘근 객원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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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냥 기쁠 일도 아니고요.
치매와 노인 요양병원 문제도 미리미리 생각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요양병원에 한 번 들어가면 살아서 못 나온다니 현대판 고려장 생각도 나고요.
오성근 통신원의 고뇌가 오래 남습니다.
행복한 삶을 위해 머리를 맞대고 경험과 사색을 공유하였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