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toneman이 전해준 농기구 혁명

내 손은 똥손이다. 아니, 뭐든지 내 손에 오면 죽이는 킬러의 손이다. 한국에서 기르던 장수풍뎅이도, 미국에서 기르기 시작한 뱅갈고무나무, 심지어는 선인장까지, 다 오래지 않아 죽고 만다. 그래서인지 언젠가부터 내 마음 속엔 ‘내 곁에 생명체가 오면 죽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자리 잡았고 되도록 무언가를 키우는 일은 하지 말자고 마음먹게 되었다. (다행히 아이는 혼자 잘 크고 있다.) 

그런 내가 미국에서 텃밭을 시작했다. 한국에서 안 해본 것도 아니다. 한국에서도 몇 번의 텃밭 시도가 있었지만 거의 매번 잡초의 습격과 나의 게으름이 시너지를 발휘해 망치기 일쑤였다. 다행인 것은 텃밭 식물이 죽은 적은 없었다는 점. 죽지는 않았지만 평생 처음 본 상추 꽃, 시금치 꽃, 부추 꽃이 가득한 꽃밭이 되었다가 나중에는 무성한 수풀로 끝이 났다. 그렇게 세 번 정도의 실패가 있었음에도 나는 포기하지 않고 네 번째 텃밭을 시작했다. 그것도 미국 위스콘신에서...

2021년 3월 13일 동네텃밭 신청이 시작되었고 나는 3m×5m정도 되는 크기의 텃밭을 배정받았다.  텃밭관리인 케이티는 텃밭 시작 일이 4월 24일이고 원하는 사람들은 10달러에 tilling(갈묻이 : 논밭을 갈아서 묵은 끄트러기 따위를 뒤집어 묻히게 하는 일을 해준다고 했다. Straw(지푸라기)를 원하는 사람은 공동구매를 할 예정이니 말하라는 메일도 왔다. 지푸라기를 뿌리면 잡초가 나는 것을 막을 수 있고 땅을 좀 더 촉촉하게 보존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고 한다. 나는 갈묻이와 지푸라기를 신청했다.

4월 24일 드디어 텃밭 개장일이 되었지만 이사와 겹쳐 저녁에 잠깐 가보기만 하고 제대로 텃밭을 둘러보지도 못했다. 그러다가 5월 중순 정도 겨우 짬을 내서 씨앗을 뿌렸다. 5월말에 서리가 와서 많은 사람들이 피해를 입었다고 했지만 나는 씨를 늦게 뿌려서 괜찮은 편이었다. 그 이후에도 며칠간 큰 일이 생겨서 텃밭을 제대로 보고 정리할 시간을 갖지 못했다. 씨앗만 뿌리고 나몰라라한 셈이다.

그러다 지지난 토요일 6월 5일 오랜만에 텃밭에 가보니 난리가 났다. 내가 뿌렸던 씨앗 대부분은 싹이 나지 않았고 그 대신 많은 잡초들이 땅을 지배하고 있었다. 뿌린 씨앗 중에 살아남은 것은 상추 3 개, 옥수수 6 개, 텃밭 쓰레기장에서 주워다 심은 부추 한 묶음 정도였고 나머지는 그냥 잡초 밭이라 해도 무방했다. 

잡초가 가득한 텃밭
잡초가 가득한 텃밭

나는 직접 손으로 잡초를 제거하기 시작했다. 토요일 2시간 동안 잡초를 제거했는데 밭의 1/4도 정리하지 못했다. 일요일 저녁 7시에 잡초 제거 작업을 위해 다시 텃밭으로 나섰다. 쭈그려 앉아 손으로 하나하나 잡초 제거를 시작하고 한 시간 정도 지났을 때였다. 

“헬로, 난 빌이야. 너 텃밭 처음이지? 저기 창고 안에 농기구 있는 거 알아? 누구나 이용해도 되는데, 내가 어떻게 농기구로 잡초 제거하는지 보여줄까?” 라고 말하며 한 아저씨가  다가와 나에게 말을 걸었다.
“응, 안녕. 난 지애야. 스펠링은 Jiae인데 그냥 알파벳으로 G,A라고 말하면 내 한국 발음에 더 가까워. 그리고, 내가 가든 처음인 거 어떻게 알았어? 잡초 뽑는 거 보고 안 거야? 잡초 어떻게 없애는지 알려주면 진짜 고맙지.”

그 아저씨는 창고에서 농기구 두 개를 가지고 와서 잡초를 제거하는 법을 알려주었다. Hoe(괭이)와 Rake(갈퀴)만을 이용해 순식간에 잡초를 정리하는 모습을 보고 신세계를 만난 것 같았다.
“정말 고마워. 나 어제부터 했는데 너무 힘들어서 어떡하나 고민하고 있었거든.”
“그래. 내가 안 그래도 어제부터 봤는데 잡초를 하나하나 뜯고 있더라고. 그냥 과감하게 밀어버려. 내 이름은 빌 스톤맨(Bill Stoneman)이야. 작년까지 여기 텃밭 운영위원을 맡고 있었는데, 금년에는 안 해. 그래도 모르는 거 있으면 아무 때나 물어봐”
“너무 고마워. 너한테 진짜 많이 물어봐야 할 수도 있어. 빌 스톤맨이라고? 스톤에이지(석기시대)에 와서 드디어 제대로 된 농기구를 이용할 수 있게 된 기분이다. 진짜 고마워”
“그래, 하나만 기억하면 돼. 절대 포기하지 마. 매일 매일 조금씩 하면 돼. 알았지?”
“응, 너무 고마워. 그 말 꼭 기억할게. 주말 잘 보내고 또 보자.” 

그렇게 빌과의 만남 후, 나는 일주일 동안 텃밭을 정리하고 이제는 어느 정도 잡초들이 꽤나 정리되었다. 다음 글에서는 빌과 클라이드, 제러미, 존과의 만남과 그 잡초들에 얽힌 이야기에 대해 좀더  써보려 한다.   

정리되어가는 중인 텃밭
정리되어가는 중인 텃밭

 

~ 편집 :  허익배 편집위원, 양성숙 편집위원

안지애 객원편집위원  phoenicy@hotmail.com

한겨레신문 주주 되기
한겨레:온 필진 되기
한겨레:온에 기사 올리는 요령

저작권자 © 한겨레:온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