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다.
이 책을 읽게 된 특별한 계기는 없다. 단지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라는 책을 읽고 나서 책장을 뒤져보며 다음번 읽을 책을 고르던 중에 발견한 책이다. 지금 나에게 남는 것이 시간인지라 전번에 읽은 책과 두께가 비슷한 것이 원인이 되어 읽기 시작했다고나 할까? 그러나 생각과 달리 워낙에 책이 두꺼운 데다가 지루하기까지 해서 언제부터 읽기 시작했는지 기억이 아득할 정도로 시간이 오래 걸렸다. 너무 지루해서 중간에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지만 책을 읽다가 중도에 접고 포기한 기억을 남기고 싶지 않다는 생각 하나로 꾹 참고 끝까지 읽었던 것 같다. 전번에 읽은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와 헤로도토스의 역사는 서로 비교 대상이 될 수는 없겠지만 독자를 끌어들이는 힘에서는 두 책 간의 장구한 세월만큼이나 차이가 있어 보인다. 학교에서 서양 역사에 대해서 배울 때는 누구나 이 책에 대해서 귀가 솔깃하고 호기심도 가졌을 것이다. 대부분은 그때 배운 상식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은 내가 당장 써먹을 수 있는 긴요한 상식과 지식을 채워주기 위한 많은 책들이 도서관 책장에서 나의 선택을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이다. 물론 독자의 가치관에 따라서 개인마다 판단의 차이는 있을 것이다.
이 책의 서문에 의하면 헤로도토스는 소아시아 할리카르나소스(터키의 보드룸)에서 태어났으나 참주의 폭압을 피해 사모스섬으로 망명하였다가 BC445년경에 전성기였던 아테네로 가서 살게 되었는데, 거기서 페리클레스(고대 아테네의 정치가이자 군인), 소포클레스(고대 그리스 3대 비극시인)와 친교를 맺었다고 한다. 펠로폰네소스 전쟁이 발발했을 때 53세였는데 이 전쟁을 몸소 체험했다고 한다. 헤로도토스는 페르시아 전쟁과 관계가 있는 그리스 본토의 모든 지방과 소아시아, 남이탈리아, 시칠리아를 여행하며 그가 갈 수 있는 곳은 어디든 다니며 자료를 모았다고 한다.
헤로도토스의 《역사》는 중국 진나라의 진수가 편찬한 삼국지와 유사한 점이 많다. 헤로도토스의 《역사》는 기원전 5세기경에 쓰였고 삼국지는 기원후 3세기경에 쓰였기 때문에 8세기라는 시간의 간극이 있다. 삼국지가 약 1,800년 전 중국에 존재했던 위, 촉, 오 이 세 나라 간에 중국 중원의 패권을 차지하기 위한 치열한 역사적 사실을 기록한 역사서라 한다면 헤로도토스의 《역사》는 2,400년 전 소아시아 강대국 페르시아(수도 수사는 현재 이란의 남서부에 위치함)가 그 당시 여러 해상도시국가로 이루어진 헬라스(그리스)를 침략하는 오랜 과정과 이에 헬라스 해상도시국가들이 어떻게 대응하며 페르시아를 물리쳤는지를 기록한 역사서이다. 진수의 삼국지와 달리 헤로도토스의 역사는 온전한 상태로 남아 있다고 한다.
후대 문헌학자 아리스타르코스의 서언에 의하면 “헤로도토스의 《역사》는 할리카르낫소스 출신 헤로도토스가 제출하는 탐사보고서이다. 그 목적은 인간들의 행적들이 시간이 지나면서 망각되고, 헬라스인들과 비헬라스인들의 위대하고도 놀라운 업적들이 사라지는 것을 막고, 무엇보다도 헬라스인들과 비헬라스인들이 서로 전쟁을 하게 된 원인을 밝히는 데 있다”고 하였다. 간략하지만 《역사》를 전체적으로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되는 말인 것 같다.
헤로도토스의 《역사》는 신화시대로부터 비롯되는 그리스인들과 비그리스인들 사이에 있었던 갈등들을 간단히 언급한 다음 그다지 멀지 않은 시대인, 뤼디아 왕이었던 크로이소스(기원전 560 ~ 547년)에게로 눈을 돌리며, 크로이소스야말로 무력으로 조세를 바치도록 강요함으로써 그리스인들에게 부당한 짓을 한 최초의 비그리스인이라고 확언하였다. 그리하여 그리스인들을 복속시키려던 일련의 비그리스인들 또는 야만인들의 왕들 즉 크로이소스, 퀴로스, 캄뷔세스, 다레이오스, 크세르크세스가 이 책 전개의 핵심이 된다. 페르시아 전쟁은 양대 세력이 충돌하기까지 한쪽에서의 사건들과 다른 쪽에서의 사건을 병행해서 기술한다. 마라톤에서 좌초한 다레이오스의 원정에 대한 기록에 이어 전쟁 결의, 테르모퓔라이 전투(영화“300”의 소재), 아르테미시온 전투, 살라미스 해전에서 플라타이아이에서의 승리와 뮈칼레에서의 승리까지 크세르크세스의 원정이 기록되어 있다. 그리스인들이 수세에서 공세로 돌아선 기원전 479년의 세스토스 함락에서 《역사》는 끝난다.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는 말이 있다. 헤로도토스가 태어난 곳은 소아시아였지만 노년에는 아테네에 거주하면서 명망가들과 친분을 맺으며 조금은 풍요롭게 살았다고 볼 수 있다. 그의 역사는 다분히 그리스인들의 눈으로 본 역사일 것이다. 만일 그리스가 정복당하고 페르시아가 최종 승리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헤로도토스의 《역사》는 탄생하지도 못했을 것이다. 만일 탄생했더라도 헤로도토스가 페르시아인들을 야만인이라고 기록하는 것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아마도 해상도시국가 상호 간의 잦은 침략과 이로 인한 상호 종속관계를 해방이라는 명분으로 침략을 정당화한 크세르크세스의 침략 논리가 《역사》에 이렇게 대문짝만하게 대서특필하지 않았을까? 페르시아왕 크세르크세스는 스파르테와 아테나이로부터 억압받는 그리스 해상도시국가를 해방시킨 위대한 영웅이라고 말이다.
세계 최초의 역사서를 읽으면서 지금 한반도의 역사에 대한 기록과 평가가 궁금해진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교육, 통일 등애 대한 지금의 생생한 기록들을 후세는 과연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이런 현장의 사실들을 끊임없이 기록하고 평가하고 방향을 제시하는 한겨레신문에 대한 미래의 평가는 어떠할까?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는 말이 좀처럼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편집 : 박효삼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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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과 유물은 그만큼 반복이 아닌 진보와 발전으로 이끌어가니까요.
헤로도토스의 역사를 소개해준 이강근 통신원 덕분에 신화와 역사의 현장으로 들어가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