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 기다림, 세상에 대한 기쁨.

1. 
내 그대를 생각함은 항상 그대가 앉아있는 배경에서 해가 지고 바람이 부는 것처럼 사소한 일일 것이나 언젠가 그대가 한없이 괴로움 속을 헤매일 때에 오랫동안 전해오던 그 사소함으로 그대를 불러보리라.

2.
진실로 진실로 내가 그대를 사랑하는 까닭은 내 나의 사랑을 한없이 잇닿은 그 기다림으로 바꾸어 버린 데 있었다. 밤이 들면서 골짜기에 눈이 퍼붓기 시작했다. 내 사랑도 어디쯤에선 반드시 그칠 것을 믿는다. 다만 그때 내 기다림의 자세를 생각하는 것 뿐이다. 그 동안에 눈이 그치고 꽃이 피어나고 낙엽이 떨어지고 또 눈이 퍼붓고 할 것을 믿는다.

- 황동규, '즐거운 편지'
 

 사랑은 언젠가는 꺼져버릴 촛불과 같다. 스스로를 태워가면서 그 끝을 바라보는 점에서 기다림도 그러하다.
 사랑은 언젠가는 꺼져버릴 촛불과 같다. 스스로를 태워가면서 그 끝을 바라보는 점에서 기다림도 그러하다.


시를 좋아하는 아내와 만나 연애하기 전까지 시는 이해할 수 없는 언어조림에 지나지 않았다. 시인들이란 개연성 없는 내용들을 취한 언어로 늘어놓는 족속들 이었고, 시집은 교양처럼 주렁주렁 달고 다니는 속물들의 치장거리 같았다.

모든 성취는 시간을 필요로 한다.

시간을 뛰어넘어 성취를 이루는 자들을 우리는 천재라 부른다. 대부분의 천재는 시간을 뛰어넘은 댓가를 치러야 한다. 우리가 천재일 수 없는 이유는 그 댓가를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

시인이 노래하는 사랑은 반드시 그치겠다.

그것은 시간이 유한(有限)하기 때문이다. 시간을 일상에 쏟아붓는 대신 기다림에 꾸준히 쏟아붓는다. 기다림은 멈추지 않고 순환할 것 처럼 보일 뿐이다.  언젠가는 순환이 멈출 것을 알기에 순환하는 동안 마지막에 취할 자세를 생각한다. 기다림의 주체는 사라질지언정 그 마음은 남아 순환을 마무리한다.

이 그리움은 경건하다.

무릇 시인은 자신도 알지 못하는 언어들을 버무려서 조려내지 않는다. 그들은 언어를 연장처럼 들고 세상의 틈을 비집어 그 내부를 비춰본다. 그리고 그 전에는 알지 못했던 일들을 발견한다. 우리의 언어들은 갑작스레 발견한 세상의 일들을 순탄하게 표현하지 못한다. 언어들은 언뜻 앞뒤가 맞지 않는 모습으로 늘어서지만 우리는 이제 그 질서를 발견할 수 있게 된다.

치장거리들이 부딪치며 짤랑거리듯  언어들은 마음에 부딪힌다.  
나는 살고 있는 세상을 다시 바라보아야 한다.

나의 순환, 나의 기다림과 관계없이
'꽃이 피어나고 낙엽이 떨어지고 또 눈이 퍼붓고 할  것'이니 어찌 기쁘지 아니할까...

 

편집 : 김해인  객원편집위원, 양성숙 편집위원

김해인 객원편집위원  logcat@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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