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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지문화관의 1층 전시실은 사실상 문학관에 전시가 대부분 되어 있고, 여기 있는 것은 복사본 같은 것들이어서 조금 실감이 덜 나는 것들이다. 현관을 들어서면 바로 오른쪽 곁에 나타난 커다란 북은 이 문화관과 어떤 연유가 있는 것인지는 모르지만, 조금은 생뚱맞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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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의 북이 아닌 대북이 있으니 여기서 어떤 행사를 알리는 것인지 아니면 박경리 선생과 무슨 연관이 있는 것인가 싶어서 설명을 찾아보았지만 별로 알만한 것은 기록되어 있지 않았다.

고개를 드니 모녀가 나란히 찍힌 사진이 걸려있다. 얼마나 오랜 사진인지 많이 낡아 있지만, 사진 속의 인물들은 조금도 어색하지 않은 모습이다. DSC08932.jpg

뒷동인 숙소로 올라가는 계단 아래 그러니 문화관을 들어서면 정면에 자리 잡은 박경리 선생의 머리부분만을 조각한 철제 동상이 유리 진열장 안에 자리 잡고 있다.

사진을 찍으려니 여기저기에 있는 조명 시설 때문에 도저히 제대로 찍히질 않아서 애를 먹었다. 여기 실린 사진은 나중에 오후 4,5시경에 기울어가는 햇빛이 현관 유리를 통해서 정면으로 들어와 닿을 때에 정말 환하게 밝은 모습으로 보일 때에 간신히 얻을 수 있었던 사진이다. 햇빛 덕분에 모든 조명 시설의 빛이 유리진열장에 어른거리는 모습이 모두 지워진 덕분에 아주 깔끔하고 환한 사진을 얻었으니 복 받은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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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른 쪽의 전시실로 들어갔다. 박경리 선생의 학창 시절의 사진부터 문단 활동을 하던 시절 그리고 이곳 문화관에서의 생활 모습을 찍은 사진들이 주욱 걸려있어서 일생을 다시 한 번 돌아보게 되는 기회를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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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운데에 있는 유리 진열장 속에는 실제로 쓰시던 것들이 진열이 되어 있었다.

유명한 토지가 전집으로 진열이 되어 있고, 자신이 스스로 지은 얌전히 접어진 옷이 한 벌, 저 옷에 놓아져 있는 수도 손수 놓은 것일까? 저 수를 놓으려면 엄청 많은 시간이 소요 되었을 텐데, 그 귀중한 시간을 수놓는 데에 쓰셨을까 싶어서 아닐 거란 생각이 먼저 들지만 확인을 할 길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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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진열장에는 손수 쓰시던 반짇고리가 보인다. 여자 분이니까 어쩔 수 없이 저런 것들도 있어야 하셨겠지? 그러나 이곳에 오실 무렵만 하여도 나이가 7순이 넘은 나이였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드니, 저 반짇고리에 든 것을 가지고 정성스럽게, 후배들의 옷가지나 단추 등을 꿰매어 주시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하니 참으로 귀한 물건 같은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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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진열장은 주로 필기구와 글 쓸 때에 사용하셨던 안경 등이 진열이 되어 있었다. 안경과 만년필 등을 꽂아 두고 쓰시던 연필꽂이 그리고 여러 개의 만년필을 담아 두고 쓰셨던 필통, 만년필과 안경을 넣어두던 옛날식의 캡슐형 안경집<두 개의 집을 캡슐 끼우듯 하여 보관하던 안경집> 등이 진열 되어 있는데 이것이 글을 쓰실 때의 필수품들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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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의 진열장에는 자루가 달린 돋보기, 늘 찾아보시던 옥편과 메모를 해두시던 노트가 진열이 되어 있다. 노트에는 참으로 얌전한 글씨가 빼곡히 쓰여져 있는데 글의 요점인지 아니면 줄거리인지?

‘저 한 페이지가 얼마나 많은 원고지를 채우는 재료가 되었을까? 나는 저렇게 얌전하게 적은 메모지를 쓴 적이 없는데?’ 이런 생각이 앞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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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소년동아일보에 95년 2학기 내내 무려 100회에 걸쳐 연재했던 [마음은 천사]라는 동화는 정말 순간적으로 스쳐가는 생각이 만든 것이었다. 순간적으로 스쳐가는 생각 아니면 영감을 수첩의 한 페이지에 달랑 5 글자 [마음은 천사]라고 적은 것이었다. 일산초등학교에서 출발한 위문품을 실은 버스가 홀트재단의 홀트학교에 도착하기 까지 불과 10분 남짓의 시간 동안에 그 버스 속에서 말이다. 이 다섯 글자가 무려 850매의 동화를 쓰게 만들어 주었다. 그런데 박경리 선생님은 저렇게 얌전하게 정리를 하여서 적은 것을 보면 여성이어서가 아니라 참 꼼꼼한 성격이셨구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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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으로 빚은 소녀상은 어쩜 자신을 새긴 것인지도 모르겠는데, 박경리 선생이라고는 보이지 않으니 조각 솜씨만은 글 솜씨에 한참 못 미친 셈인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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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중에서 진주남강의 논개바위 같은 위치에서 찍은 사진이 있는데 바로 곁에 빨래하는 아낙의 모습이 같이 찍힌 것을 보니 참 정겹던 시절이구나 싶다.

내 어린 시절에 어머니와 작은 어머니 그리고 형수님은 가마솥에서 삶은 빨래들을 머리에 이고 멀리 동구 밖의 시냇물까지 가서 빨래를 하곤 했는데 그 시절이 아련히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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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계신다면 96세이실 어머니는 이미 돌아가신지 40년이 되어 버렸으니 까마득한 옛날이고 나의 아직 어린 30세 전후의 일이었기에 잊고만 살고 있는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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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바퀴를 돌아 나오도록 다른 사람은 아무도 돌아보는 이가 없어서 혼자서 마음껏 사진도 찍고, 혼자서 생각에 잠기면서 돌아보는 호사를 누릴 수 있었다.

편집 : 박효삼 객원편집위원

김선태 주주통신원  ksuntae@emp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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