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한국에서?

한국사회에 생겨난 정신적 공백은 오랜 세월 동안 기본이 되었던 전통적 가족 시스템이 무너진 것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2019년 기준으로, 한국의 자살률은 OECD국가 1위, 이혼율은 OECD국가 9위, 출생률은 세계에서 가장 낮은 수준이 되었다 한다. 그런 속에는 부모로부터 충분한 사랑을 받지 못한 아이들, 버림받은 아이들, 부모에게서 심한 학대를 받은 아이들 등이 많다. 한국은 이제 전통적 가족의 중요성이 약화되어가고 있고 ‘생활공동체’가 그 자리를 차츰 메꾸어 가고 있다. ‘폐쇄적 혈연중심주의’를 넘어서서 비혈연 관계의 사람들이 의도적으로 모여 생활공동체를 이루어서 서로의 마음을 알아주고 상호 협력을 하는 생활을 이루어 가고 있다. 한국사회에서 앞으로의 공동체는 세대 차를 뛰어 넘고, 성별과 인종이 섞이고, 비혼 싱글과 이혼 및 사별 싱글이 함께 살며, 장애나 질병을 안고 사는 이들과 돌봄을 제공하는 이들이 교감하는 등 다채롭고 다양한 모델을 시도할 것이라는 연구 결과가 발표되었다.

파괴되어가는 부계사회와 전통적 가족 시스템이 ‘생활공동체‘로 삶의 양상을 바꾸어 가는 모습은 인간 역사의 자연적인 흐름의 일면이라 할 수 있겠다. 생명은 물의 흐름과 같이 상황에 적응하며 꽃을 피워간다. 생명을 품고 살리는 생명모성은, 독거가 아닌, 누군가와 함께 하는, 공동체가 있을 때 그 속에서 치유하고 치유 받으며 섭생한다. 혼자 하는 명상과 수행은 생명모성을 키워가는데 충분치 않다. 홀로 가는 길은 필히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검증과 정정을 받게 된다. 검증을 받지 않고 중요한 위치에 올라 선 사람들은 그들의 그림자가 ‘인격 장애’가 되어 사회적 비리를 자아내고 주위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는 경우가 종종 있다. ‘건강한 인격’은 관계 속에서 생겨나기 때문에 널리 관계하고 적시적소에서 반응이 돌아오는 공동체와의 관계를 필요로 한다.

전통적인 혈연가족 공동체, 비혈연 ‘생활 공동체’, 종교 공동체, 동아리 등 다 생명모성을 키우는 역할을 할 수 있다. 생명모성의 실체는 기본적으로 ‘우리(we)’이고, 공감(empathy)이다. 주변 사람들의 상황과 감정을 함께 느끼고 적절하게 관계하는 ‘공감능력’과 ‘돌봄’이 풍성한 공간에서 생명은 날개를 편다.

생명모성은 갈등, 곤경, 고뇌, 슬픔, 고통 들이 충돌하는 속에서 자아의 성장이 이루어지게 돕는다. 환경과의 충돌로 발생하는 ‘적당한 갈등과 좌절’은 자아 성장을 위한 최상의 조건이 된다. 그러나 환경과의 충돌이 지나치면 무리가 생긴다. 한국사회의 급작한 미국화는 한국인들이 자아 성장을 하기에는 환경과의 충돌이 과했고 거기에서 발생하는 갈등과 좌절이 지나치게 되었다.

극도의 경쟁 사회가 되어버린 이 시대에 한국인들은 자신의 내면을 가득 채우고 있는 상충되는 요소들을 효율적으로 통합하지 못하기 쉽고, 자신에게 진실할 여유를 갖기가 힘들게 되었다. 자신에게 진실하지 못하면 자기가 남에게 어떤 식으로 문제의 요인이 되고 있는지를 자각하지 못한다. 그런 상황은 각자의 내면에서 움직이고 있는 섬세한 생명모성(‘생명을 품고 키우는 성품’)의 기운을 짓밟는 행위들을 자신도 모르게 하고, 그 범위는 자기 자신에서 시작하여 가장 가까운 사람들과의 관계, 즉 가족적 비극으로부터 사회적 비리, 지구환경 파괴 등 범지구적으로 확장된다.

글로발 시대가 된 오늘날, 이 땅에는 수천 수백년 흘러오던 가족관계와 가족 공동체들이 서서히 말살되고, 그 자리에 새로운 관계망들이 형성되고 있다. 그런 속에서도 한국인들의 기질 깊은 속에 흐르고 있는 생명 모성의 기운은 이 시대에 맞는 방식으로 스스로를 표현해 가고 있고 지구촌으로 그 기운을 뻗어 나가고 있다. 중동인들이 ‘동방의 유토피아’라고 부르는 한반도의 풍토와 자연환경은 반만년의 세월 속에서 생명모성이 영구적으로 뿌리내리고 섬세하게 자라게 해주었다. 이렇게 한반도에 오랜 뿌리를 둔 생명모성은 이 시대에 온 세계가 필요로 하는 일들을  다양한 모습으로 해 낼 수 있게 되었다.

❀ 생명모성의 전망: 왜 한국에서? ❀

LA 한반도평화시위에서 할머니와 손녀(사진 출처 :  김반아)
LA 한반도평화시위에서 할머니와 손녀(사진 출처 :  김반아)

한국은 자고로 세계 어느 나라보다 모성의 힘이 막강한 나라였다. 그러나 이는 여성의 본연의 힘을 말하는 것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유교적 남성중심 사회에서 여성의 위치는 변두리로 밀려났고, 여성의 몸이 갖는 역할은 가문의 혈통을 잇는 수단으로 좁혀졌다. 여성의 힘이 한 집안의 모성 영역으로 좁혀지고 집중되었다는 말이다. 그런 전통과 역사 속에서 여성의 자아의식은 "착한 여자"의 테두리 안에 갇히고 좁아질 수밖에 없었다. 전통이 강요하는 인의예지의 틀 속에서 자기를 규정해야 했고 희로애락의 감정은 건강하게 표현될 수 없었다. 이러한 속에서 꿈틀거리며 살아나온 모성은 왜곡되고 협소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도 강하게 불고 있는 치맛바람의 유래가 그것이다.

한국 사회에서 여성의 에너지는 대단히 강하지만 건전하지 않은 면이 많고, 자녀를 키우는 데 있어서도 자식의 성공에서 대리 만족을 기대하는 심적 요소가 무겁게 작용하고 있다. 사회 전반에 긍정적이고 성숙한 여인의 기운을 퍼뜨리기보다는 눌려 있는 전통의 무게에 저항하면서 자기 위치를 찾아가는 과정에 있다. “착한 여자”는 잠재의식으로부터 단절된, 즉 야성이라는 영혼을 거세당한 여성이라는 사실을 젊음 세대들은 잘 알고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불 때, 생명모성은 우리가 일상적으로 말하는 모성과는 그 범위가 다르다. 후자는 주로 자기 자식에 대한 애착의 감정이며, 자기 자식이 안전하고 잘 되기만을 바라는 데 국한되는 것이다. 반면 생명모성은 생명 전반에 관련된 것이고 생태계 전반에 대한 의식이다.

한국인들이  ‘생명모성의 품성’을 최고로 잘 드러내 준 한류 드라마 <대장금>을 생각해 본다. <대장금>의 국제적 인기는 대단했다. 2006년 10월부터 이란의 국영TV에서 방영된 <대장금>의 인기는 상상을 초월했고 (6개월 평균 시청률이 90%에 이르렀을 정도), 그 인기는 10년이 넘어 간 것 같다. 이란 사람들이 특별히 <대장금>을 좋아하는 이유는 실제인물이었던 여자 주인공 ‘장금’이의 성품과 관련이 있다. 총명하고 정의롭고 적극적인 장금이는 어렸을 때부터 겪은 온갖 난관을 극복하면서도 따뜻한 정을 잃지 않고 만인을 감복시키며 ‘대장금’이 되었다.

<대장금>을 보고 감명받은 중동인들이 한국인들과의 사업 관계에서 받게 된 인상은 ‘장금’이를 상기시켜 준 듯 양호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는다. 직접 중동에 가서 십년간 일을 하고 돌아 주식회사 대우의 전 이사의 말에 의하면, 한국인 팀은 영국이나 미국 사람들같이 계약서를 써서 따지지 않고 빨리빨리 잽싸게 일을 해내곤 했기 때문에 중동인들의 깊은 신뢰를 샀다는 것이다. 이렇게 1970년경에 리비아와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시작된 중동붐 때문에 한강의 기적이 가능했던 것이다. 1980년도에 리비아에서 일을 한 적 있는 이 분의 말에 의하면 수주를 받으면 즉시로 사막 한가운데에 도로를 만들고, 학교와 아파트를 짓고 했는데 낮에는 너무 더우니까 밤에 횟불켜놓고 일을 했고 일년 걸려 짓기가 힘든 것을 6개월에 끝냈다 한다. 그렇게 성실하고, 빨리 일을 해내니까 중동인들은 ‘대우 최고’를 부르짖었고  주식회사 대우는 입찰도 안하고 일을 따내곤 했단다.

이와 같은 사고방식과 마음의 자세와 실천 능력을 남북관계에 적용해 본다. 그리고 가상의 현대판 ‘장금’이(생명모성인)에게 남-북-미관계에 대한 돌파구에 대해 물어본다. “당신이 대통령이라면 남북관계를 어떻게 풀어가겠습니까?“ 그는 아래와 같이 답을 한다. ”북한을 폐쇄적이라고 나무라지만 말고, 무너지기를 기다리지 말고, 미국 눈치 보지 않고, 해주기로 약속한 것들을, 일관성있게 밀고 나가며, 자주적으로, 이행할 것이다.“

돌이켜 보면, 2018 4.27.판문점 선언은 한반도의 평화를 위하여 너무도 완벽한 해결책들을 제시했다. 그러나 남한 정부는 남북이 자주적으로 합의한 내용을 실천하지 못했다. 남북의 관계가 좋아지려 할 때마다 방해하곤 하는 미국에게 이 참에도 대들지 못했던 것이다. 그리고 또 다시 미국으로부터 무시 당했다. 15대 주한미국대사 도널드 그레그(Donald Greg)의 자서전에서 그는 '남북 관계가 좋아지려 할 때마다 미국이 방해하곤 했다' 라고 예를 들어가며 명시하고 있다.

지금 우리가 필요한 것은  자주 정신이요. 자주 독립이다. 대한민국 정부는 마마보이를 중단하고 미국의 눈치 보지 않고 자주외교를 하여야 한다. 그래서 독자적으로 영세중립국의 새 시대를 열어가야 한다. 앞으로 계속 끊이지 않고 닥쳐 올 제국주의 역사의 구도 (미국->중국->러시아->일본) 속에서 영구적인 중립국 남북코리아가 한반도에 완충지대를 형성할 때에만이 한반도의 평화가 가능할 수 있다.

생명모성은 자주성을 가슴에 품고 있는 이 시대의 한국인들이 인류의 평화와 번영에 기여할 수 있는 최상의 성품이요, 상품이다.  생명모성은 시대에 따라 여러 모습으로 드러나지만 역사의 흐름 속에서 보여주는 공통점이 있다. “생명을 품고 살리는 목적을 위한 자주적이고 유연하면서 단호한 일관성’이다.” 아무리 혹독한 계절이 닥쳐도 봄이 돌아오면 남북한의 산과 들에 파릇파릇 약효 그윽한 산나물들이 다시 피어나 우리 삶의 목표인 생명을 품고 살려내리라는 사실을 상기 시켜준다. 

 

편집 : 심창식 객원편집위원, 양성숙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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