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러드 다이아몬드의 〈총, 균, 쇠〉를 읽고 정리하다

 재러드 다이아몬드의 저작인 〈총, 균, 쇠〉는 인류문명의 발전 정도가 왜 대륙마다 많은 차이를 보이는지에 대한 의문에 대해 논하고 있다.
의문은 재러드 다이아몬드가 열대의 섬 뉴기니에서 조류의 진화에 관한 연구를 하던 시절에 얄리라는 그곳 원주민의 질문에서 시작된다. “당신네 백인들은 그렇게 많은 화물을 발전시켜 뉴기니까지 가져왔는데 어째서 우리 흑인들은 그런 화물들을 만들지 못한 겁니까?” 2세기 전에 백인들이 뉴기니에 들어오면서 쇠도끼, 성냥, 의약품에서 의복, 청량음료, 우산에 이르기까지 들여왔고 뉴기니인들은 이런 물건들을 통틀어 ‘화물’이라고 일컬었다. 평균적인 뉴기니인의 생활양식과 평균적인 유럽인이나 미국인의 생활양식 사이에는 아직도 엄청난 차이가 있는데 그 답은 주변을 둘러보면 쉽게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몇 가지 설득력 있는 원인이 있어 보이지만 얄리의 답에 대답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고 재러드 다이아몬드는 토로한다. 저자 재러드 다이아몬드는 프롤로그를 통해서 몇 가지 중요한 사실들을 제시하면서 얄리의 질문에 답하려 한다.

- 인류발전은 어째서 각 대륙에서 다른 속도로 진행되었을까?

 유럽의 식민지 확장이 막 시작되었던 1,500년경, 각기 다른 대륙들은 과학기술과 정치조직에서 이미 크나큰 차이를 나타내고 있었다. 유럽, 아시아, 북부 아프리카의 대부분 지역은 쇠붙이를 사용하는 국가 또는 제국을 이루었으며 그중 일부는 산업화의 문턱에까지 도달해 있었다. 한편 아메리카 원주민 중에서 가장 큰 두 민족인 아즈텍족과 잉카족은 아직도 석기를 사용하여 제국을 다스리고 있었다. 아프리카에서도 사하라사막 이남은 철기를 사용하긴 했지만 수많은 소국이나 부족들로 흩어져 있었다. 오스트레일리아와 아메리카 대륙의 대부분 지역,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의 일부 지역 등도 아직 석기를 사용하여 농경 부족을 이루거나 수렵 채집민으로 살아가고 있었다. 1,500년경의 그와 같은 기술적·정치적 차이가 현대 세계의 불평등을 낳은 직접적인 원인이었다. 철제 무기를 가진 제국들은 돌과 나무로 만든 무기를 가진 부족들을 정복하거나 몰살할 수 있었다.

 최종 빙하기가 끝나던 B.C 11,000년경까지는 아직 모든 대륙의 모든 인간이 수렵 채집민이었다. 결국, 그 B.C 11,000 ~ A.D 1,500년에 각 대륙의 발전 속도가 제각기 달랐던 것이 1,500년대의 기술적‧정치적 불평등을 낳은 것이다. 가령 청동기의 대량 생산은 남아메리카에서는 1,500년대 직전의 몇 세기에 걸쳐 안데스산맥 일대에서 막 시작되었는데 유라시아 일부 지역에서는 그보다 4,000년 이상 전에 이미 일반화되어 있었다.

 이 책은 궁극적으로 역사와 선사시대사에 대해 다루었지만, 단순히 학문적인 관심사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실제적‧정치적 중요성까지 아울러 지니고 있다. 민족들 간의 상호작용 역사는 정복, 유행병, 종족 학살 등의 과정을 통해 현대 세계를 형성해왔다. 그러한 충돌의 여파는 여러 세기가 지난 후에도 여전히 사라지지 않고 오늘날까지 분쟁이 끊이지 않고 있다. 하와이 원주민,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 시베리아 원주민 그리고 미국, 캐니다, 브라질, 아르헨티나, 칠레 등지의 원주민인 인디언과 같은 토착민들은 종족 학살이나 질병으로 수효가 급감하여 이제는 침략자들의 후손들에 비해 수적으로 크게 열세에 몰린 형편이다. 현대 세계의 그러한 모든 문제점이 결국은 얄리의 질문에 내포된 문명발전의 차이에서 비롯된다고 저자는 지적하고 있다.

출처 : 재러드 다이아몬드의 <총, 균, 쇠>
출처 : 재러드 다이아몬드의 <총, 균, 쇠>

- 암묵적으로 인정받고 있는 인종주의

 1,500년대 이후 수 세기에 걸쳐 유럽의 탐험가들은 세계의 여러 민족 사이에 존재하는 과학기술 및 정치조직의 크나큰 차이를 발견하게 되었다. 당시에는 그와 같은 차이가 선천적 능력의 차이에서 비롯되었다고 믿었다. 다윈의 이론이 대두하면서 그러한 설명은 다시 자연선택과 진화적 유전 등의 개념으로 재편성되었다. 그 결과 원시적인 사람들은 곧 인류가 유인원 조상으로부터 진화했다는 한 증거로 간주 되었고 산업화한 사회의 이주민들이 그런 사람들을 쫓아내는 것은 곧 적자생존의 실례에 해당했다. 유럽인들은 유전적으로 아프리카인보다 지능이 높고, 특히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보다는 더욱더 높다고 생각했다.
오늘날 서양 사회에서는 인종주의를 공식적으로 배격하고 있다. 그런데도 많은 서양인은 여전히 개인적으로 은밀하게 또는 무의식적으로 인종차별적 설명을 받아들인다. 일본을 비롯한 대다수 국가에서는 아직도 아무런 거리낌 없이 그와 같은 설명을 공공연하게 내세우는 실정이다. 미국, 유럽, 오스트레일리아 등지의 교육받은 백인들조차도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이 화제로 등장하면 그 원주민들 본인에게 어떤 원시적인 면이 있는 것처럼 생각한다. 물론 그들의 생김새는 분명히 백인과 다르다. 유럽인이 개척한 식민지 시대를 무사히 살아서 넘긴 원주민들의 후손들은 오스트레일리아의 백인 사회에서 경제적 성공이 거의 불가능하다고 한다. 저자는 인간의 기술적 차이에 비례하는 지능적 차이가 존재한다는 확실한 증거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인종주의적 태도를 보이는 사람들에 대해서 전적으로 잘못되었음을 강하게 지적하며 반론을 제시하는 데 많은 부분을 할애하고 있다.

1532년의 카하마르카 전투의 재연. 이 전투에서 169명의 스페인군이 8만 명의 잉카군을 꺽고 잉카 황제 아타우알파를 사로잡았다. (출처 : 재러드 다이아몬드의 <총, 균, 쇠>)
1532년의 카하마르카 전투의 재연. 이 전투에서 169명의 스페인군이 8만 명의 잉카군을 꺽고 잉카 황제 아타우알파를 사로잡았다. (출처 : 재러드 다이아몬드의 <총, 균, 쇠>)

- 역사 진행의 차이는 유전적 이유가 아닌 환경적 차이 때문이다

스위스에서 태어난 프레드 허시라는 나이 많은 농부는 1890년대에 미국 몬태나 주로 왔다. 그는 그 지역에서 처음으로 농장을 일으킨 사람들 가운데 한 명이었다. 그가 도착할 당시만 하더라도 그곳에서 원래부터 수렵 채집만으로 살고 있던 아메리카 원주민들이 아직 많이 남아 있었다. 프레드 허시 가족들은 어려운 조건에서 성공한 개척자이자 농부로서 스스로를 자랑스러워했다. 그러나 그것은 이주해온 백인 농부들이 사냥꾼이며 유명한 전사들이었던 원주민들로부터 땅을 강제로 빼앗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지금으로부터 약 700만 년 전에 현생인류의 조상들이 현존하는 대형 유인원의 조상들로부터 분기된 이후, 대부분의 기간 지구상의 모든 인간은 인디언들이 19세기까지 그랬던 것처럼 순전히 야생동물을 사냥하거나 야생식물을 채집하는 것만으로 먹거리를 장만했다. 그러다가 몇몇 민족이 비로소 식량 생산이라는 것을 시작한 지는 아직 1만1천 년도 채 되지 않는다. 선사시대에 식량 생산이 시작된 시기는 민족마다 달랐다.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 같은 일부 민족들은 끝까지 식량을 생산하지 않았다. 고대 중국인 같은 일부 민족들은 독립적으로 식량 생산을 시작했지만 고대 이집트인을 포함한 다른 민족들은 이웃에게서 배워왔다. 식량 생산은 간접적으로 총기, 병원균, 쇠가 발전하는 데 필요한 선행 조건이었다. 그러므로 각 대륙의 민족들이 농경민이나 목축민이 되었느냐 말았느냐, 또 되었다면 그 시기는 언제였는가 하는 점은 그 이후 각 민족의 대조적인 운명을 설명해주는 것이기도 하다. 그래서 세계 각지에서 식량 생산이 각각 언제, 어디서, 어떻게 발전했는지에 대한 문제는 대단히 중요하다.

식량 생산이 완전히 독립적으로 시작된 지역들이 있다. 다른 지역으로부터 농작물이나 가축이 도착하기 전에 이미 수많은 토종동식물을 가축화‧작물화한 경우다. 현재까지 증거가 확실하고 세부적인 사항까지 검토된 곳은 다섯 지역밖에 없다. 근동이나 비옥한 초승달 지대라고 부르는 서남아시아, 중국, 중앙아메리카, 남아메리카의 안데스산맥 일대와 어쩌면 그와 인접한 아마존강 유역까지, 그리고 미국 동부 등이다. 식량 생산이 독립적으로 발전한 곳은 세계의 몇 지역에 불과했으며 그나마도 각각 시기가 크게 달랐다. 일부 이웃 지역의 수렵 채집민들은 그 같은 핵심 지역으로부터 식량 생산을 배웠고 기타 이웃 지역의 사람들은 그 핵심 지역의 식량 생산자들로 교체되었으며, 역시 각각의 시기는 크게 달랐다. 마지막으로 일부 지역의 사람들은 생태학적으로 식량 생산에 적합한 곳인데도 선사시대에 농업을 시작하지도 습득하지도 못했다. 근대에 와서도 바깥세상의 물결에 휩쓸릴 때까지 수렵 채집민의 생활을 고수했다. 그리하여 식량 생산을 일찍 시작한 지역의 민족들은 총기, 병원균, 쇠를 발전시키는 방향으로 일찍 출발한 셈이었다. 그 결과는 역사의 유산자와 무산자의 충돌이었다.

인류사에서 핵심적인 사실 한 가지는 비옥한 초승달 지대라고 알려진 서남아시아의 한 지역이 일찍부터 중요성을 띠었다는 점이다. 그 지역은 도시, 문자, 제국 그리고 우리가 문명이라고 부르는 것에 이르기까지 일련의 발전이 가장 먼저 일어났던 것으로 보인다. 그 모든 발전이 차례로 이루어질 수 있었던 것은 우선 인구가 조밀했고 잉여 식량을 비축할 수 있었고 농작물 재배 및 가축 사육의 형태로 시작된 식량 생산 덕분에 농경에 종사하지 않는 전문가들도 먹여 살릴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비옥한 초승달 지대에서 일어난 변화 중에서도 시기적으로 가장 앞섰던 것은 바로 식량 생산이었다. 그러므로 현대 세계의 기원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어째서 비옥한 초승달 지대에서는 동식물의 가축화‧작물화가 다른 지역보다 빨랐을까 하는 의문점은 극히 자연스러운 것이다. 지중해성기후대인 비옥한 초승달 지대는 여러 다른 지중해성기후 대에 비하여 적어도 다섯 가지 이점이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첫째, 서유라시아에는 세계에서 가장 넓은 지중해성기후 대가 있다. 따라서 그보다 작은 오스트레일리아 서남부나 칠레의 지중해성기후 대보다 야생 동식물도 다양하다. 둘째, 지중해성 기후대 중에서도 서유라시아는 계절별‧연도별 기후변화가 가장 큰 지역이다. 그러한 변화 때문에 그곳의 식물군도 진화하여 한해살이식물의 비율이 유난히 커졌다. 종의 다양성과 한해살이식물의 높은 비율이라는 이 두 가지 요인이 합쳐져서 결국 서유라시아의 지중해성기후 대에서 가장 다양한 한해살이식물을 볼 수 있는 것이다. 세계적으로 가장 훌륭한 56종의 볏과 식물 중에서 자그마치 32종을 독차지하고 있었다.그와 대조적으로 칠레의 지중해성기후 대에는 2종 밖에 없었고 캘리포니아와 남아프리카에는 각각 1종씩, 그리고 오스트레일리아 서남부에는 아예 없었다.
셋째 이점은, 짧은 거리 안에서도 고도 및 지형 변동이 심하다는 점이다. 고도차가 심하다는 것은 수확기가 제각각이었다는 뜻이다. 높은 고도에서 자라는 식물들은 낮은 고도에서 자라는 식물들에 비해 종자를 늦게 생산했다. 그래서 수렵 채집민들은 곡물이 익는 속도에 따라 산비탈을 올라가면서 수확할 수 있었다. 고도가 일정한 곳에서 자라서 모든 곡물이 한꺼번에 영그는 바람에 수확기가 집중되어 쩔쩔매는 일이 없었다. 네 번째 이점은 농작물의 야생 조상뿐 아니라 가축화된 대형 포유류의 야생 조상도 풍부했다는 점이다. 캘리포니아, 칠레, 오스트레일리아 서남부, 남아프리카공화국 등지의 지중해성기후 대에는 가축화하기에 적합한 야생 포유류의 수가 적거나 아예 없었다. 비옥한 초승달 지대에서 식량 생산이 일찍 시작될 수 있었던 마지막 이점은, 지중해 서부 연안을 포함하는 다른 지역들과 달리 이 지역에서는 수렵 채집 생활의 경쟁력이 약했으리라는 점이다. 서남아시아에는 큰 강이 별로 없고 해안선도 짧아서 수산자원이 비교적 빈약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여러 이유로 인해서 비옥한 초승달 지대의 경우, 수렵 채집에서 식량 생산으로의 전환은 비교적 신속하게 이루어졌다. B.C 9,000년까지만 하더라도 사람들은 아직 농작물이나 가축을 전혀 갖지 못하여 전적으로 야생 먹거리에 의존했는데 B.C 6,000년경 이전에 일부 사회는 이미 농작물과 가축에 거의 완전히 의존하고 있었다.

출처 : 재러드 다이아몬드의 <총, 균, 쇠>
출처 : 재러드 다이아몬드의 <총, 균, 쇠>

 식량 생산 능력과 함께 식량 생산기술 전파의 속도도 인류 역사에 큰 영향을 미쳤다. 남북아메리카는 남북의 길이가 동서보다 훨씬 길다. 동서 폭은 가장 넓은 곳도 4,800㎞ 정도밖에 안 되고 파나마지협에서는 64㎞까지 좁아진다. 다시 말해 남북아메리카의 주요 축은 남북 방향이다. 이보다는 덜 극단적이지만 아프리카도 마찬가지다. 그와 대조적으로 유라시아의 주요 축은 동서 방향이다. 축의 방향은 농작물과 가축은 물론이고 어쩌면 문자와 바퀴 등 발명품들의 전파 속도에도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그 결과 이 기본적인 지리적 특성은 지난 500년 동안 아메리카 원주민, 아프리카인, 유라시아인 등이 각각 전혀 다른 경험을 하게 되었던 크나큰 요인으로 작용했다.
식량 생산이 전파되었던 주요 경로를 살펴본다면 우선 서남아시아에서 유럽, 이집트와 북아프리카, 에티오피아, 중앙아시아, 인더스강 유역으로, 사헬 지대와 서아프리카에서 동남아프리카로, 중국에서 열대 동남아시아, 필리핀, 인도네시아, 한국, 일본으로, 중앙아메리카에서 북아메리카로 전파되었다. 그리고 발원지의 식량 생산도 다른 발원지로부터 농작물, 가축 기술이 새로 들어오면서 더욱 충실해졌다. 선사시대에 식량 생산이 전파된 지역들도 그 전파 속도나 시기는 상당히 차이가 났다. 식량 생산이 가장 신속하게 전파된 경우는 동서축 방향이다.
가령 서남아시아에서는 유럽과 이집트 등 서쪽으로도 전해졌고 인더스강 유역 등 동쪽으로도 전해졌으며(평균 속도는 1년에 1.1㎞), 필리핀에서는 동쪽 폴리네시아에 전해졌다. (1년에 5.2㎞) 그와 반대로 식량 생산이 가장 느리게 전파되었던 것은 남북축 방향이다. 가령 멕시코에서 북쪽 미국 서남부에 전파된 속도는 연평균 0.8㎞ 이하였다. 멕시코로부터 북상한 옥수수와 누에콩이 A.D 900년경에 미국 동부에서 생산성을 확보하기까지 그 전파 속도는 연평균 0.5㎞ 이하였고 페루의 라마가 에콰도르에 전파된 속도는 연평균 0.3㎞에 불과했다. 이렇게 유라시아의 농업이 아메리카 원주민이나 사하라사막 이남 아프리카인들의 농업에 비해 더 빠르게 전파됨에 따라 유라시아 지역에 문자, 야금술, 기술, 제국 등이 더 신속하게 확산할 수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출처 : 재러드 다이아몬드의 <총, 균, 쇠>
출처 : 재러드 다이아몬드의 <총, 균, 쇠>

 저자는 이 책에서 뉴기니 원주민 얄리의 질문인 “왜 민족 간에 문명의 발전 정도에 차이가 발생하였나?”라는 의문에 답하기 위해서 문명의 이기인 총 균 쇠를 책 제목으로 사용하고 있지만 사실 여기서 책의 제목인 총 균 쇠에 대해서 개별적으로 분석하지는 않는다. 단지 총 균 쇠는 문명발전의 상징이자 역사적으로 타민족이나 부족을 침략하는데 절대적인 위력을 발휘했다는 의미로써 사용되고 있다. 저자는 문명의 발전 정도의 차이는 환경의 차이에 따른 결과이지 결코 일부 우월한 인종의 능력에 의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처음부터 끝까지 역설하고 있다.

- 〈총, 균, 쇠〉 그 이후

 저자는 최근 한겨레신문 「안희경의 내일의 세계」 편에서 지구 10년 생존전략에 대한 물음에 대해서 자신의 의견을 피력한 바 있다. 오늘 우리는 무엇을 취하고자 하는가? 라는 질문에 대해서 10년 안에 탄소 배출량을 반으로 줄여야 한다고 답했다. 실패한다면 폭염과 홍수와 산불, 그리고 전염병이 창궐하는 내일이 올 수밖에 없다고 한다. 그리고 취약할수록 고통은 잔인하고 억울하며 재난이 반복될수록 그 취약한 이의 수가 불어날 수밖에 없다고 했다.
그는 “코로나 19는 우리에게 지구적인 답을 찾도록 숙제하게 하는 막강한 스승님”이라고도 했다. 더불어 “코로나 19는 세계인이 다 걸린다 해도 사망률은 2% 정도다. 지금 우리에게는 모두 죽을 수 있는 핵무기, 기후변화, 자원 고갈, 불평등 같은 더 심각한 위협들이 있고 그 해결책을 찾아 나서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재러드 다이아몬드가 언급한 핵무기, 기후변화, 자원 고갈, 불평등 등은 산업화로 인해 초래한 커다란 후유증이다. 서양과학 문명이 산업혁명을 불러일으켰고 인류의 삶의 질을 높이는데 많은 공헌을 한 것은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오늘을 사는 우리는 그로 인한 후유증을 몸소 체험하고 있다. 문명은 인류의 생존을 위해서 계속 변화해 왔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여태까지 그랬던 것처럼 미래에도 문명의 빛과 그림자는 동전의 양면처럼 함께 할 것이다. 이 책은 ‘과연 인류의 문명은 우리에게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라는 의미심장한 의문점을 던져주고 있다.

편집 : 김해인 객원편집위원, 양성숙 편집위원
이강근 주주통신원  lplove199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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