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가을 아침 불국사로 달리는 길은 넓고 한적해서 좋았다. 그래서 불국사도 적막하겠거니 했는데 적지 않은 관람객이 우리보다 부지런하게 앞서서 유람하고 있었다. 초등학교 고학년 교과서에서 보았던 청운교 백운교 다보탑의 섬세한 아름다움에 매료되었던 나로서는 그 실제를 확인하는 것만으로도 설레었다. 어린 시절 아름다운 청운교 백운교 사진을 보며 저 계단을 밟고 올라가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는데 오늘도 계단은 막혀있고 계단 위 문은 굳게 닫혀 있어서 옆 오르막길을 통해서 옆문을 지나 대웅전 뜰로 들어서야 했다. 아마도 코로나 영향으로 통제되는 것 같았다. 마침 곳곳에 붉게 물든 단풍나무 단풍이 전각 단청과 어우러져 단심을 한껏 뿜어내고 있었는데 대웅전 전각은 단청이 복원되지 않았는지 쇄락하고 낡은 목조의 퇴색한 단청 모습이었다. 대웅전을 비롯하여 전각마다 염불을 외우는 스님들 목탁소리가 가득하여 마음이 편안하고 고마웠다. 불국사는 신라 경덕왕 10년(751년)에 김대성의 발원으로 창건(중창) 되었다고 하는데 절 이름에서 보듯 불교국가를 지향했던 신라의 원찰이라고 학자들은 해석한다. 국보 제20호 다보탑과 제21호의 석가탑은 불교 이념을 신라에 구현시키려는 신라 민족혼의 결정체 이다. 아쉬운 점은 임진왜란 때 왜군이 불국사의 아름다움에 매료되었다가 의병들이 숨겨놓은 무기를 발견하고 1,000칸의 전각을 모두 불태웠다는 사실이다

불국사 대웅전 뜰로 올라가는 청운교 백운교 위의 누각이 단청과 단풍과 푸른 하늘과 맑은 햇살이 어우러져 서방정토 이상향을 상상케 한다
불국사 대웅전 뜰로 올라가는 청운교 백운교 위의 누각이 단청과 단풍과 푸른 하늘과 맑은 햇살이 어우러져 서방정토 이상향을 상상케 한다

 

불국사 다보탑과 석가탑 전경
불국사 다보탑과 석가탑 전경
불국사 대웅전. 단청이 많이 퇴색한 모습이다
불국사 대웅전. 단청이 많이 퇴색한 모습이다

 

대웅전 아랫뜰 계단에서 뛰어노는 아이들이 자비로운 불국정토를 그려내는 듯하다
대웅전 아랫뜰 계단에서 뛰어노는 아이들이 자비로운 불국정토를 그려내는 듯하다

 

7km가 넘는 굽이굽이 오르막길을 달려 석굴암 주차장에 주차하고서도 1km의 산 중턱 길을 돌고 돌아 걸어서 드디어 석굴암에 도착하였다. 문이 굳게 닫힌 암자에 석굴암 불상이 모셔져 있는데 통유리로 막혀있고 사진도 금지되어 있어 유리를 통해서 근엄하면서도 자비로운 부처님 미소를 숙연하게 대면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부처님도 답답하실 텐데 낮에는 암자 문을 활짝 열어 놓을 수 없을까? 원래 동쪽의 일출이 부처님 이마에서 빛나도록 석굴암에 모셔 놓았다는데 이렇게 문을 닫아 놓으면 원래의 취지가 무색해 지는 것은 아닌지, 부처님 발원이 막히지 않을까 걱정이 되었다. 석굴암 역시 김대성의 발원으로 신라 왕실 지원을 받아 건축되었다고 하며 삼국통일을 완성한 문무대왕이 묻힌 동해 수중릉을 바라보는 구조로 축성되었다.

1976년 고등학교 2학년 수학여행을 와서 봤다는 아내는 그 시절 불국사, 석굴암, 첨성대가 황량한 벌판에 덩그러니 서있었는데 나무도 많은 숲을 이루고 공원처럼 잘 해 놓았다면서 감탄을 연발했다. 그래서 내가 "과거 '라떼' 이야기는 까페에서 합시다~" 하고 농담을 던지니 눈을 흘겨 나를 바라보며 웃었다      

삼국통일의 대업이 영원하도록 / 통일된 신라가 불국정토가 되기를 / 자비로운 부처님께 발원하며 빌었네 / 그 염원 천년을 넘어 그치지 않아 / 오늘 우리는 세계를 선도하는 선진국이 되었네 / 간절한 조상님의 기도가 있어 / 부끄럽지 않은 오늘의 후손이 있네 / 조상과 후손은 누천년을 왕래하며 / 서로 감응하며 서로 북돋아 주네 / 영화로운 천년, 한 때 수치 당하며 쓰러졌지만 / 자랑스런 후손들이 들불처럼 일어나 / 조상님들 명예 되찾아 드리네 / 영원하여라, 그 사랑 영원하기를

석굴암 대문. 문이 굳게 닫혀있어 아쉬움과 답답함을 느끼게 한다
석굴암 대문. 문이 굳게 닫혀있어 아쉬움과 답답함을 느끼게 한다

 

놋전국수집에서 처음 먹어보는 회국수로 점심을 마치고 경주박물관으로 갔다. 박물관 규모가 국립 박물관 답게 너무 커서 전문가도 아닌 일반인이 다 관람하기에는 역부족이고 어쩔 수 없이 주마간산 격으로 관람을 할 수 밖에 없었다. 다만 찬란한 황금의 나라 신라를 관람하면서 느끼는 것은 이천년 전 고대 왕실은 현대 전자제품이나 자동차 등 문명의 이기만 없었을 뿐이지 그 외에는 모든 것이 풍족하고 아름답고 멋스러웠을 것이라는 깨달음 이었다.

모전석탑을 보기 위해 분황사를 찾았다. 산 속에만 있는 절을 보다가 평지 한가운데에 학교처럼 네모반듯하게 담장이 둘러져 있는 절을 보자니 좀 낯설었다. 게다가 모전석탑의 모습이 중국이나 인도에서 봄직한 이국적인 자태여서 순간 동남아의 절을 온 것인가 착각이 들 정도였다. 황룡사와 담장을 같이 하고 있는 분황사는 선덕여왕 3년(634년)에 건립되어 고승 원효와 자장이 거쳐 간 절이라고 한다. 원효는 이 절에 머물며 '화엄경소', '금광명경소' 등 수많은 저술을 하였으며 원효가 죽은 뒤 아들 설총은 아버지 원효의 유해로 소상을 만들어 이 절에 모셔두고 죽을 때까지 공경하였다고 하며, 일연이 삼국유사를 저술할 때까지는 원효의 소상이 있었다고 한다. 안산암을 벽돌 모양으로 다듬어 쌓은 높이 9.3m의 모전석탑은 임진왜란 때 반쯤 파괴되어 현재는 3층이지만 원래는 7층~9층 이였을 것으로 추측한다. 이 외에도 눈 먼 아이의 눈을 뜨게 해 준 천수대비 그림, 유명한 솔거가 그린 관음보살상 벽화, 삼룡변어정, 화쟁국사비편 등 영험한 유적들이 있었는데 유실되고 오늘날은 대웅전도 없이 겉모습이 아담하고 소박해 보이는 사찰의 모습으로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분황사 모전석탑. (안산암을 벽돌처럼 깎아 쌓은 탑)
분황사 모전석탑. (안산암을 벽돌처럼 깎아 쌓은 탑)

 

대웅전은 유실되었고 아담한 전각이 사찰을 대신하고 있다
대웅전은 유실되었고 아담한 전각이 사찰을 대신하고 있다
전각을 둘러싼 국화 화분과 오색초롱이 호화롭다
전각을 둘러싼 국화 화분과 오색초롱이 호화롭다

 

신라의 대릉원은 크고 넓었으나 역설적으로 신라의 궁궐은 어디에도 없었다. 예전부터 오리와 기러기들이 날아다니는 안압지라는 연못이 후대의 발굴작업에서 궁궐의 연못으로 밝혀지고 궁터가 5군데 발견되어 현재 반쯤 복원 중이다. 그래서 새로 얻은 이름이 동궁과 월지로서 신라 문무왕 대에 건축된 것으로 보고 있다. 연못 월지는 동서 길이 약 190m, 남북 길이 약 190m의 장방형으로 호안 석축의 길이는 1,285m로서 유려한 굴곡을 자랑하며 못가 어느 곳에서 보아도 못 전체가 한 눈에 들어오지 않으며 연못이 한 없이 길게 이어지는 듯 느껴진다. 복원과 더불어 야경 조명을 설치하여 연못과 궁궐이 어우러지는 환상적인 야경을 보려고 관람객들이 석양을 바라보면서 연못을 둘러싸고 기다리고 있었다.

복원된 전각과 연못이 어우러져 풍광이 아름답다
복원된 전각과 연못이 어우러져 풍광이 아름답다
동궁과 월지의 복원된 환상적인 야경
동궁과 월지의 복원된 환상적인 야경

 

차가운 밤공기를 가르며 차를 달려 몇 백평 쯤되는 넓은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보문뜰'이라는 큰 식당에서 떡갈비 갈비탕으로 저녁을 해결하고 호텔에 돌아와 온천욕을 하니 더 이상 아무 생각 없이 잠에 떨어지고 말았다

여행 삼일 째, 감은사지를 향해 가는 길은 불국사를 지나며 한적하고 넓은 지방도로를 20분 달려 도착하였다. 관광버스도 한 대 와서 20여명 단체관람객들이 문화해설사 설명을 들으며 돌고 있었다. 우리도 잠시 합류하여 설명을 듣고 있자니 패키지여행의 추억이 되살아나는 낭만을 느꼈다. 감은사는 삼국을 통일한 신라 문무대왕을 기리기 위하여 아들 신문왕이 682년에 창건하였는데 3층 석탑인 동탑과 서탑이 있고, 탑 사이에 동해 용이 된 아버지가 절에 와서 쉬어가도록 굽이굽이 만들어 놓은 수로만 남아 있었다. 죽어 동해의 용이 되어 왜적을 물리치겠다는 문무대왕 유언에 따라 동해 바위 수중에 봉안하고 아들 신문왕이 수중릉을 잘 바라 볼 수 있도록 세운 이견대에 올라서 보니 직선거리 2km로서 신문왕이 수중에 묻힌 아버지 문무대왕을 얼마나 사모하고 애끓는 마음으로 바라보았을까 충분히 상상이 되었다. 곧바로 아버지의 수중릉으로 달려가고 싶은 아들 신문왕의 마음으로 우리도 차를 몰아 수중릉 가까운 해변으로 갔다. 수중릉은 지척에 손에 잡힐 듯 보이는데 거센 파도만 해변을 때려 발을 동동거리며 바라만 보아야 하는 아들의 마음, 그 마음을 알았을까? 설화에 의하면 수중릉에 대나무가 피어 그 대나무로 피리를 만들어 불어 만 가지 근심을 달랬다는 '만파식적' 야사가 전해져 온다.  

감은사지 동탑과 서탑(3층 석탑) 전경
감은사지 동탑과 서탑(3층 석탑) 전경

 

문무대왕 수중릉을 조망하는 이견대
문무대왕 수중릉을 조망하는 이견대
아내와 막둥이가 문무대왕 수중릉을 바라보는 모습
아내와 막둥이가 문무대왕 수중릉을 바라보는 모습
수중릉 앞에 태양빛을 받아 반짝이는 바다의 잔물결이 평화롭다
수중릉 앞에 태양빛을 받아 반짝이는 바다의 잔물결이 평화롭다

 

동해 회와 매운탕으로 점심을 마치고 천릿길 서울을 향해 차는 달리고 달렸다. 미세먼지가 심한지 충청도를 들어서면서 산들이 뿌옇게 보여 도무지 단풍 든 산천 경관을 즐길 수 없었다. 눈이 답답하니 마음도 답답하였다. 유리창 같으면 손으로 박박 닦아내고 싶은데 산천을 휘감은 거대한 허공을 닦을 수도 없고 우울한 한숨만 나왔다. 현대문명의 편안함 뒤에 이런 부작용이 있을 줄이야 누가 알았으랴. 눈깔사탕 하나를 먹어도 비닐을 까야 하니 이틀 동안 호텔에서 나온 비닐쓰레기가 한봉다리 가득 나와서 괜히 미안했다. 사는 일이 쓰레기만 만드는 일일까? 그 비닐을 만들기 위한 에너지 소비는 또 지구 온난화를 부채질 한다. 현대문명 악순환의 고리에 인류는 걸려 든 것일까? 인류의 현명한 지혜와 양심이 환경과 인류가 상생하는 선순환의 변곡점을 만들어내기를 간절히 기도하며 퇴근길 러시아워의 서울에 들어섰다.     

편집 : 박효삼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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